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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APPLE Geek Bible

애플의 파도가 느려진 이유


 스티브 잡스 복귀 이후 애플은 연이은 인기작으로 시장 동향의 표본이었습니다. 파도는 거칠었고, 빨랐습니다. 다른 업체들이 따라가기 바쁠 만큼 주도적이었죠. 지금도 애플에 거는 기대는 그 점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전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그 기대를 채워주는 것이 애플뿐만 아니라는 겁니다.
 


애플의 파도가 느려진 이유
 
 애플의 거센 파도는 느려졌습니다.
 
 '아이패드 이후 후속작이 없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이어 왔던 인기작들의 출시 공백을 생각해보면 '아직 더 기다려봐야 한다.'이지 '늦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애플의 파도가 느려진 건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팟 1세대 출시 이후 아이폰이 등장하기까지 6년이 걸렸고, 아이폰부터 아이패드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아이팟을 출시한 시점부터 아이패드 개발이 진행되었고, 새로운 가지로 아이폰이 먼저 세상에 나왔지만, 어쨌든 출시 공백으로 본다면 후속작이 없다는 점이 애플의 파도 속도를 줄였다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단지 현재 시장을 보면 애플이 주도적인 위치라기보단 전반적인 동향이 드러난 상황에서 각 업체가 한꺼번에 달려든 상황입니다. 웨어러블이 그렇고, 사물 인터넷이 그렇죠. 애플도 대응하고 있지만, 여타 업체가 애플에 대응하던 것과 다르게 애플이 동향에 함께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겁니다. 예를 들어 초창기 안드로이드는 블랙베리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었지만, 아이폰의 등장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9월에 1.0 버전이 공개되었으며, 10월에 G1이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합류합니다. 그리고 2010년 1월에 첫 레퍼런스 제품인 넥서스 원을 출시했습니다. 아이패드를 공개한 시기죠.
 
 돌이켜보면 그렇습니다. 아이팟이 PIXO OS를 채용하여 아이팟을 선보였을 때, 많은 업체가 아이팟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이를 수년간 지속하였고, 그런 와중에 아이폰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많은 업체가 아이폰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안드로이드의 첫 레퍼런스 스마트폰이 나온 시점에서 아이패드가 등장합니다. 분명 아이폰과 아이패드 사이의 공백이 존재하지만, 이것이 짧게 느껴졌던 건 아이폰이 나온 시점부터 아이패드가 등장할 때까지 아이폰에 견줄만한 스마트폰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아이팟과 아이폰 사이의 공백도 길지만, 아이팟을 여러 라인으로 확장하면서 경쟁사를 따돌렸습니다.
 
 그러니까 애플이 새로운 카테고리를 내놓고, 이를 경쟁사가 쫓는 동안 애플은 다시 새로운 카테고리를 내놓았고, 다시 이를 쫓는 동안 또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아이팟 이전으로 가면 사실 아이맥도 아이맥처럼 일체형 수요를 끌어당길 만한 매력적인 제품이 별로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해당 수요만큼은 챙겨왔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웨어러블이라는 큰 주제가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애플은 웨어러블 기기를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굳이 꼽아보자면 아이팟 나노를 시계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긴 했지만, 현시점의 웨어러블 기기라는 개념을 지닌 제품을 내놓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준비하고 있다는 뜬소문은 있으나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니 접어두고, 이는 애플이 포스트 PC를 내세워 아이폰으로 이전과 전혀 다른 스마트폰 동향을 제시하거나 아이패드로 태블릿 시장 판도를 바꾸었던 것처럼 영향력을 주기에는 애플이 빠진 상황에서도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본래라면 아이패드가 공백기의 시장에서 성장하면서 동향을 이끌고, 그 틈에서 새로운 카테고리를 준비하고 꺼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애플이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그 탓으로 현재 애플의 파도가 잠잠하다는 느낌을 시장에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아이패드가 출시 후 빠르게 시장을 차지했지만, 그만큼 경쟁사들도 스마트폰 시장보다 빠르게 태블릿 시장에 대응하면서 따라잡았습니다. 그리고 빠른 속도에 태블릿 시장이 서서히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못했습니다. 이미 아이패드 외 우수한 태블릿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결정적으로 동향을 제시하는 쪽에서 쫓아가는 쪽이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당연하지만 기존 카테고리를 재해석하여 동향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단지 필자가 말하는 것은 멀티미디어 기기가 스마트폰으로 통합되었고, 스마트폰 이후 웨어러블과 사물인터넷이 새로운 사업 모델로 제시되면서 여러 업체가 뛰어드는 상황인데, 그 밖에 내놓을만한 새로운 카테고리를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짧은 공백기 탓으로 동향에 맞춰가는 쪽이 될 수밖에 없는 지점입니다.
 
 문제는 애플의 시장 진입 방식입니다. 아이패드가 수년간 개발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 빠르게 변하게 된 시장을 뒤집을 만한 카테고리를 애플 방식으로 내놓긴 쉽지 않습니다. 판매하는 제품 수도 적고, 무엇보다 내놓더라도 더 빠르게 따라 잡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점이 애플을 잔잔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애플은 짧아진 공백기를 채워넣고도 남을 만한 카테고리를 선보이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것이 동향을 따라가는 것이든, 그렇지 않든 뒤집어 낼 수 있어야 하죠.
 
 정확히는 애플의 파도가 느려진 것이 아니라 주변의 파도가 빨라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플에 좀 더 빨라질 것을 요구하겠지만, 애플의 DNA가 단순히 앞서는 것에 있지 않다는 건 오랜 시간 증명되었습니다. 애플 스타일의 독특한 사용자 경험을 제시할 시간이라고 해두죠. 애플은 그걸 증명해야 합니다.
 
 단지 우리가 애플이 느려졌다고 느낄 뿐이라면 애플은 그에 걸맞은 제품으로 응답하길 바랍니다. 누구든 그걸 기대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