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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APPLE Geek Bible

아이패드 프로, 왜 커졌나?


 아이패드의 판매 둔화는 최근 2년 사이 애플의 큰 고민 중 하나였고, 해결하고자 작년에는 IBM, 얼마 전에는 시스코와 제휴하면서 엔터프라이즈 시장을 노리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협업에서 성과를 내는 중에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아이패드 프로(iPad Pro)'를 공개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 왜 커졌나?
 
 9월 10일 새벽에 공개한 아이패드 프로는 12.9인치의 대형 태블릿이며, 키보드 커버인 스마트 키보드(Smart Keyboard)와 스타일러스 펜인 애플 펜슬(Apple Pencil)이라는 공식 보조기기도 함께 내놓았습니다. 아이패드를 두고 터치스크린이 아닌 키보드 커버로 타이핑하고, 손가락이 아닌 스타일러스 펜으로 그리라는 겁니다.
 
 


 처음 아이패드가 등장했을 때 9.7인치는 아주 큰 모습이었지만, 이제 9.7인치 아이패드가 작아 보일 정도입니다. 큰 화면이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휴대성은 떨어졌으나 이전보다 더 많은 요소를 화면에 배치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키노트에서도 그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전에도 아이패드를 위한 생산성 앱을 소개하긴 했었지만, 이번 행사에서는 아예 생산성 앱만 소개했죠. 놀랍게도 애플의 아이워크(iWork)가 아닌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제품군을 시연했고, 어도비도 자사 앱을 저작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 3D4 메디컬은 아이패드를 교육에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이들 소개가 이전과 달랐던 건 모두 손가락으로 해결하던 걸 애플 펜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점입니다. 애플 펜슬을 소개하려는 목적이었겠지만, 애플 펜슬의 등장에 2007년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전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모바일에서 스타일러스 펜은 갖고 다녀야 하고, 잃어버릴 수 있는 불필요한 것이며, 손가락이 최고의 스타일러스 펜이라고 말했죠. 그러나 앞서 삼성은 스타일러스 펜을 채용한 갤럭시 노트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고, 애플도 애플 펜슬을 내놓았기에 잡스의 발언이 틀렸다고 얘기할만 합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부분을 동의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 사용하는 스타일러스 펜의 성능이 좋아진 것도 있고, 애플 펜슬이 애플이 공식적으로 출시한 스타일러스 펜이지만, 그렇다고 아이패드 프로에 장착하여 휴대하는 제품도 아닙니다. 스타일러스의 휴대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것은 즉, 아이패드 프로의 이동성이 크기에서 떨어진 것뿐만 아니라 애플로서도 이동성에 큰 비중을 두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이패드 프로나 애플 펜슬이나 휴대한다면 가방에 넣어 다닐 테고, 9.7인치의 아이패도 가방에 옮겨 다니는 신세였다는 걸 생각하면 큰 차이가 있진 않으나 크기가 커졌기에 더 큰 주머니와 무엇보다 태블릿이 생산성에서 따라잡지 못했던 랩톱도 휴대한다고 했을 때 무게를 견딜 어깨 힘도 있어야 합니다.
 
 


 필자는 아이패드 프로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아이패드가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애플이 내놓는 태블릿에 OS X이 탑재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떠돌던 컨셉 이미지만 하더라도 모두 OS X을 기반으로 하며, OS X을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휴대한다면 블루투스 키보드와 마우스를 겸하고, 맥북 대신 가방을 차지하는 존재가 될 거라고 말이죠.
 
 그래서 아이패드 발표 직전에 '애플이 개발하는 태블릿은 iOS 기반이다.'라는 소식에 말도 안 된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었더니 아이패드는 iOS 기반이었으며, 잡스는 아이폰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제품이라면 아이패드는 거실에 앉아서 사용할만한 컴퓨터라고 소개합니다. 기대했던 아이패드의 정체성이 뒤바뀐 것인데, 사실 이런 기대를 먼저 채워준 건 서피스였습니다. 소비자들은 똑같이 생각했죠. '윈도가 탑재된 태블릿에 윈도의 기능들을 온전히 쓸 수 있다면 최고일 거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개 소비자들은 아이패드의 출현 전부터 아이패드의 생산성에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패드의 포지셔닝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쪽으로 옮겨가면서 생산성이 점점 뒤처지고, 결과적으로 생산성을 모바일에 옮기는 데 랩톱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형태로 남았습니다. 단지 아이패드는 꺼내 들기 쉽고,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바로 작업물에 접근할 수 있는 이동성이 장점이 되어 랩톱에 붙어 다니는 형태가 됩니다. 강력한 생산성을 제공하진 않으나 이동성을 강점으로 생산성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패드 프로는 이동성을 떨어뜨린 제품입니다. 그리고 휴대하려면 손에 들고 다니기 쉽지 않고, 휴대하더라도 애플 펜슬을 주로 사용한다면 애플 펜슬까지 휴대할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꼭 가방이 필요할 테고, 이는 '랩톱을 함께 휴대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아이패드의 생산성이 랩톱과 견줄 수 있다면 꼭 생산성을 위한 제품을 휴대해야 하는 소비자에게 휴대라는 관점에서 아이패드 프로는 고민의 대상이며, 되레 이동성을 떨어뜨린 탓에 랩톱 대신 아이패드 프로를 고려할 수 있게 했다는 거죠.
 
 그건 단순하게 '생상성 기능을 넣었으니 소비자들이 생산성을 위해 아이패드 프로를 구매하겠지.'로 해설되는 게 아니라 '아이패드의 이동성을 떨어뜨리더라도 랩톱을 대체할 수 있게 한다면 충분히 아이패드 프로의 수요를 찾을 수 있다.'라는 판단이고, 그 판단이 아이패드를 커지게 한 것입니다. 그저 생산성만 강조하는 방법은 이전에도 꾸준히 시도하던 거였으니까요.
 
 덕분에 아이패드 프로에 대한 생산성의 기대는 이전 9.7인치 아이패드 때와는 다른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이패드가 등장하기 전에 기대했던 것, 그리고 서피스를 통해서 보았던 것이 실제 아이패드의 정체성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패드의 크기 변화가 상당히 의미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OS X을 탑재한 것도 아니고, 그간 선보였던 앱의 종류가 변하는 것도 아닌 크기만 커졌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이건 애플이 강조하던 포스트 PC의 완성형에 가까운 것이라 필자는 생각합니다. 아이패드에서 살리지 못한 생산성, 그리고 아이패드 미니로 작아지면서 콘텐츠 소비에 집중했던 한 때로 포스트 PC의 정의가 한 쪽으로 기울었지만, 아이패드 프로는 다시 태블릿에 대한 기대를 불어 넣으면서 PC를 대체하는 데 무게를 두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에 콘텐츠 소비를 포함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애플은 게임이나 영화를 기존 아이패드보다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고, 확실히 넓은 화면에서 하는 게임이 더 재미있을 거 같긴 합니다. 다만 이동성을 포함한 콘텐츠 소비를 원하는 소비자라면 여전히 아이패드 에어와 아이패드 미니를 추구할 것이며, 휴대를 배제한다면 아이패드 프로야말로 진짜 거실에서나 써야 할 기기가 될 것입니다.
 
 커다란 화면이 생산성을 끌어올린다는 것과 별개로 그냥 커다란 화면이 아이패드 프로의 정체성을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아이패드 프로는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제품, 아이패드 에어나 아이패드 미니는 콘텐츠 소비를 위한 제품이 된 겁니다.
 
 고로 이제부터 중요한 건 아이패드 프로가 실제로 랩톱의 생산성에 견주어 휴대할 수 있을지 iOS 9과 서드파티 앱으로 증명해야 하고, 커진 화면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거죠. 프로라는 이름에 걸맞은지 말입니다. 화면이 커진 건 첫 걸음 정도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