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소라넷 폐쇄 논란, SOPA와 PIPA를 기억하라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필자는 웹이 범죄에 이용되는 일은 있어선 안 되고, 그런 웹 사이트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몇 번이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소라넷 폐쇄 논란, SOPA와 PIPA를 기억하라
 
 소라넷이 어떤 웹 사이트인지는 최근 화두가 된 만큼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성인 웹 사이트면서 도촬 영상이나 강간 모의 등 악질적인 내용이 게재되는, 비도덕적인 범법 행위를 공유하는 곳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은 강신명 경찰청장에서 소라넷 폐쇄를 요청했고, 경찰은 미국과의 공조로 소라넷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소라넷 측은 사이트의 주요 섹션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능동적인 모니터링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는데, 오래전부터 범법 행위를 부추기고, 방관했었기에 이것만으로 폐쇄 목소리가 잦아질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소라넷을 공권력이 개입하여 폐쇄하는 순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공권력이 개입하긴 해야 하지만, 표적이 웹 사이트가 되어선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현재는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다 보니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이 가진 의미와 어째서 월드 와이드 웹이 발전하게 되었는지 알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거기까진 좋습니다. 문제는 처음부터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았던 탓에 우리나라 인터넷 규제안은 엉망진창입니다. 어떤 사건이 생기면 여론에 의해 관련한 법안이 순식간에 생기고, 나중에는 이것이 걸림돌이 되어 다시 여론에 밀려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회칼로 인한 살인 사건이 자주 생기자 '회칼 규제안'이 등장했지만, 과도로 회를 썰게 되고, 회가 유행하자 '회를 회칼로 못 썰게하면 어쩌냐!'라는 게 현재 우리나라의 인터넷 규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여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단지 여론 형성 과정에서 인터넷이 어떤 존재인지, 월드 와이드 웹이 왜 생겼는지 빼버린 것이 매번 똑같은 상황을 만들었고, 이번 소라넷 폐쇄 논란도 똑같다는 겁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소라넷이 없어져야 할 존재가 아니다.'라는 게 아닙니다.



 2012년, 미국은 SOPA(The Stop Online Piracy Act), PIPA(PROTECT IP Act)로 불리는 규제안으로 시끄러웠습니다. SOPA와 PIPA가 상정된 건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저작권을 침해하는 웹 사이트가 증가했고, 이들을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는 이 법안을 지지했고, 대부분 음반사나 영화사들도 찬성한다는 의사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구글, 이베이, 모질라, 트위터, 위키피디아 등은 반대 서한을 미국 정부에 보냈고, 불법 복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조차 SOPA와 PIPA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법안의 골자는 아주 간단합니다. 저작권을 침해하는 미국 외 웹 사이트를 컴캐스트 등 인터넷 업체가 차단하도록 법무부가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당연한 얘기 같지만, 반대하는 쪽의 이유도 간단했습니다.
 
 '너무 범위가 넓다.'
 
 반대하는 쪽에서도 저작권 침해는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웹 사이트를 차단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겁니다. 웹에서의 행위에 범죄가 섞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이용하거나 만든 사람이 아닌 웹 사이트로 규정했을 때 어떤 웹 사이트든 적용할 수 있고, 남용할 우려가 있다는 거죠.
 
 가령 페이스북에 대량의 불법 음원이 한꺼번에 공유되면 페이스북을 저작권을 침해한 해외 웹 사이트로 규정하여 차단할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페이스북의 메인 서버는 아일랜드에 있고, SOPA와 PIPA에 근거하면 충분히 차단할 수 있죠. PIPA는 '저작권 침해 외 서비스가 있는 웹 사이트는 제외'지만, SOPA는 '저작권 침해를 한 모든 웹 사이트'로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범위가 넓다는 이유는 우리나라에 이미 적용된 상태입니다. 안보위해행위, 도박, 음란 등 불법, 유해 웹 사이트를 차단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warning.or.kr'말입니다. warning.or.kr을 통해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구제하고, 마약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취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올해 초 웹툰 전문 서비스인 레진코믹스가 차단된 사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멀쩡히 국내 법인으로 운영되는 웹 사이트였지만, 성인물을 이유로 차단되었고, 많은 항의에 하루 만에 차단은 풀렸습니다. 차단 이유나 레진코믹스 자체에 대한 옳고 그름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핵심은 warning.or.kr을 띄우는 규제안조차 범위를 명확하게 하지 않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라는 것이고, 해당 사건이 있었던 후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은 반발 개정인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발 개정안을 내놓은 것처럼 계속 수정해서 해결하면 될 것 아닌가?'
 
 다시 SOPA와 PIPA로 돌아와서, 결과적으로는 ISP 차단 등 논란 조항이 삭제되면서 반쪽짜리 법안이 되었습니다. 해당 조항만으로 완벽히 차단할 수 있지도 않은데, 규정안이 만들어졌을 때 상관없는 웹 사이트가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레진코믹스처럼 말이죠.
 
 최근 필자가 흥미롭게 본 건 아랍어 사이트입니다. 소라넷 폐쇄를 주장할 수 있는 건 소라넷이 한국어로 운영되고 있고, 그것을 근거로 한국인이 이용하는 사이트라고 단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문제가 된 건 메인 언어를 아랍어로 설정하면서 음란물이나 마약 거래를 하는 웹 사이트가 늘었다는 겁니다. '중동이 문제야?' 싶겠지만, 안내 이미지는 영어를 사용하는 등 해당 웹 사이트가 누굴 겨냥한 것인지 알 수 없게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랍어로 설정된 탓에 해당 키워드만 알 수 있다면 구글 등 검색 엔진으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랍어를 영어로 변환해주는 플러그인으로 외부 접근은 어렵지만, 접속한 후에는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점점 더 교활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아랍어가 모국어인 사람도 많지만, 이런 웹 사이트가 북미나 유럽을 겨냥한 데다 되레 아랍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많다는 게 해당 웹 사이트를 어떤 국가에서 주로 이용하는지 확인을 어렵게 합니다.
 
 만약 소라넷이 한국어로 운영되지 않고, 아랍어로 운영되면서 언어를 변환해주는 플러그인을 배포한다고 해봅시다. 해당 웹 사이트를 한국인이 이용한다고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한국어가 아닌 웹 사이트이니 warning.or.kr을 띄우면 그만인가요? 그럼 플러그인이 문제라고 웹 브라우저를 차단해야 할까요? 소라넷을 폐쇄한다면 똑같이 규정하여 온 세계의 불법 웹 사이트를 우리나라가 나서서 폐쇄하고 나서야 할까요? 말장난 같지만, 그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인 아주 넓은 범위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더 교활해진 웹 사이트는 늘어가는 데, 현 사태만 보고 SOPA나 PIPA를 내놓는 건 옳지 않다는 게 미국의 생각이었죠.
 
 대신 미국이 활발한 건 해당 웹 사이트를 개발하거나 만든 참여자의 체포입니다. SOPA와 PIPA라는 강력한 인터넷 규제안을 등장하게 한 더파이럿베이의 공동 설립자 프레데릭 네이가 1년 전 태국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5년간 도피했으며, 인터폴과 현지 경찰, 스웨덴 경찰이 합동으로 체포에 성공했습니다. 올해 6월에는 온라인 마약 거래 사이트 실크로드의 설립자 윌리엄 울브리히트는 임시 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죠.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일개 웹 사이트의 운영자를 붙잡기 위해 5년 동안 경찰 인력과 비용을 투입하고, 종신형이라는 중형을 선고하는 것을 소라넷에 적용한다고 해봅시다. 웹 사이트를 차단하는 건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자유로운 공간이고, 무한정 자유가 보장되는 만큼 더 가혹한 처벌과 높은 범죄 수위로 봐야 한다는 게 미국 정부와 법무부의 생각입니다. 많은 비용을 쓰지만, 그만큼 잘못된 자유를 만끽한 범죄자에게 모두 밀어넣는 겁니다.
 
 자, 그럼 소라넷 운영자를 체포하여 중형을 내리면 될까요? 그렇습니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해당 참여자를 체포하고자 쓰일 비용과 처벌 수위를 논해봅시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냐면 차단이라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그런 비용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미국이 멍청해서 큰 비용을 쏟는 게 아닙니다. 인터넷과 월드 와이드 웹은 규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전제가 있기에 차단보다는 고생하는 쪽을 택한 겁니다. 그 간단한 방법을 쓰는 곳은 중국이나 북한이나 러시아 같은 국가죠.
 
 '그럼 넌 그 돈 많은 미국 가서 살아라!'라고 내지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소라넷을 차단할 수 있는 근거의 범위는 아주 넓고, 그것을 누군가 규정할 수 없으며, 목표가 웹 사이트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만약 소라넷을 차단할 근거가 있다면 이미 논란되고 있는 트위터를 통한 성매매 알선을 근거로 트위터부터 차단해야 할 테니까요. 트위터를 차단하면 될까요? 회칼을 규제하더라도 과도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으니 회칼을 규제하자는 주장은 아주 멍청한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 왜 인터넷 규제에 대해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지 필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갈구하는 자유를 스스로 억압하는 행위인데도 말입니다.
 
 소라넷의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강조하지만, 소라넷을 사라져야 옳고, 그들은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죽이고 있습니다. 다만 그 잘못된 자유를 억압하고자 자유가 보장되는 공간을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대상을 웹 사이트가 아닌 사람으로 옮겨야 한다는 겁니다. 똑같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이 인터넷과 월드 와이드 웹의 의미를 해치지 않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토대로 팔과 다리가 잘린 SOPA와 PIPA처럼 소라넷 폐쇄 논란의 초점을 바꿔야 합니다.


 


 '아니, 근데 우리가 왜 인터넷과 월드 와이드 웹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 거야?', '그건 서방 국가의 생각이고,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만의 인터넷에 대한 의미를 만들면 되는 거잖아.'라고 말한다면 더 길게 설명할 생각이 없습니다. 중국에서 웹 서비스를 하려면 무조건 베이징에 서버를 두어야 하고, 그래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게 중국의 인터넷이고, 월드 와이드 웹의 의미니까요.
 
 우리나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소라넷을 차단하는 게 우리나라의 의미라면 그것을 누가 규정할 것이며, 어떤 대상까지 포함할 건가요?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우리나라 웹 사이트라면 문제 될 게 없지만, 통제와 억압이 우리나라의 인터넷이라면 그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범위에 이 블로그가 포함될지도 모를 일이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소라넷은 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웹 사이트를 폐쇄하려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그럼 무슨 방법이 있는데?'
 
 더파이럿베이의 창립자 3명은 모두 구속되었지만, 더파이럿베이는 현재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으나 인터폴은 여전히 더파이럿베이를 추적하고 있으며, 인터넷 사업자들은 더파이럿베이를 차단할 수 있는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웹 사이트가 없어진 건 아니네.'
 
 어쨌든 그들은 그들의 자유를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유를 지키면서도 충분히 해결할 방안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