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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T일반

인터넷 운동가 에런 스워츠,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

 죽음은 되돌아 올 수 없는 강입니다. 인생의 끝이죠. 우리는 여러 사람의 끝을 지켜보고 눈물 흘리며 슬퍼합니다. 그 슬픔은 가까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단한번 마주보지 않았더라도 대상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비추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세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면 그 슬픔은 배가 되며 전파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누게 됩니다. 필자는 오늘 어느 인물에 대한 슬픔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터넷 운동가 에런 스워츠,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


 우리는 어제 먼 뉴욕땅에서 전해 온 비보를 맞이했습니다. 바로 인터넷 활동가로 정보 공유 운동에 주력하고 있는 26살의 청년, '에런 스워츠(Aaron H. Swartz)의 사망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대중들에게 그렇게 많이 알려진 유명인도 연예인도 아니었지만 항상 인터넷과 웹의 발전에 있어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고 꾸준히 그의 영역에서 묵묵히 웹 사용자들을 위해 힘써온 마치 홍길동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죽음의 방법으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지만,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에런 스워츠



 그의 별명은 '천재 해커'입니다. 26살인 그는 12년 전 RSS 1.0 스펙의 공동저자로 참여했으며, 레딧(Reddit)의 공동 창시자이기도 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Creative Commons License)'라 불리는 비영리기구가 웹에 배포하는 저작물의 저작권 체계를 잡은 디지털 라이센스는 그가 스탠포드를 그만두고 하버드로 가 로런스 레식 교수 등 5명과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 낸 대표적인 창작자를 보호하며 인터넷 개방을 주장한 운동 중 하나입니다.

 그는 인터넷 운동가로써 인터넷 운동 그룹인 '디맨드 프로그레스 (Demand Progress)'의 창립자이기도 한데, 작년에 크게 논란이 되었던 SOPA와 PIPA를 결사반대하며 수년간 '인터넷 자유'를 외쳐 온 인터넷 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과감했고 정의로웠으며 굽히지 않은 강한 면으로 인터넷 개방이라는 다소 포괄적이면서 생소한, 대중들이 잘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을 꼬집어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었습니다.


 2008년, 연방재판소의 페이서 (PACER)라는 판결문, 항소, 파산, 사례정보들을 제공하는 문서 보관소에서 한쪽에 $0.10을 내고 받을 수 있는 문서들을 무료 평가판의 일환으로 다운로드 받아 공개한 혐의로 FBI의 수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는 합법적이었고 비영리 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체포가 되진 않았지만, 두달 후 사이트가 폐쇄되기 전까지 문서 데이터의 20%가 공개될 수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방법이긴 했지만, 그의 활동으로 인해 인터넷 정보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변화가 일었으며, 위키피디아의 편집자로도 활약했던 그였기에 정보의 개방화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사건인 '제이스토어 (JSTOR)'사건이 그를 옳아맸습니다. 제이스토어는 온라인 학술저널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에런은 페이서 때와 비슷하게 이 곳에서 약 480만건의 학술 논문을 공개하고자 카피본을 자신의 노트북에 저장해뒀습니다. 이 논문들은 저작권이 만료된 것들이며, 제이스토어는 비영리단체로 운영비 목적으로만 구독료를 받아왔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그에게 컴퓨터 사기, 통신 사기, 악의적 강탈 등과 같은 혐의를 13개나 덧붙였고, 35년형과 $100만의 벌금을 부여 할 수 있는 재판으로 몰아세웠습니다. 문서를 복사 당한 제이스토어는 그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지만, 검찰은 강경했고 에런은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판단하고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왔습니다. 평소 우울증을 안고 있던 그였기에 압박감은 더욱 심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재판을 한달 남긴 시점에서 목을 맨 채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습니다.




에런의 죽음과 안타까운 이유




 제이스토어 사건은 대상자였던 제이스토어가 민사 소송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저작권자로써의 성명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그를 몰아세워 지적 재산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재판을 이끌어 낸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사건입니다. 무엇보다 제이스토어의 성격이 '비영리 추구'였던데다 페이서 때와 같이 일부를 무료 평가판처럼 공개하려 했으나, 문서들을 소지하고 있고 이를 공개하려 한다는 이유로 재판을 단행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가 비영리 목적으로 그것을 사용하려 했건 하지 않았건 공개하기 위해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때문에 35년형을 선고받도록 13개의 죄목을 씌운 것도 검찰의 행동이 납득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 무리한 재판에 대해 유족들과 지인들은 '잘못 된 사법 시스템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세웠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의 의도나 제이스토어의 본질과는 달리 '지적 재산권 보호'라는 명제를 크게 띄워 에런을 사기꾼이나 테러리스트로 몰아불였다는 것입니다. 정책상 정보의 오픈화라던지 인터넷 개방과 관련 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 따라가지 못했고, 그때문에 늘어난 죄목은 그를 압박했습니다. 문제는 그의 죽음이 사법 시스템 뿐만 아니라 인터넷 자유를 막으려는 기업, 단체 세력들과 그에 대한 수많은 로비들로 인해 더러워진 행정부가 이 사건에 대해서 전혀 항소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사건은 무려 18개월 간 진행되었지만 그를 위한 보호 장치는 아무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 SOPA를 추친하고 있던 사법부에 대해 칼을 드러냈던 에런이기에 오히려 말살하기 위해 이런 무리한 재판에 제동을 걸지 않고 내버려 둔 것이라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왜 검찰을 무리하게 재판을 진행했는지, 이런 정책 부분에 있어 행정부는 왜 가만히 있었는지에 대해서 정확한 이유를 찾기 힘듭니다. 하지만 그가 과연 죽어야했었는지에 대해서 필자는 매우 안타까운 것입니다. 조금은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냐는 겁니다. 물론 그가 시작한 극단적인 방법이 일을 초래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제이스토어와 타협을 했고 남아 있는건 사법부와의 타협이었으나 거부 당했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한다는 사법이 과연 그를 보호한 것인이 내몰아던 것인지는 우리 두눈에 분명히 비춰지고 있습니다.




명복




 그는 타협을 따라오지 못하는 비합리적인 정책과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 많은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알리려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SOPA와 PIPA에 반대하며 인터넷 자유를 갈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높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파였던 그는 어떤 것이 그가 추구했던 목표인지를 직접 보여주고 느끼도록 해주었습니다.


 에런이 이런 운동을 하게 된 것은 기존의 정보를 쥐고 있던 자들이 이 정보를 폐쇄적으로 감추고 이용해 더 많은 혜택을 누리려는 부조리에 반하여 정보에 소외되고 혜택과 멀어져가는 이들에게 나눠주고자 했었던 것입니다. 부조리한 시스템은 이런 혜택을 더욱 폐쇄적으로 만들고 평등하지 못하도록 깊숙히 들어가려고만 했고, 에런은 그것을 비판하며 나아갔습니다. 과연 이런 인물을 잃은 것이 우리에게 있어 슬픈 일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그가 살아있었다면 더 많은 자유와 개방을 위해 애썼을 것이며, 그것은 곧 우리에게 많은 혜택과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의 본질을 전달하는 타협이 되었을 것입니다. 필자는 그의 죽음이 그를 막아서며 더 많은 혜택과 지위를 얻으려는 무리들, 즉 인간의 본성이 그를 몰아간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에런 스워츠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주장했던 인터넷 자유, 개방의 정신과 본질은 기억되어야 할 것이며, 이 죽음이 단순히 그가 목을 맨 것이 아닌 제도적 문제점이 죽으라고 떠밀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회의 부조리에 맞섰던 그의 열정과 헌신,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라는 것으로 행복을 주고자 했던 그의 의지는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의 정신은 지금도 내일도 미래도 계승되어 갈 것 임을, 블로그라는 미디어를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지금의 필자 또한 맹세해봅니다.


 많은 이들을 위해 노력한 에런 스워츠에게 명복과 경의를 표합니다.

 후드래빗의 맥갤러리 독자이신 유성락님이 페이지에 올려주신 내용입니다.

 현재 트위터의 해시태그 #pdftribute를 통해 전세계 교수, 연구원 등의 지식인들이 그를 추모하고, 그의 생각에 지지하고자 논문들을 PDF로 공개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 또한 태그를 타고 들어가봤는데 복받쳐 옵니다... 그가 SOPA 반대 운동으로 한 기조연설을 보며 감동한 것이 불과 1년 전인데, 그의 죽음이 아무런 의미없는 헛된 것이 되질 않길 바라며 현재 논문 공개 운동이 악의적으로 변질되지도 베타적 지식인들이 부정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청년의 죽음으로 일어난 운동이지만, 이 정신이 확산되어 많은 사람들, 정보에 소외받고 혜택을 얻지 못하는 그 누구나 정보를 얻고 세상과 타협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지는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그에게 명복과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