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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T일반

HP와 델의 태블릿 동상이몽

 HP와 델은 한때 PC 시장을 호령한 최고의 PC 제조사였습니다. 지금은 모바일 시장에 실패한 대표적인 기업이 되었지만, PC하면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 이 두 기업이 모바일 시장에서 허우적거리다 갈피를 잡았는지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이몽인가 봅니다.
 



HP와 델의 태블릿 동상이몽


 HP는 LG에 웹OS 라이센스를 넘겨주면서 스마트폰이 아닌 태블릿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델은 투자 문제로 난항을 겪다 최근 마이클 델의 개인 회사로 전환에 성공하면서 이전에 스마트폰을 만들기도 했지만, 태블릿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복합기 사업이나 모니터 사업 등 각자 특색은 그대로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은 것이 둘 다 태블릿인 겁니다. 그런데 태블릿에 접근하는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HP와 델


 델은 지난 10월, 윈도우 8.1 태블릿 2종과 안드로이드 태블릿 2종을 내놨습니다. 똑같이 배분한 것처럼 보이지만, 제품 제원이나 가격을 보면 윈도우 태블릿에 주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델은 '윈도우 8.1 제품을 내놓게 되어 기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제품이 바로 '델 베뉴 프로 8(Dell Venue Pro 8)'입니다. 가격은 299달러지만, 1.8GHz 쿼드 코어 베이트레일 프로세서, 32GB/64GB 저장공간, 2GB 메모리, 8인치 1280 x 800 디스플레이, 마이크로 SD 슬롯을 제공합니다. 저렴하면서 강력한 성능, 그리고 저전력에 RT 버전이 아니라는 점이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부상하기에 적합했습니다. 그와 비교되는 8인치 안드로이드 제품인 델 베뉴 8은 안드로이드 4.2.2, 1280 x 800 해상도, 10시간 배터리 등으로 나쁘지 않은 성능이지만, 179.99달러의 가격이 프로와 120달러 차이입니다. 안드로이드 태블릿이 성장하고 있다지만, 기존 윈도우 환경을 제공하면서 저렴하고, 안드로이드와 대비되는 윈도우 RT가 아니라는 것이 가격 차이를 메워 프로 8이 델의 주력 제품으로 꼽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격 정책에 대해서 '그래도 베뉴 8이 더 저렴하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델의 태블릿 라인에서 보자면 그럴듯하지만, 윈도우 태블릿을 안드로이드 태블릿과 분리해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MS가 제작한 서피스2 RT가 449달러로 화면 크기 차이가 난다는 점을 빼면 150달러나 차이 납니다. 베뉴 8도 넥서스 7나 삼성의 갤럭시탭3 7.0보다 저렴하지만, 윈도우 태블릿 영역에서 독보적인 가격입니다. 델은 적절한 사양과 기존 생태계가 탄탄한 윈도우, 그리고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윈도우 태블릿 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반면, HP는 안드로이드 태블릿에 주력합니다. 올해 안드로이드나 크롬OS를 주력으로 하는 친구글 전략에 뛰어든 HP는 6월에 안드로이드 올인원 데스크탑을 내놓기도 했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제작 중인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7인치 태블릿인 '슬레이트7 익스트림(Slate7 Extreme)'과 7.9인치 태블릿인 '슬레이트8 프로(Slate8 Pro)', 2종의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출시했습니다. 7인치 1280 x 800 디스플레이, 1GB 메모리, 16GB/32GB 저장공간, HDR 촬영이 가능한 500만 화소 카메라와 200만 화소 전면 카메라, 마이크로 SD 슬롯을 제공하는 슬레이트7 익스트림은 199달러로 책정되었으며, 7.9인치 1600 x 1200 해상도, 800만 화소 후면 카메라, 210만 화소 전면 카메라, 1GB 메모리, 마이크로 SD 카드 슬롯 등을 제공하는 슬레이트8 프로는 329달러로 책정되었습니다. 둘 다 1.8GHz 테그라 A15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했고, 안드로이드 4.2.2 기반의 제품입니다.
 
 여기서 델과 HP가 갈림길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상이몽

 


 베뉴 8의 가격이 슬레이트7 익스트림보다 저렴하니 슬레이트7 익스트림이 팔리지 않으리라는 것이 결론이 아닙니다. 둘의 태블릿 전략에 주력 운영체제가 다르다는 것 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HP의 태블릿 라인이 저렴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 안드로이드 태블릿의 가격과 비교해보면 저렴한 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양도 출중합니다. 그러나 델의 베뉴 8보다 비쌉니다. HP는 안드로이드를 중점으로 한 태블릿 전략으로 구글이나 삼성의 주력 제품과 비교하여 경쟁하도록 구도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적당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안드로이드 태블릿의 주도권을 가져와 강력한 PC 제조사로 재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여러 안드로이드 태블릿과 비교되면서 구매 가치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델은 베뉴 8이라는 저렴한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내놓았음에도 가장 주목받는 제품은 경쟁 제품과 상대적으로 가격이 심하게 낮은 베뉴 프로 8입니다. 이것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델이 안드로이드 태블릿이든 윈도우 태블릿이든 적당하면서 저렴한 제품을 내놓는다는 인상이고, 베뉴 8이 주력이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잘 팔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델의 태블릿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베뉴 8으로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델이 태블릿을 주력으로 한다는 점을 소비자에게 상기할 수 있고, 이는 이후 델의 태블릿 전략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즉, '정공법으로 안드로이드 태블릿 시장 공략을 시작한 HP'와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보조적으로 사용하면서 윈도우 태블릿을 주력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델'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태블릿 제조사로 성장하려는 두 업체가 태블릿을 두고 서로 다른 길, 전혀 다른 꿈을 선택한 것입니다.
 



태블릿



 당장 어느 쪽의 전략이 더 낫다고 평가하긴 어렵습니다. 델이 후속 제품을 내놓지 않고 있고, HP의 태블릿 2종의 판매 추이를 지켜봐야 하므로 내년 상반기가 지나야 구체적인 비교를 할 수 있습니다. 단지 PC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두 업체가 태블릿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두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격돌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보가 태블릿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중요하게 지켜보아야 합니다.
 
 만약 델이 승승장구한다는 것은 윈도우 태블릿 시장이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델의 RT 전략에 따라서 윈도우 내 플랫폼 전략도 예상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윈도우 태블릿을 가장 밀고 있는 업체가 델이니 말입니다. HP의 안드로이드 태블릿 전략이 성공한다면 안드로이드 태블릿 시장이 몇몇 업체에 머물지 않고, 다변화되어 간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HP 제품의 우수함의 증명이 될 수도 있지만, 여러 제품을 선택해도 괜찮은 수준의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확보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델이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계속 생산할 것인지, 아니면 단종해버릴 것인지, HP가 친구글 전략을 어느 수준까지 유지할 것인지 등은 치열한 태블릿 경쟁에서 변두리처럼 보이는 이들의 역할도 지켜볼 필요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마음을 잡은 듯한 델과 HP는 내년에는 더욱 본격적으로 태블릿 시장에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과연 과거 PC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을지, 아니면 급변하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해 재도전이 처참히 무너지게 될지, 결단의 지점에 들어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