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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MS

서피스의 판매량보다 눈길이 가는 흐름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오래전부터 하드웨어 명가로 불렸지만, 하드웨어가 주요 사업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홀로 렌즈와 루미아, 그리고 더욱 강력해진 서피스 제품군을 내놓으면서 하드웨어 시장에서 MS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죠.
 


서피스의 판매량보다 눈길이 가는 흐름
 
 2004년, HP는 애플과 특이한 제휴를 했습니다. HP의 공급망에 HP 로고를 추가한 애플의 아이팟을 판매하고, HP PC에 아이튠즈를 기본 설치하는 것으로 HP는 휴대용 멀티미디어 시장에 진입하면서 애플은 아이튠즈 보급을 늘릴 기회를 얻은 것처럼 보이는 제휴였습니다.
 
 


 지난달, MS는 기업용 고객들을 대상으로 서피스 프로 3(Surface Pro 3)를 HP와 델의 공급망을 통해서 유통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제조사들이 MS의 하드웨어를 재판매하는 것입니다.
 
 사실 재미있는 건 HP는 PC 제조 부문과 엔터프라이즈 부문을 분사했습니다. 저조한 실적의 PC 제조 사업은 떼어놓고,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클라우드나 보안 제품에 집중하기로 한 겁니다. 고로 PC를 직접 판매하지 않더라도 기업 고객의 요구를 만족해준다는 점에서 서피스 유통을 MS에 패배 선언한 것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또한, 델은 지난주에 EMC를 670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델도 꾸준히 하드웨어 제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개인 기업으로 돌아오면서 기업 시장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으며, EMC 인수로 더 많은 기업 고객을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기기 보급에 굳이 자사 제품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HP와 비슷한 상황이죠.
 
 하지만 이런 제휴를 통해서 서피스의 판매량이 PC 시장에 영향을 끼칠 만큼 판도를 바꾸진 못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입니다. MS는 저가 제품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MS가 처음 선보인 랩톱인 서피스북(Surface Book)의 판매가는 1,499달러부터이고, 새로 공개한 서피스 프로 4(Surface Pro 4)는 899달러부터입니다.
 
 제휴 프로그램에 해당 제품들을 포함하더라도 저가 제품 수요까지 차지할 수 없고, HP와 델의 기업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므로 실질적인 성과는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 나올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HP와 델 등 PC 제조사들의 하드웨어 판매량은 어차피 줄어들고 있어서 서피스의 판매량이 이들 업체에 타격이 될 만큼 PC 시장을 이끌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거죠.
 
 상기한 것처럼 HP와 델은 기업 고객의 선택 만족도를 올리고, MS는 서피스 판매량을 조금이나마 증대하는 효과를 서로 보는 제휴로만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서피스의 판매량만 쟁점으로 놓았을 때 말입니다.
 
 

via_ipod.info


 2005년 9월, HP는 아이팟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아이팟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는데, 전체 아이팟 판매의 5~8% 수준이었습니다. 본래 HP가 아이팟을 판매하기로 한 발단은 MS가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윈도 XP 미디어센터 에디션을 판매하면서입니다.
 
 당시 MS는 아이팟과 아이튠즈로 치고 나오는 애플을 견제하고자 MP3 플레이어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무비링크, 냅스터 등과 제휴한 미디어에 치중한 PC를 윈도를 이용하여 공급할 생각이었습니다. HP도 14개 제조사 중 하나였는데, 마침 윈도용 아이튠즈가 출시되면서 차별화의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리고 HP는 아이팟을 재판매하여 미디어센터와 더불어 아이팟 고객을 자사 PC로 끌어들일 수 있으리라 믿었죠. 거기다 유럽에서 MS의 반독점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거하는 상황이 되자 HP의 아이팟 판매는 엄청난 기대를 몰고 왔습니다.
 
 문제는 HP 아이팟이 출시되자 애플은 후속 아이팟을 내놓았으며, 후면에 HP 로고가 박힌 아이팟에 감흥을 느끼는 소비자는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HP는 아이팟 판매로 손해를 봤지만, 애플은 윈도 PC에 아이튠즈 기본 탑재라는 이득을 보았고, 계약상 약 1년 동안 아이튠즈를 계속 탑재해야만 했습니다.
 
 왜 이 얘기를 꺼내는가 하면, MS와 HP, 델의 제휴가 제조사에는 심각하게 불편한 동거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MS는 아이팟을 떠넘겼던 애플처럼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업 시장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죠.
 
 애초에 HP나 델만 기업 시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MS도 이들의 협력자이자 경쟁자였습니다. 중요한 건 최근 MS도 클라우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고, 자사 주요 제품들을 클라우드 방식으로 돌려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자체 제조한 하드웨어를 내세워서 직접 보급합니다. 기업에서는 기기와 소프트웨어의 지원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고, 이런 시도는 다른 기업 시장으로 파이를 옮기는 업체들을 불안하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제조사들은 그런 MS의 서피스를 자사 고객에 판매해야 합니다. 상기했듯이 이것이 서피스 판매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지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으나 서피스를 원하는 고객, 혹은 서피스로 얻은 고객이 재판매하는 HP나 델의 순수한 고객이 아니라는 게 핵심입니다. 재판매로 한 대의 서피스를 판매하더라도 MS는 손해 볼 것이 없고, 공급한 기업이 MS의 오피스를 이용하고자 구독하기만 하더라도 기기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산 솔루션까지 MS가 쥘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아이튠즈와 아이팟을 연결하는 고리는 HP가 만들었지만, 강화한 건 애플 생태계뿐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이 탓으로 레노버 COO이자 사장인 지안프랑코 란치(Gianfranco Lanci)는 '우리가 서피스를 팔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레노버는 여전히 많은 하드웨어를 판매하고 있으며, 실적에 PC 판매 저하가 미치는 영향이 다른 제조사보다 적은 덕분입니다. 하지만 MS는 지난 분기 서피스로 8억 8,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고, 하드웨어 시장에서 고속 성장하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하드웨어 판매에서 해법을 찾지 못하는 HP나 델로서는 서피스 재판매의 선택을 피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 흐름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선 MS가 하드웨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음에도 PC 판매가 저조한 상황이 경쟁자로 만들기보단 MS에 더욱 막강한 지위를 줬으며, 제조사가 엔터프라이즈 시장으로 넘어가는 것조차 MS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애플과 비슷하게 하드웨어 전략을 이끄는 MS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는 걸 방증합니다. 재판매를 꺼내 들 수 있었던 것도 서피스 판매 매출이 계속 증가했고, 기업 시장에서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공고해졌다는 의미니까요.
 
 물론 제조사들은 이런 상황이 지속하는 걸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MS와 겹치지 않는 경쟁력을 가지고자 더욱 빠르게 움직이겠죠. 단지 MS가 이 흐름을 어떤 방식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 하드웨어 사업으로도 시장 지위를 놓지 않을 수 있느냐가 주요 관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건 이전의 MS와 구분할 명확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