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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APPLE Geek Bible

조너선 아이브와 애플 워치


 웨어러블에 패션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입이 아픕니다. 달리 말하면 당연하다는 겁니다. 착용한다는 점에서 기존 전자 기기와 다르게 외형은 제품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이며, UI/UX 디자인을 보기 앞서서 착용했을 때 얼마나 미려한가 하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소비자를 자극할 수 없습니다.
 


조너선 아이브와 애플 워치

 애플은 자사 스마트 워치인 '애플 워치(Apple Watch)'를 내년에 출시할 계획입니다. 애플의 첫 웨어러블 제품이자 아이패드 이후 등장한 새로운 카테고리로서 주목받고 있는데, 출시 전부터 파리 패션위크 기간에 시제품을 전시하거나 패션모델을 기용하여 홍보하는 등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기술 업계뿐만 아니라 패션 업계의 평가도 시장에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via_mtv


 애플 외 삼성도 패션 업계와의 협력으로 웨어러블 시장을 공략하고 있긴 합니다. 전략만 보면 애플보다 먼저 나섰죠. 하지만 두 업체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애플은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그러니까 패션 업계를 좀 더 가까이 끌어들이기 위해서 버버리의 안젤라 아렌츠(Angela Ahrendts), 태그 호이어의 패트릭 프루니오(Patrick Pruniaux) 등의 거물을 영입했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애플이 패션 업계로 발을 넓혔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수많은 조건 중 하나이고, 그 조건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인물이 포함된다는 사실과 이것이 어떤 효과로 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입니다.
 
 아이브는 꾸준히 여러 매체를 통해서 얼굴을 내밀었지만, 최근 1년간 활동은 어느 때보다 바빴습니다. 지난해는 팀 쿡이나 크레이그 페더리기와 함께 블룸버그, USA 투데이와 인터뷰를 가졌으며, 올해는 타임과 단독으로, 그리고 얼마 전 베니티 페어(Vanity Fair)의 서밋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애플과 디자인에 대해 직접적으로 들을 기회가 많았던 것입니다.
 
 또한, 유명 패션 매체인 보그(Vogue)는 샤넬의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애플 워치 평가를 전하면서 자리를 함께 한 아이브와 최근 애플에 합류한 마크 뉴슨(Marc Newson)를 언급했고, 애플 워치는 보그 중국 11월호 표지를 장식했으며, 아예 천재 디자인이라면서 '애플 워치 뒤의 남자'라는 제목으로 그를 조명했습니다.
 
 보그가 애플과 손을 잡고, 애플 워치를 내세운다고 한들 핵심은 아이브가 애플 워치의 디자이너로서 비친다는 것이며, 기능적인 것보다 '애플 워치가 디자인 면에서 가치가 높은가?'하는 쪽으로 분위기는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 점이 경쟁 업체와 애플이 패션 업계에 대응하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애플 워치가 스마트 워치의 디자인 동향에 한 축이라면, 그 동향을 만든 이를 아이브로 내세울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이미 내세우고 있습니다. 애플 워치가 어떠한 디자인 요소와 개념을 지녔으며, 그걸 표현하기 위해 제품을 바라본 시각 등 전자 기기에서 중요한 성능과 기능을 벗어나서 아이브가 상징하고, 내보이는 건 디자인이고, 애플 워치의 디자인 평가를 화두로 삼았습니다.
 
 단순히 제휴만으로 패션 요소를 강조하기보단 디자인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결정하고, 이를 패션 관점에서 풀어낼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었으며, 디자이너가 직접 관여하면서 디자인을 확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플 워치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애플의 패션 업계로의 확장에 도움이 됩니다.
 
 패션 업계와 디자인에 대한 교감이 이뤄지고, 거기서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올 수 있어야만, 바라보는 시각이나 동향의 확대에 패션 업계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애초에 기술 업체 중 애플이 아이브를 내세우는 것처럼 디자이너의 역량만으로 디자인 평가를 크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업체는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디자인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인 마크 뉴슨도 애플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그들이 있기에 애플의 디자인은 완벽해.'라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든 덜떨어졌든 애플이 패션 업계로 진입하기 위한 장벽을 넘어서, 새로운 장르, 상징성, 애플 워치의 전략 등 디자인 방면으로 여러 가지를 대표할 수 있다는 자체에 의미가 크다는 겁니다.
 
 아이브가 최근 대외 활동을 늘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좀 더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내뱉고, 언급할 수 있어야 애플 워치의 디자인 정체성의 확립이나 패션 업계로의 진입, 그리고 디자이너로서의 평가에 따라 달라질 애플 워치의 위치가 경쟁 제품들과 바뀔 테니까요. 패션 업계가 여타 스마트 워치와 달리 애플 워치를 주목하는 이유도 별다른 게 아닙니다. 아이브라는 디자이너가 애플 워치에 담겨 있고, 그를 평가하는 것이 그대로 제품에 반영되므로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애플이 꾸준히 디자인 역량을 키우고, 강조했던 것이 지금 가장 큰 빛을 내고 있습니다. 이 탓으로 한동안 경쟁 업체들은 유명 디자이너와의 콜라보레이션이나 영입에 힘을 쏟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브는 무려 22년 동안 애플에서 근무한 애플 그 자체입니다. 회사의 목표를 이해하고, 이제는 거칠 것도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애플 워치가 왜 다른 스마트 워치와 다른 분위기를 내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via_Techaeris


 아이브는 지난해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건 쉽지만, 이틀만 지나면 그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들고자 노력하는 건 제품을 더 개선하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을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빠르게 변하는 동향에 대해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디자인에서 조금 느리게 움직일 수 있는 제품이었다면, 그럴 수 없는 웨어러블 시장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들어있습니다.
 
 디자인을 중심으로 기술을 합친 것이 애플 워치라고 애플은 말합니다. 그렇기에 위의 고민이 애플 워치가 꾸준하게 디자인에서 거듭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