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PPLE/APPLE Geek Bible

NYT의 '애플 때리기', 퓰리처를 기억하라

 미국을 대표하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간지라면 단연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입니다. 미국인들의 기본적인 기준을 잡아주는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얼마 전 애플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기사로 언론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퓰리처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퓰리처상을 많이 받아왔었지만, 정부의 비리나 전쟁 등이 아니라 애플이라는 미국을 대표하는 거대 IT기업을 대상으로 저널리즘을 지켰다는 것에서 IT업계에서도 상당히 주목할만했습니다.




NYT의 '애플 때리기', 퓰리처를 기억하라


 시작하기 전에 짚고 가자면, NYT가 퓰리처상을 받은 것이 부당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것은 완전히 빗겨나간 것이고, 애플의 문제점들은 강도 높게 비판하여 공론화하였다는 점은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점 또한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애플은 여러 면에서 개선에 나섰고, 또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내면서 애플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 비쳐야 하는지 비판하는 것은 옳은 저널리즘입니다. 최근에는 애플의 조세 회피가 공론화되었는데, 이런 보도들로 정부 차원의 기업에 대한 제재 방안을 마련하는 식의 정책적 시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입니다. 다만, 퓰리처를 상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애플 때리기


 NYT의 애플 때리기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수준 높은 이야기들과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 그리고 그를 대처하는 애플의 모습까지 구도를 보더라도 상당히 흥미로운데, 문제는 최근 NTY가 이에 재미를 들렸다는 겁니다.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경제지인 포춘의 칼럼니스트인 Philip Elmer-DeWitt은 'The New York Times blames Apple for smartphone thefts'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합니다. NYT는 전날 'Cellphone Thefts Grow, but the Industry Looks the Other Way'라는 제목으로 휴대폰 도난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제조업체들이 해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내용은 보도했습니다. 문제는 애플을 특별히 지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변호사인 George Gascón은 애플 등의 휴대폰 업체들이 도난을 방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 관계를 처리하는 애플의 임원인 Michael Foulkes와 만나 얘기한 결과 특별한 언급을 거부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밖에 뉴욕에서는 지난해 아이폰 및 아이패드 도난이 전체 범죄의 14%를 차지했다거나 Find My iPhone을 언급하며, '무료 소프트웨어를 지원하지만, 전화가 꺼져있거나 연결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고 얘기했습니다. 구글은 일부 안드로이드 앱이 이런 기능을 제공하지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포함되어 있진 않다고 지적하긴 했지만, 마지막에 도난당한 아이폰이 판매되는 가격을 언급하면서 애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포춘의 Philip은 이를 비판하는 칼럼을 작성한 것인데, '애플은 Find My iPhone을 무료로 제공하지만, 구글이나 삼성은 그런 것조차 하지 않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데 굳이 애플을 지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더군다나 실제 Find My iPhone는 꺼진 상태에서도 사용자가 웹이나 앱으로 분실 기기의 원격 삭제를 사용하면 다시 켜지거나 인터넷에 연결되었을 때 삭제를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에 깔끔하게 데이터를 밀어버린다면 끝이겠지만, 어쨌든 제공은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보면 Philip의 주장은 '애플만 뭐라고 하지 말고, 같이 뭐라고 해라'라는 메세지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플에 문제가 있는데 애플만 문제 삼는 게 불만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단지 NYT가 미국인들의 기준이 되는 신문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NYT가 이런 기사를 내보내자 구독자들의 많은 반응을 볼 수 있었는데, 몇몇 재미있는 반응들이 나타납니다. 자신이 아이폰을 잃은 사례를 이야기하며 애플이 책임질 필요가 있다거나 Find My iPhone이 분실한 휴대폰을 정확하게 찾는데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요구하는 반응도 보입니다. 미국 내 아이폰의 점유율이 상당히 높다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Philip이 이야기한 것은 NYT가 독자들의 이런 반응을 끄집어내려 애플을 지목하고 있다는 겁니다.

 포춘이 반박 기사를 내자, Find My iPhone으로 아이폰을 찾은 경험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 기사를 타고 국내 언론들이 내놓은 타이틀은 '뉴욕타임스 "아이폰 절도 문제 애플에 책임 있다"'입니다. 그런 식으로 작성을 하긴 했으니 딱히 틀린 얘기도 아니지만, 저 타이틀이 NYT의 몇몇 반응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걸리는 부분인 거죠.

 특별히 애플을 지목할 생각이었다면 풀어야 할 것이 더 많았습니다. 애플은 2010년에 인증받지 않은 사용자를 차단하는 기술을 특허로 출원했고, 2011년에는 분실 시 Find My iPhone의 감시모드와 자료보호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작년 말에는 아예 도난 경보장치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나노 유심을 개발해 이를 처음부터 단말기에 내장하여 출시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도난 시 유심을 빼지 못하도록 하고, 분실자가 신고하면 식별번호를 통신사에 전달한 뒤 기존 단말기의 정보를 삭제하는 식의 도난 방지책도 가능했었지만, 실용화되진 못했습니다. 즉, 애플이 도난 부분에서 상당히 많은 기술적 책임을 지고자 한 부분은 전부 빼버린 채 George Gascón의 인터뷰를 통해 '애플이 도난 방지책이 필요한데 언급을 거부했다'고만 표현해둔 것입니다.

 당연히 '애플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도난되더라도 새제품을 또 팔아야 하므로 전혀 도난 방지책을 고려하지 않을 것'과 같은 선동적인 반응이 나타나면서 아무런 장치도 해두지 않은 다른 업체들은 빗겨나가면서 애플에 시선이 집중됩니다. 여기에 '당신이 영화 표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헐리우드에 책임을 지라고 하진 않지 않느냐'와 같은 내용도 올라오면서 논쟁만 계속됩니다.




퓰리처


 퓰리처상은 언론인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는 상입니다. NYT는 애플 때리기를 통해 이 상을 받았고, 이는 정당했습니다. 다만, NYT는 퓰리처가 했던 노란색에 신이 났나 봅니다.

 퓰리처는 언론 재벌로 자신의 재산으로 퓰리처상을 만들었습니다. 최초의 전문 언론인 교육 기관도 세웠으며, '공공심이 있는 언론만이 개별 정권의 속임수로부터 공공선을 지켜낼 수 있다'며 언론인으로서의 신조를 강조한 언론계의 대부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큰 오점이 있습니다. 퓰리처는 언론계의 떠오르는 별인 허스트와 경쟁했으며, 1895년 최초의 컬러 만화인 '옐로우 키드'를 게재합니다. 이에 허스트는 똑같이 파격적이고 제목과 선정적인 내용을 과대하게 보도합니다. 둘은 경쟁이 붙어 하층민을 공략해 판매 부수 늘리기에 초점을 맞춘 저급한 보도를 일삼았고, 결과적으로 퓰리처는 패배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옐로우 키드를 빗대어 선정적이고 저급한 과대 보도를 옐로우 저널리즘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던 퓰리처가 오늘날 퓰리처상이라는 가장 명예로운 언론상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저급한 보도를 하던 퓰리처가 만든 상이니 NYT가 받았더라도 저급한 것이다'라는 엉뚱한 소리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퓰리처는 황색 오명을 썼지만, 당시 저명했던 언론인이었고 그것을 기리는 것만으로 퓰리처상의 의미는 크니까 말이죠.

 다만, 퓰리처상을 받은 NYT는 거기에 심취해 옐로우 저널리즘을 애플 때리기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NYT의 스마트폰 도난 기사가 남긴 것은 'Find My iPhone으로 아이폰을 2번이나 찾았다는 사람'과 '그 정도로 GPS가 정확하지 않다'며 거짓이라고 얘기하는 사람, '아이폰을 3년간 사용하다 도난당했고 애플이 이를 책임져주지 않았는데, 커다란 갤럭시노트2로 넘어와서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삼성이 이런 마케팅 방법을 이용한다는데 NYT가 그 주인공인가보다'라며 여론몰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기사에 붙어 소모전만 하고 있죠.

 결과적으로 NYT는 애플을 지나치게 겨냥하여 사람들을 끌어모으는데 초점을 맞춘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퓰리처가 보여준 옐로우 저널리즘입니다.




NYT


 '이번 한 번 그랬다는 것이 뭘 그리 난리 칠 일인가!'라고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NYT가 애플의 미국 내 고용 문제를 꼬집거나 중국의 노동 환경 문제를 비판한 것은 매우 옳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NYT가 계속 애플을 지적하는 기사를 내놓자 애플에 대한 비판적 기준이 NYT에 작용한다고 보고 구독자들은 NYT의 애플을 과도하게 겨냥한 기사를 보자 원래 예전부터 과도하게 애플을 선동적으로 보도했던 것처럼 생각하게 한 것입니다. 덕분에 경쟁사인 삼성의 마케팅이라거나 NYT가 예전 같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는 오랜 시간 미국의 기준과도 같던 일간지가 틀어졌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NYT에 퓰리처상을 주나? 오바마에게 노벨평화상을 주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도 있는데, 정치색이 짙어 보이지만 기사 하나가 NYT를 완전히 먹칠해버린 것입니다.

 만약 NYT가 애플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지속했던 것이 아닌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심층적으로 애플을 분석하고 비판했던 언론이, 그를 통해 상까지 받은 언론이 무작정 애플 때리기를 보이니 반감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NYT 입장에선 '아이폰이 미국의 대표적인 스마트폰이고 아이폰만 얘기한 것도 아닌데 무엇이 문제냐'고 할 수 있지만, 애플 때리기로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NYT와 애플이 엮여버렸기 때문에 사실 애플에 대한 보도는 이제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이것이 애플에 있어 방패막이가 된다는 그런 뜻은 아닙니다. NYT는 애플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여전히 강도 있게 보도하는 것이 좋으며, 단지 퓰리처가 지닌 황색 오명을 애플을 통해 퓰리처상을 받은 NYT가 애플에 대한 옐로우 저널리즘으로 오명을 써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독자들은 NYT의 애플 관련 기사에 더욱 공격적인 시선을 내보일 것입니다. 반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과연 반박할 여지가 없는 애플에 대한 완벽한 저널리즘을 보여주느냐에 곤두서있다는 것이죠. NYT는 그 부분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무작정 애플을 때리기 전에 퓰리처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