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은 전자상거래로 유명하지만, 이익을 내는 핵심 사업은 단연 클라우드입니다. 지난해 1월, 아마존은 3억 7,500만 달러에 이스라엘의 반도체 업체인 '안나푸르나 랩(Annapurna Labs)'을 인수했고, 안나푸르나 랩이 개발한 칩을 사용하여 아마존 웹 서비스(AWS)의 운영 비용을 낮추는 계획이 인수 목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마존의 흥미로운 반도체 시장 진출
현재 아마존은 인텔과 제휴하여 칩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나푸르나 랩 인수가 인텔에 타격이 되거나 아마존이 일정 수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죠. 그러나 아마존은 좀 더 큰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나 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마존이 자체 브랜드를 내세워 반도체 시장에 진출한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7일(현지시각), 안나푸르나 랩은 네트워크 스토리지(NAS)나 무선 라우터, 소형 스트리밍 기기 등에 탑재할 수 있는 ARM 기반의 알파인(Alpine)이라는 이름의 칩을 발표했고, OEM 업체에 제공한다는 겁니다.
이는 단순 비용 절감보다 더 확장한 계획입니다. 사실 안나푸르나 랩이 개발한 칩이 성능으로 서버 시장에서 인텔 칩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단순히 몇몇 장비를 조금씩 대체하는 수준으로 장기적으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였기에 안나푸르나 랩 인수 자체는 그다지 조명받지 못했죠.
하지만 외부 업체를 대상으로 판매하겠다는 건 예상한 인수 목적을 뒤집은 것입니다. 비용 절감이 아닌 매출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쟁점은 '아마존이 왜 뜬금없이 반도체 사업을 하는가'입니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분야이고, 반도체 판매만으로 이익을 내기는 몹시 어려운 탓에 우려가 앞설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마존이 독자적인 사물인터넷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파인 칩을 납품할 곳은 소형 가전제품을 제조하는 곳이고, 아마존은 2014년에 블루투스 스피커 기반의 사물인터넷 허브인 '에코(Echo)'를 내놓았습니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사물인터넷 시장 파이를 키우고, 커진 시장에 반도체를 판매하는 것으로 이익을 내는 전략을 마련할 수 있는 겁니다.
당연히 사물인터넷 기기 업체들이 꼭 아마존의 칩을 사용하진 않겠죠. 다만 아마존의 사물인터넷 전략 위에 사물인터넷 기기 업체를 지원하면서 OEM을 통한 자체적인 브랜드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킨들이라는 사례가 있기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가능성도 큽니다. 그리고 자동차입니다.
자동차 업체 포드는 CES 2016에서 아마존의 에코와 에코에 탑재한 개인 비서 시스템인 알렉사(Alexa)를 자사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연동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예를 들어 집에 있는 사용자는 알렉사를 통해서 전기차의 충전 상태를 확인하거나 원격에서 내부 온도를 조절하는 등 명령을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운전 중인 상태에서 차고의 문을 열거나 집의 조명을 켤 수 있습니다.
여타 커넥티드 시스템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두 회사가 이런 연결 방식을 고려한다면 아마존이 포드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시나리오도 범위 안이라는 겁니다. 또한, 사물인터넷 시장에 진입하려는 제조사들은 현재 커넥티드 홈과 커넥티드 자동차를 분리하여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데, 두 공간을 연결하는 솔루션을 명분으로 칩 공급에 나서는 것도 꽤 매력적인 조건이죠.
그렇다면 아마존은 포드와 제휴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에코라는 각 공간을 연결하는 허브, 이 허브를 연결하여 명령을 전달할 가상 비서, 이 시스템을 묶어놓을 칩이라는 3가지 무기를 가지는 셈입니다.
물론 상기한 내용은 가정이지만, 아마존이 사물인터넷 시장을 노리고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다면 경쟁력을 인텔 등 경쟁사와 정면으로 겨루는 것이 아닌 자사 자원을 활용하는 쪽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고, 진행 중인 사물인터넷 사업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타당한 전략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면 안나푸르나 랩으로 클라우드 사업 비용 절감만 노리는 것보다 이쪽이 장기적으로 더 기대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겁니다. WSJ은 아마존의 이런 행보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아마존이 반도체 사업을 유용하게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김칫국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 포드는 이쪽 분야에서 이미 블랙베리와 제휴한 상태입니다. 자사 차량에 QNX 기반의 대시보드를 탑재했고, 블랙베리는 자사 사물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차량의 자원 관리나 수집한 로그 데이터로 낡은 부품을 교체하도록 알리는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아마존도 AWS IoT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작년에 선보인 바 있습니다. 자동차를 비롯하여 각종 센서나 전구 등 기기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인데, 포드는 차량 공유 서비스 등 데이터 사업을 미래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어서 아마존의 의지만 아니라 포드에게도 AWS IoT는 의미 있는 플랫폼입니다.
커넥티드 사업이 주류로 이동하면서 여러 기업의 복잡한 제휴 관계가 계속 이뤄지는 상황이므로 포드가 과거에 보인 행보나 아마존의 사업 분야는 두 회사의 미래 전략과 잘 연결되며, 아마존의 반도체 사업도 그런 지점에 있다는 건 성급한 결론은 아닙니다.
되레 이번 사례를 실마리로 아마존이 또 어떤 업체와 커넥티드 사업을 제휴하고,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쪽이 합리적입니다. 필자는 그 점이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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