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하면 떠오르는 것?'이라는 질문에 대부분 운동화, 트레이닝복 등을 얘기하겠지만, 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퓨얼밴드(FuelBand)'나 '나이키+(Nike+)'를 외칠 겁니다. 웨어러블과 피트니스 기술 분야에서 나이키는 아주 앞선 업체 중 하나니까요. 지난해 출시한 기존의 퓨얼밴드를 강화한 '퓨얼밴드 SE(FuelBand SE)'도 많은 업체가 웨어러블과 피트니스에 뛰어드는 만큼 선두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지점에 있습니다. 과연 나이키가 기존 지위를 지켜낼 수 있을지는 웨어러블 시장 최대 관심사였죠.
나이키,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으로 불러다오
시장 조사 업체 NPD 그룹은 나이키의 퓨얼밴드가 전체 피트니스 웨어러블 시장에서 10%를 차지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10%가 많아 보이기도 하지만, 나이키가 선두 업체였다는 점과 미스핏, 핏빗, 조본 등의 신생 업체의 성장, 기존 기술 업체의 웨어러블 진출 상황에서 나이키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위태로울 수 있는 수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키도 나이키+ 플랫폼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 선택이 필요합니다.
Cnet은 익명의 소식통을 통해 '나이키가 퓨얼밴드 사업 철수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막 시장이 커지는 와중에 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사업을 철수한다는 건 의아하지만, 나이키가 그리는 미래를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왜 철수하려는지'부터 봅시다. 많은 분석가가 구글이나 삼성 등 거대 기술 기업이 웨어러블 시장에 뛰어들게 되면 나이키가 기존 퓨얼밴드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운동에 취미가 있는 소비자에서 일반 소비자로 확대되는 피트니스 웨어러블에 나이키 점유율은 위협받을 것이고, 이들 제품이 퓨얼밴드처럼 피트니스를 전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피트니스를 포함한 여러 기능을 담고 있어서 경쟁력도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 탓입니다. 만약 나이키가 이들과 경쟁하려면 피트니스뿐만 아니라 앱 생태계 구축이나 여러 기능 개발에 큰 투자를 해야 할 지 모르죠.
이는 나이키에 부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규모를 늘리는 만큼 드는 비용과 시간, 관리할 영역까지 늘어나게 되니 경쟁이 치열해지는 지금이 썩 좋은 시기는 아니죠. 선두 업체로서의 이점도 크지 않고, 비유하자면 과도했다간 블랙베리처럼 돼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이키는 나이키+ 플랫폼 전략을 수정하고, 더 깊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행보가 나이키의 미래를 얘기하고, 퓨얼밴드 철수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더 큰 가치를 느끼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나이키에 있어서 큰 플랫폼으로 성장 중인 건 나이키+이고, 나이키+가 퓨얼밴드를 중심이었던 건 아닙니다. 애초에 소프트웨어 중심의 플랫폼이었으며, 정확히는 나이키+ 퓨얼밴드(Nike+ FuelBand)의 보조 하드웨어가 퓨얼밴드였던 셈입니다. 이미 나이키+는 나이키+ 러닝(Nike+ Running)을 비롯하여 농구 플레이어를 위한 나이키+ 바스켓볼(Nike+ Basketball), 키넥트와 연동할 수 있는 나이키+ 키넥트 트레이닝(Nike+ Kinect Training), 아이폰 5s의 M7 프로세스를 활용한 나이키+ 무브(Nike+ Move) 등 다양한 앱을 출시했고, 차라리 나이키+ 센서가 중심적인 하드웨어였습니다.
달리 얘기하면 나이키+ 플랫폼을 포함할 수 있는 웨어러블 하드웨어라면 굳이 퓨얼밴드가 아니더라도 나이키+ 경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페블 스마트워치(Pebbl Smartwatch)에 피트니스를 위한 동작인식 센서를 포함하고, 스마트폰의 다양한 나이키+ 앱을 사용할 수 있다면 퓨얼밴드의 위치와 다를 바 없어지겠죠.
이를 증명하는 건 나이키가 내놓은 나이키+ 확장프로그램인 나이키+ 퓨얼랩(Nike+ Fuel Lab)입니다. 퓨얼랩은 10개의 기업을 선정해 5만 달러를 투자하여, 올해 6월까지 나이키+와 나이키 퓨얼과 통합하는 제품을 개발해야 합니다. 참여 업체는 나이키가 제공하는 API를 이용하게 되는데, 6월 결과물이 공개된 이후 가을이 되면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API를 개방할 계획입니다. 이로써 자체적인 웨어러블 기기를 만들지 않고도 나이키+를 확장하고, 더 풍부한 경험을 제공할 웨어러블 기기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애플과의 협력도 예상 범위가 되죠. 퓨얼밴드 SE가 공개되자 애플이 웨어러블 기기를 내놓으면 경쟁 체제가 되지 않을까 했지만, 애플이 나이키+를 품은 제품을 내놓거나 기존처럼 iOS 지원에 더 집중하는 형태만 취하더라도 둘 다 윈윈할 수 있습니다. 가령 나이키+를 포함한 축구화가 개발되고, 개인별, 팀별 운동량과 움직임을 분석하여 아이폰에서 정보를 볼 수 있다면 웨어러블을 통한 코칭 시스템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애플은 M7이 보여준 것처럼 하드웨어적 지원, 나이키는 나이키+ 무브처럼 나이키+ 플랫폼을 이용한 소프트웨어 지원으로 협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애플이 웨어러블 기기를 직접 출시한다면 경쟁력은 상당하겠죠. 밴드 형태만이 아닌 스포츠용품 전반으로 확장할 수 있는 IoT 시장으로도 연결할 수 있으니까요. 나이키+의 고안자 제이 블라닉(Jay Blahnik)이 애플로 영입된 점이나 애플 CEO인 팀 쿡이 나이키 이사회에서 활동할 점도 연결고리입니다.
필자는 지난해 4월 '기존 나이키+ 사용자 대부분이 iOS 기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만약 애플이 나이키+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제품을 내놓게 되었을 때, 사용자를 다수 빼앗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스마트런과 같이 완전히 독립된 제품을 만들던가, 안드로이드를 지원하는 제품을 만들던가, 아니면 iOS 기기와 연동되는 퓨얼밴드를 내놓으면서 따로 나이키+에 접근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아야 합니다.'라고 얘기한 바 있으며, '기존 나이키+의 문화는 공유하면서 제품의 다양성을 살려 소비자 선택폭을 넓히는 것도 가능한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당시 나이키가 새로운 스마트워치를 준비 중이라는 뜬 소문에 애플과의 협력 관계를 풀어본 것인데, 나이키가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애플과 협력한다면 기존 나이키+를 유지하면서 충분히 더 거대한 플랫폼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것입니다.
예상 범위지만, 어쨌든 소프트웨어 중심의 플랫폼 사업으로 이행할 나이키가 다른 업체들과 경쟁을 피하면서 자신들의 포지셔닝을 확고히 할 수 있다는 점을 애플과의 관계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긴밀한 관계의 애플이 'Yes'라면 다른 업체들과의 나이키+ 협력도 시너지를 가늠할 수 있겠죠.
나이키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입니다.
나이키가 꼭 자체적인 하드웨어를 내놓지 않으리라고 보진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래퍼런스 제품이 필요할 수도 있고, 탄탄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드웨어 사업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습니다. 대신 나이키가 웨어러블과 피트니스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선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나이키+ 사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에 있습니다.
현재 나이키+ 사용자는 2천800만 명에 달합니다. IDC는 2018년에 웨어러블 기기 출하량이 1억 대를 넘길 것으로 예상했는데, 나이키가 현재 사용자들을 유지하면서 이후 출하되는 웨어러블 기기들을 나이키+에 포함하거나 혹은 애플과의 제휴로 자사 스포츠용품을 나이키+ 사용자 대상으로 판매를 이어간다면 뜨거운 경쟁 속에서도 나이키가 지닌 플랫폼 가치를 뽐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가깝게는 6월, 퓨얼랩의 성과를 기대해볼 수 있는데, 어떤 아이디어가 나이키+ 플랫폼과 결합하여 새로운 피트니스 경험을 제시할 수 있을지 기대해봅니다.
'IT > IT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핀터레스트의 큐레이션 영향력, 놀랍다 (8) | 2014.04.23 |
---|---|
중국 IT 기업의 잇따른 IPO, 투자 판도가 바뀌었다 (6) | 2014.04.20 |
뉴욕증시 기술주 폭락, 원인과 해결책 (2) | 2014.04.14 |
테슬라 중국 진출, 성장의 핵심 될 것 (4) | 2014.04.12 |
왓츠앱보다 높은 라인의 가치와 스티커 딜레마 (6) | 2014.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