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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amsung

삼성, 2년 전 인수한 박시를 해체하다


 한 때 삼성은 '콘텐츠 생태계 역량'에 많은 압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이튠즈 스토어와 앱스토어를 지닌 애플과 비교한 경쟁력에서 삼성은 매번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부족을 지적받았고, 의심을 떨치고자 했죠. 최근에는 기어 VR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 생태계의 확장으로 긍정적인 평가도 얻고 있지만, 잊힌 게 있습니다.
 


삼성, 2년 전 인수한 박시를 해체하다
 
 2013년 7월, 삼성은 이스라엘 셋톱박스 스타트업인 '박시(Boxee)'를 CEO인 에브너 로렌(Avner Ronen)을 포함하여 40명 정도의 직원을 삼성에 채용하는 조건으로 3,000만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2007년 설립한 박시는 XBMC 기반의 오픈 소스 프로젝트로 넷플릭스, 판도라, 부두, 스포티파이 등의 콘텐츠와 PC나 NAS의 콘텐츠도 재생할 수 있는 셋톱박스인 '박시 박스(BoxeeBox)를 개발한 업체입니다.
 
 


 더 버지는 삼성이 박시를 완전히 해체하고, 직원 전원을 해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인수할 당시 인원을 40명이었으나 100명까지 늘리면서 공격적으로 투자한 인수였지만, 2년 만에 손을 떼게 된 것입니다.
 
 박시의 가장 큰 특징은 본래 엑스박스(Xbox) 용으로 제작한 소프트웨어였으나 이를 오픈소스로 돌리면서 미디어 센터를 이용자가 직접 사용화할 수 있게 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미디어 센터 안에 서비스를 추가하기 쉽고, 개발자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앱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생태계를 확장할 플랫폼으로는 당시 어느 셋톱박스와도 비교하기 어려웠습니다.
 
 애플이나 로쿠(Roku)조차 제공하는 콘텐츠에만 주목했고, 애플 TV는 콘텐츠, 로쿠는 가격으로 대결하는 지점이었기에 지금처럼 셋톱박스 경쟁이 여러 방향에서 일어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삼성의 박시 인수는 아주 흥미로운 것이었죠. 콘텐츠 강화가 맞긴 하지만, 박시 플랫폼을 삼성 TV에 고스란히 넣을 수 있다면 삼성이 TV 콘텐츠 생태계를 쥘 수 있다는 예상까지 할 수 있게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 박시를 해체했다는 건 2년 동안 마땅한 성과가 없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실제로 삼성의 TV 제품만 보더라도 박시의 요소가 들어갔다는 걸 인지할 수 없고, 셋톱박스 자체도 발전이 없었으므로 삼성이 내버려뒀다기 보단 둘을 연계하는 데 한계에 부딪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다만 삼성의 TV 전략 변경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죠.
 
 


 삼성이 박시를 인수할 시기에 시장조사업체 NPD그룹의 보고서를 보면, 애플이 TV와 영화 다운로드 콘텐츠 전체 시장 점유율의 66%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렌탈 점유율까지 45%였고, 이는 아마존, 부두, 엑스박스 비디오의 점유율을 합친 것보다 높은 수치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애플의 콘텐츠 장악력과 함께 애플이 셋톱박스가 아닌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일체형 TV를 개발 중이라는 소식이 삼성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물론 삼성의 TV가 높은 점유율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쉽게 위협이 되리라 보긴 어려웠으나 콘텐츠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삼성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2012년에는 소니가 인수한 가이카이(Gaikai)와 제휴하여 삼성 스마트 TV 제품군에 클라우드 게임을 제공하기로 했고, 박시를 인수하기 한 달 전에는 스마트 TV용 게임 개발 업체인 '모블(MOVL)'을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직접 스마트 TV용 게임을 개발하고, 박시 플랫폼으로 제공하면서 TV 콘텐츠 생태계를 강화하겠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죠.
 
 그런데 현재는 이런 성과가 공격적인 행보를 느낄 구석을 찾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삼성의 TV는 시장에서 막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애플이 일체형 TV를 내놓지도 않고,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성장, 차세대 콘솔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4와 엑스박스 원의 등장 탓에 딱히 삼성이 콘텐츠 경쟁을 하려고 달려들지 않더라도 TV와 연결해야 하는 콘텐츠들로 오히려 TV의 존재감이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필자는 박시의 해체의 가장 큰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삼성이 TV 사업에서 자체적인 콘텐츠 공급에서 실패했다는 것보단 그래야 할 필요성을 당시보다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박시로 가시적인 성과도 내지 못했기에 TV 생태계 전략이 3년 전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거죠.
 
 이는 어떻게 보면 회귀이지만, 달리 보면 삼성이 TV 사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달려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콘텐츠 사업에 쏟았던 능력을 다른 곳으로 흘릴 수 있게 되었다는 신호이니까요.
 
 


 단지 이런 전략 수정에는 의심을 하여야 합니다. 분명 TV 성능에 중점을 두어 삼성 나름의 경쟁력 확보에 열을 올릴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콘텐츠 경쟁력이 앞지르게 되었을 때 삼성은 스마트폰처럼 제휴사 위치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의 행보만 하더라도 주요 가전 행사에서 하드웨어도 없는 넷플릭스는 어디든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느 TV 제조사든 넷플릭스를 제공하고자 제휴하며, 그 탓으로 콘텐츠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는데, 삼성이 TV 품질로 다른 업체들을 따돌린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생태계가 강력하지 않다면 넷플릭스에 휘둘릴 수 있는 위치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TV는 장식품이 아니니 말입니다.
 
 삼성이 그런 부분을 간과하고 있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스마트폰에서 겪고 있는 문제니까요. 그러나 박시 해체가 삼성의 전략 변경의 한 축이라면 이후 박시 플랫폼이 품었던 개념이 아닌 다른 해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제는 그게 무엇일지 두고 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