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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APPLE Geek Bible

애플에 3D 터치는 어떤 존재인가


 애플은 아이폰 6s를 공개했습니다. 외형은 바뀌지 않았지만, 로즈골드 색상을 추가했고, 12MP 후면 카메라와 4K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으며, 터치 ID도 강화했습니다. 그리고 '3D 터치(3D Touch)'는 가장 주목받은 기능입니다.
 


애플에 3D 터치는 어떤 존재인가
 
 애플은 애플 워치에 처음 '포스터치(Force Touch)'라는 명칭으로 탑재한 압력 감지 기술을 3D 터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아이폰 6s에 탑재했습니다. 이름만 바꾸었다기보단 압력을 감지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기술을 적용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변화까지 함께 명칭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3D 터치는 탭, 스와이프, 핀치 등의 터치 인터페이스 조작 방식에 '피크(Peek)'와 '팝(Pop)'이라는 새로운 조작 방식을 더하도록 했습니다. 터치스크린이 압력을 감지하여 콘텐츠를 미리 보고, 미리 본 콘텐츠에 맞게 사용자가 대응할 수 있습니다.
 
 가령 미리 본 사진을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강하게 눌러 팝 상태로 콘텐츠가 열리게 합니다. 하지만 미리 보는 피크 상태에서 위로 스와이프 하면 화면 전환 없이 자주 사용하는 동작을 제시하는 메뉴가 나타나고, 메뉴를 실행하더라도 다시 본래 화면에 머물게 됩니다. 보이는 것이 아닌 누르는 감각에 새로운 층을 만들어 놓은 거죠.
 
 또한, 애플 워치에서는 다른 압력으로 어떤 동작을 실행할지 파악하기 쉽지 않았으나 3D 터치는 피크와 팝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층을 나눔으로써 동작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했습니다. 간단한 기능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터치스크린의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자리한다면 활용법은 더 다양해질 것입니다. 3D 터치를 어떻게 인지해야 하는지 충분히 언어로 표현했으니까요.
 
 반대로 유용한 기능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피크는 길게 터치하는 것으로 대처할 수 있고, 길게 터치한 상태에서 스와이프로 메뉴를 띄우도록 구현할 수도 있습니다. 팝 상태로 연결할 수는 없지만, 다시 짧게 터치하는 것으로 해결하면 되겠죠. 3D 터치를 이용하는 쪽이 좀 더 유연할 순 있어도 압력을 감지한다는 게 인터페이스의 상호작용에서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으로 보기 어려우니 놀랄만한 발전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필자는 3D 터치의 유용성보다 애플에 어떤 존재인지 얘기하고자 합니다. 여태까지와 매우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조니 아이브(Jony Ive)의 하얀 배경에 내레이션을 진행하는 소개 영상은 아주 익숙합니다. 당연하게 3D 터치도 주인공이 되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브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거쳐 설명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영상 마지막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개발될 때 독보적 경험을 완성할 수 있다는 가장 명확한 사례겠죠.'라고 덧붙였습니다. 소개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터치 ID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분명 터치 ID도 3D 터치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을 보여준 기능입니다. 하지만 소개 영상에서 하드웨어 부분은 댄 리치오(Dan Riccio)가 설명했고, 키노트에서는 필 실러(Philip Schiller)가 맡았죠. 물론 아이브가 무대 위에 오르는 인물은 아닙니다. 단지 이번 3D 터치는 필러가 설명하긴 했으나 키노트에서 시연은 소프트웨어 부문 부사장인 크레이그 페더리기(Craig Federighi)가 맡았습니다.
 
 이전 아이폰을 공개한 행사들은 iOS 섹션과 아이폰 섹션을 분리하여 소개했었습니다. 페더리기가 iOS 섹션을 맡고, 실러는 하드웨어와 추가된 기능 등을 구분하여 설명하는 거였죠. 터치 ID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따로 설명한 것으로 터치 ID가 iOS에서 작동한다는 것보다 아이폰 5s에 탑재한 새로운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목적을 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터치 ID의 API를 공개하면서는 페더리기가 설명했죠. 당연합니다. 소프트웨어 영역이니까요.
 
 그러나 3D 터치는 iOS 영역에서 설명하지도 않았음에도 실러가 소개한 후 페더리기가 시연합니다. 딱히 iOS 섹션이 마련된 것도 아니었지만, iOS를 조작하는 것이라 페더리기의 등장이 어색하지도 않았고, 아이브의 소개 영상도 익숙했으니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똑같이 당연한 거였죠. 하지만 필자는 이 부분에서 아이브의 역할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필자는 지난 5월 '조니 아이브, CDO의 의미'라는 글을 통해서 최고디자인책임자(CDO ; Chief Design Officer)라는 직책을 부여받은 아이브의 역할을 얘기한 바 있습니다.
 
 전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은 같은 궤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이브도 이에 동의했지만, 당시 엔지니어링 담당이었던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과 아이브의 디자인 팀을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상당히 모순된 결정이었는데, 그런데도 부서를 분리한 덕분에 잡스는 양쪽의 중심이 될 수 있었고, 아이브 팀에서 디자인을 먼저 결정하면 엔지니어링 팀이 디자인에 걸맞은 부품을 준비하도록 주문했습니다. 그게 디자인이 엔지니어링 아래에 있지 않고, 동조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잡스는 생각한 겁니다. 아이브는 그걸 20년 동안 지켜봤습니다.
 
 팀 쿡이 CEO가 된 후 조직 개편으로 아이브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 디자인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 아이브가 CDO가 되었으며, 아이브의 기존 역할은 산업디자인 담당인 리처드 하워드(Richard Howarth)와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 담당인 앨런 다이(Alan Dye)가 분담하게 됩니다. 아이브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디자인의 결정권이 애플의 그 어느 직원보다 막강해진 거죠.
 
 즉, 애플의 디자인 결정권이 아이브에게 넘어간 것, 잡스가 과거 엔지니어링 팀과 디자인 팀의 중심에서 동조를 담당했던 것처럼 아이브가 그런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걸 CDO라는 직책이 방증하는 겁니다. 그 탓인지 지난 7월에는 '하드웨어 & 소프트웨어(Hardware & Software)'라는 캠페인을 진행했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디자인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3D 터치의 소개 영상을 아이브가 모두 진행한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둘의 동조를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한다는 상징성이 보였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영역에 놓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이 그간 섹션을 구분했던 키노트와 다르게 하드웨어를 발표하는 중에 iOS라던가 소프트웨어라던가 한 마디도 없이 3D 터치 자체를 페더리기가 참여하여 시연하는 이질적인 모습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잡스가 있었던 시절에는 모두 잡스가 했습니다. 모든 결정 권한을 가지고 하나로 합쳐서 설명하기 수월했으니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던 거죠. 그러나 잡스 이후 구심점을 다 나눠가지면서 그런 모습은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통합이 한 사람으로 대변되지 못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3D 터치는 각 부서가 제 역할을 가지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한 하나를 만들고자 했다는 걸 아주 강하게 내비치고 있으며, 아이브가 그런 역할을 수행했다는 걸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사실 어떤 회사라도 3D 터치 같은 기능을 스마트폰에 탑재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결합한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딱히 애플만의 전유물처럼 치켜세울 부분은 아니죠. 단지 3D 터치를 통해서 애플이라는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게 되었는지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여전히 아이브가 공방에서 알루미늄이나 깎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변화에 대해서는 외형적인 부분만 아이브 영역에 놓았었는데, 3D 터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엔지니어링을 전체 디자인 영역에 놓게 한 것입니다.
 
 이는 아이브가 잡스를 완전히 대체한다는 건 아니지만, 잡스라는 구심점만으로 디자인의 궤도를 확장했던 것과 다르게 잡스가 없는 애플의 디자인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쿡은 '아이브가 CDO가 되어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3D 터치가 그의 새로운 역할을 드러내는 단초가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