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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T일반

스타트업 배틀을 피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 배틀(Startup Battle)은 말 그대로 스타트업을 겨루는 자리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모여 경쟁하는 겁니다. 해커톤이나 개발자 대회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시장 경쟁력까지 평가받을 수 있는 철저히 스타트업을 위한 행사입니다.
 



스타트업 배틀을 피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 배틀은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전 세계,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 여파는 한국에서도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 beSUCCESS가 개최하는 스타트업 콘퍼런스인 beLAUNCH는 2012년 열린 1회부터 스타트업 배틀을 열고 있으며, 지난해에 이어 5월 개최될 beLAUNCH 2014에서도 스타트업 배틀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스타트업을 진행할 준비를 하거나 아이디어를 가진 분들이 필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연락을 주시는 일이 많습니다. 아이디어의 경쟁력이나 세부 기획안에 대한 의견, 투자 방향에 대해서 묻는 분들도 계시는데, 일종의 상담입니다. 전문적인 컨설팅이라고는 할 수 없음에도 요청을 주시는 것에 있어서 감사하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만큼은 얘기해드리고자 합니다. 무료 상담소 같지만, 대학생이나 막 졸업을 앞두고 스타트업을 계획 중이신 분, 혹은 오랫동안 관련 업체에 종사하셨던 분 등 다양한 계층에서 연락을 받게 되는데, 여기서 제가 추천을 드리는 것 중 하나가 스타트업 배틀입니다.
 
 beLAUNCH와 같은 콘퍼런스 형태 외 스타트업 배틀이라는 간판을 달지는 않았지만, 스타트업이 경쟁하여 우승자에게 지원 혜택이 돌아가고, 떨어진 스타트업은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정부의 창조경제 슬로건에 맞춰 우후죽순 생겼습니다.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방안의 일환인 것인데, 문제는 이런 프로그램의 참여를 피하는 분들이 많다는 겁니다.
 
 스타트업이 스타트업 배틀을 피한다? 의아하지만, 그 나름의 이유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이디어의 노출 우려입니다. 국내에서 스타트업 배틀을 피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인데,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 아이디어를 공개하면서 지원받겠다는 것은 위험요소가 많다는 판단입니다. 우수한 아이디어를 이미 시장에 진출한 업체들이 가져갈 수 있으므로 준비 과정은 은밀해야 하고, 어차피 좋은 아이디어라면 스타트업 배틀에 참가하지 않아도 투자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 이런 부분이 조심스럽다고 토로하는 분들이 상당수입니다.
 
 두 번째는 스타트업 배틀을 대학생 공모전과 같은 위치로 인지하는 일이 많습니다. 우승이라는 이력이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인데, 실제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이벤트 참가를 통해 겨루기보다는 실제 시장에서 겨루는 쪽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상금이 없으면 도저히 사업할 수 없지 않는 한, 이력이 가지는 의미가 적고, 떨어지게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죠.
 
 세 번째는 혹평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경쟁인 만큼 훨씬 좋은 아이디어나 혹은 비슷한 분야의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덕분에 원래 생각했던 것만큼 아이디어가 저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꺼리게 됩니다. 차라리 경쟁을 피하면 좋게 평가받을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과연 이 이유는 타당한 것일까요?
 
 


 세 가지 모두 하나의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감'입니다.
 
 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의 아이디어가 정말 훌륭한 것이라면 어째서 스스로 아이디어의 경쟁력에 대해 의심을 하는 걸까요? 아이디어가 노출되면 아이디어 승부가 아닌 도용에 따른 자본력 승부가 될 것이라는 망상을 처음부터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무너져간 스타트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를 수반하려 하지 않고, 스타트업에 뛰어들겠다는 건 아주 무른 생각입니다.
 
 시장에서 경쟁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타트업 배틀도 똑같은 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오히려 자본력을 배제하고, 아이디어만으로 스타트업이 자신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특화된 공간입니다. 이런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죠.
 
 그리고 아이디어가 혹평을 받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완전히 시장에서 매장당하기 전에 평가라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스타트업 배틀은 일반적인 아이디어 공모전이나 해커톤 등과 다르게 시장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심사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아무리 참신한 아이디어라도 시장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비즈니스 모델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겁니다. 아이디어의 독창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평가하고, 이를 지원하려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인 탓에 혹평을 겁내는 것은 사업을 하는데 도움될 것이 없습니다.
 
 반대로 스타트업 배틀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이 문제점 있는 이유를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스타트업 배틀에서 나타나는 홍보 효과는 노출이 전부가 아닙니다. 국내는 물론, 외국 투자자들까지 스타트업 배틀에 주목합니다. 이는 좋은 비즈니스 모델의 투자를 선점하기 위해서고, 스타트업은 투자받기 위해 뛰어다니는 수고를 한 번에 덜어낼 수 있는 자리입니다.

 또한, 비즈니스 모델을 시장에 진입하기 전이나 초입에 검증받을 수 있습니다. 검증이라는 것이 기분 나쁜 일일 수도 있고,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혹평에 좌절할 수도 있겠죠. 분명한 건 스타트업 배틀에서 얻을 수 있는 피드백이 실제 시장에 진출했을 때 우려될 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스타트업이 지적받을 기회는 흔치 않고, 일부러 스타트업 배틀이라는 것으로 기회를 만들어 놓고 있는 마당에 져버리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분야의 경쟁자들을 만나 경쟁력을 스스로 재어볼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재보려는 것은 자살 행위와도 같고, 그걸 분석하고 고민할 시간을 넉넉하게 쥐여주지도 않습니다. 마련된 자리를 멀리 돌아갈 이유가 없죠.
 
 


 국내에서 스타트업 배틀이 아직 쉬쉬 되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스타트업 배틀 하나로 엄습해오는 탓도 큽니다. 우승하지도 못할 행사에 참가하느니, 일할 시간이나 늘리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 사회적 관점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일반적인 세미나나 콘퍼런스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얻는 일이 매우 희박하다 보니 스타트업이 날뛸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놓아도 그곳에 뛰어들려는 스타트업은 매우 적습니다.
 
 이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며, 그 풀이 과정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스타트업 배틀입니다. 이런 자리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입니다. 성공적인 사례가 늘어나는 만큼 말이죠.
 
 나름의 이유를 두고, 경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들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만큼 스타트업에서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필자가 스타트업 배틀을 추천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