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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T일반

베셀이 유튜버를 모으는 이유


 훌루(Hulu)는 2007년, 컴캐스트, 월트 디즈니, 뉴스코퍼레이션이 합작으로 설립한 스트리밍 동영상 업체입니다. 제이슨 킬라르(Jason Kilar)는 훌루 설립부터 CEO를 맡았고, 훌루를 키워낸 장본인이죠. 하지만 그는 컴캐스트, 월트 디즈니, 뉴스코퍼레이션과의 불화로 2013년에 CTO였던 리치 톰(Rich Tom)과 함께 회사를 나왔습니다.
 


베셀이 유튜버를 모으는 이유
 
 훌루를 나온 킬라르는 사임 한 달 후 드림웍스의 이사회에 합류했지만, 지난해에 새로운 동영상 스타트업을 설립하면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베셀(Vessel)'입니다.
 
 

via_Vessel Blog


 베셀은 킬라르가 함께 훌루를 나온 톰과 공동으로 창립한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입니다. 지난해 7,500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연말부터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잠깐 미뤄졌는데, 지난 21일에 드디어 베타 서비스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베셀이 주목받은 건 훌루의 전 CEO가 세운 회사라서 보다는 동영상 스트리밍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유튜브에 도전장을 내밀은 탓이었습니다. 베셀은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부터 인기 유튜버에 매력적인 조건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베셀에 동영상을 올리면 유튜브보다 더 나은 수익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입니다.
 
 The Verge는 '유튜브가 광고 수익의 45%를 제작자에 준다면, 베셀은 광고 수익의 70%와 월 구독료 2.99달러의 60%를 제공한다.'고 전했습니다. 유튜브만큼 구독자만 확보할 수 있다면 베셀에서 훨씬 이익을 많이 거둘 수 있겠죠.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베셀을 2.99달러의 유료 서비스입니다. 대신 베셀에 게시한 영상은 72시간 후 다른 서비스에 게시할 수 있어서 콘텐츠를 독점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자 유튜브는 아예 유튜버들이 베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 인기 유튜버들과 장기 계약을 시도했습니다. 이제 시작한 베셀과 10억 명의 유튜브의 차이는 심하지만, 유튜브가 제작자를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베셀을 경계하고 있다고 해석하기 충분합니다. 그 점에서 베셀이 유튜브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지 눈여겨본 것입니다.
 
 '그런데 어차피 3일 후에 유튜브에서 무료로 영상을 볼 수 있다면, 베셀을 구독할 이유가 있을까?'
 
 


 사실 베셀이 인기 유튜버를 모으고 있지만, 이는 유튜브와의 경쟁만을 위한 건 아닙니다. 정확히는 킬라르가 만들려는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의 형태를 갖추기 위한 단초로써 유튜버들에게 제안한 겁니다.
 
 그가 훌루를 나온 건 실적이 좋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훌루는 합작으로 설립한 회사이고, 킬라르를 설립부터 경영인으로 참여했기에 소유주인 3사의 입김이 강했습니다. 훌루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스트리밍으로 높은 매출을 낼 수는 없을 테고, 설립 이유는 3사의 콘텐츠 유통에 있다.'라고 스트리밍 회의론자들은 말했었는데, 실상 훌루는 유료 모델로 매출을 올리면서 성장했습니다.
 
 문제는 3사였습니다. 그들은 훌루로 더 높은 수익을 내고자 광고를 과도하게 영상에 포함했고, 킬라르는 '유료 모델에 광고를 포함하여 이용자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3사 콘텐츠의 웹 저작권료가 저렴한 탓에 경쟁자들을 도와주고 있다'라고 비판했는데, 콘텐츠의 저작권료를 올려서 가치가 높아져야 제작자에 돌아가는 수익도 올릴 수 있고, 그것이 유튜브 등 낮은 가격의 광고를 기반으로 한 무료 서비스를 흔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킬라르는 만약 3사가 웹 저작권료를 높게 책정한다면 해당 콘텐츠를 사들이기 위해서 구글 등이 광고 수익을 올리거나 혹은 이미 유료 모델이 정착한 훌루로 사용자를 모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3사가 도움을 주지 않았고,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등의 스트리밍 모델이 성장하자 굳이 자사 콘텐츠를 유통하기 위해 훌루가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에 매각 계획까지 세움으로써 스스로 훌루를 박차고 나온 겁니다.
 
 그런데 베셀을 보면 킬라르가 훌루를 통해 하고자 했던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베셀은 당장 대형 유통사를 통해서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긴 어렵습니다. 하더라도 경쟁사와 차이가 크고, 어차피 낮아진 콘텐츠 가치라면 경쟁 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신 인디 제작자들은 유튜브의 수익 배분 구조에서 가장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나 유튜브를 지탱하는 중요한 존재죠. 베셀이 이용자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두고 봐야겠지만, 제작자가 베셀로 수익을 올리기 시작하고, 규모가 성장한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베셀이 직접 제안하지 않더라도 제작자는 베셀에 먼저 콘텐츠를 올릴 것입니다. 어차피 3일 뒤면 유튜브에 올릴 수 있으니 큰 손해도 아닌데, 그것만으로 유튜버가 베셀로 넘어갈 여지를 얻게 되죠.
 
 그러면 제작자는 수익을 얻으니 문제가 없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유튜브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베셀이 성장한다는 건 베셀 이용자가 늘어난다는 것이고, 이미 베셀을 통해 동영상을 본 이용자가 다시 유튜브로 똑같은 동영상을 볼 확률은 적으니까요. 유튜브가 할 수 있는 건 광고 단가를 조정하는 등으로 유튜버가 베셀에 동영상을 먼저 올리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럼 웹 콘텐츠의 저작권 가치에 영향을 줄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사실만으로도 유튜브가 긴장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베셀의 성장이 전제가 되지 않아도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베셀의 행보에 현재 유튜버들은 갈등하고 있습니다. '베셀에 동영상을 올리면 밑져야 본전인데, 유튜브의 화를 불러서 피해를 입지 않을까?'하고 말입니다. 베셀의 수익이 저조해서 유튜브에 집중하는 쪽으로 전환했을 때, 베셀에 붙었었다는 것만으로 불이익이 떨어질 수 있다면 모험에 뛰어들 조건으로는 비싼 값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인데, 어떻게 보면 타당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유튜브가 베셀에 동참했던 제작자에 불이익을 주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자유롭게 동영상을 올리고, 공평하게 배분한다는 시스템에 금이 가게 됩니다. 그건 베셀에 참여하지 않은 유튜버들도 포함할 수 있는 쟁점이고, 유튜브로서는 그런 결정을 단순히 배신했다는 명목으로 내릴 수 없죠. 베셀이 유튜브보다 좋은 조건으로 유튜버를 끌어들이는 것만으로 베셀의 성공을 둘째치더라도 유튜브의 지위를 흔들 수 있다는 게 킬라르가 베셀로 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본래는 훌루에서 실행하려 했었던 전략이고, 그게 가능하다면 콘텐츠의 가치가 낮은 가격의 광고를 많이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품질에 따라서 급격하게 변할 가능성이 높아질 테죠.
 
 


 베셀을 두고, 비메오(Vimeo)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유료 서비스로 유튜브와 경쟁했지만, 유튜브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베셀과 비메오는 정반대의 서비스로 비메오가 제작자에게 비용을 요구한다면, 베셀을 이용자에 구독료를 받는 서비스입니다. 오히려 제작자에 돈을 줍니다. 전혀 다른 시점에서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베셀이 유튜브의 수익 구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건 유튜브의 행보에서도 나타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말, 유튜브가 유료 구독 모델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유료로 구독하면 광고 없이 동영상을 볼 수 있는데, 이용자가 아닌 제작자 측면에서 보면 구독료 일부를 유튜브가 나누려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잘 유지되는 유튜브에 유료 모델을 넣으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광고를 보기 싫어하는 이용자에 대한 전략도 있겠지만, 제작자에 광고에서 빠진 수익만큼 대신할 무언가가 제공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므로 그것까지 조율하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콘텐츠 가치에 변화가 생겼을 때, 대비할 수단으로 유료 구독 모델을 고려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베셀의 탓만은 아닙니다.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동영상 성장도 유튜브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죠. 핵심은 베셀이 유튜브와 경쟁하기 위해서 유튜버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웹의 동영상 콘텐츠 가치를 스트리밍 서비스로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을 지녔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