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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APPLE Geek Bible

애플, PC를 가구시장에 올려놓다

 얼마 전, 삼성의 자사의 75인치 스마트TV ES9000의 디자인 스토리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4분 32초동안 ES9000의 디자인에 대해서, TV의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상인데요,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 언급됩니다.

 '전자제품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제는 더이상 전자제품으로 바라보지 않고, 전원이 꺼지는 순간 가구가 된다'





애플, PC를 가구시장에 올려놓다


 필자에게 '애플이 뭘 했냐'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PC를 가구시장에 올려놓았지'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어떤 제품이건 시간이 지날 수록 산업이 안정화되면, 심미적인 부분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이고, 고대 그릇부터 지금의 TV까지 이어져왔습니다. 그런데 TV와 PC의 발생 연대는 30년가량이 차이가 납니다. 우리가 TV를 심미적인 관점을 중시하게 되고, 가구로써 보편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 일까요? 애플은 PC가 가구로써 보이게 하는 기간을 10년 가까이 단축시켜 높은 장본인입니다.




컴퓨터를 디자인하다




 애플이 컴퓨터의 디자인에 도전적이었던 것은 오래전 부터입니다. 나무나 상자에 끼워맞춘 키트 컴퓨터가 아니라 재질을 플라스틱으로 선택하고 깔끔하게 만든 제품이 '애플Ⅱ'였습니다. 잡스가 일했던 아타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게임기가 아닌 PC라는 생소한 제품에 이런 디자인을 과감히 적용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후 리사나 매킨토시가 등장하며 일체형 제품이 새로운 PC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잡스는 그당시 '현재의 컴퓨터들은 모두 쓰레기다. 훌륭한 디자이너는 자동차나 빌딩을 디자인하러 가지만 PC를 디자인하려하진 않는다'며 컴퓨터 디자인에 대한 불만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시간을 뛰어넘어 아이맥이 처음 등장했던 때를 생각해봅시다. 쫓겨났던 잡스는 돌아왔고, 아이맥을 선보였습니다. 이때 잡스는 대부분의 PC에 대한 평가를 'Ugly'로 단정했습니다. 못생겼다는겁니다. 처음 매킨토시가 등장할 당시나 아이맥이 나왔던 1998년에나 잡스에게 PC의 디자인은 여전히 '못생긴 것'이었습니다. PC에 심미안적 효과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구장창 주장했죠. 결국 그때 나왔던 아이맥은 PC가 아닌 당시 유행했던 소형 TV와 견주어 훨씬 이쁜 모니터로 평가받았습니다. TV도 디자인이 중요해지고 전자제품에 대한 각종 디자인 어워드나 시장이 발달하자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의 제품이 쏟아지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디자인에는 안중에도 없던 PC를 그 시장에 맞춰버린 겁니다.

 이후 아이맥은 좀 더 컬러풀하게 다양한 색상으로 등장했고, PC에서 색상을 선택하게 하는 제품이 되었습니다. 성능이나 운영체제가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성능과 운영체제를 선택하고 난 뒤 소비자에게 남기게 된 것이 디자인적 선택입니다. 중요한 점은 당시 CRT모니터의 뒷부분이 툭 튀어나와 못생겼었습니다. 사실 모니터를 벽면에 두게 되면 이 뒷부분을 신경쓰지 않는 것은 당연한듯 싶지만, 아이맥은 전체적인 디자인에 있어 튀어나온 뒷부분까지 철저하게 마감했습니다. CRT모니터의 못생긴 뒷부분을 어떻게 디자인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보여줬고, 이는 TV에도 적용되도록 기준을 바꿔버렸습니다.


 G4은 CRT를 제거하고 LCD도 전향하면서 반구형 본체와 지지대를 통해 모니터를 여러방향으로 틀어놓을 수 있게 만들어 상당히 충격적인 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롯 성공을 하진 못했지만 G4 큐브는 기존 PC의 본체 스타일을 완전히 따돌려놓았던 디자인으로 여지껏 비춰지고 있습니다.


 이후 G5나 인텔맥의 디자인이 쭉 알루미늄 재질로 바뀌고, 16:9 화면비로 넘어오면서 계속해서 얇아지고 얇아지고 얇아졌습니다.




PC가 인테리어가 되다




 애플은 꾸준히 PC를 디자인해왔고, 그것은 인테리어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체형 PC를 고집했던 것은 복잡한 선을 버려고 단순하고 더 얇게 만들어 벽과 밀접하는 공간을 줄여 밀착시켜 일체화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치 얇은 벽걸이 TV를 선호하게 된 것처럼 말이죠. 전원이 꺼지더라도 깔끔하게 인테리어와 융합할 수 있도록 PC를 변화시켜 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뒷면을 소홀히 하지도 않았습니다. 뒷면이 보이도록 배치하더라도 무리가 없게 디자인에 신경을 써왔습니다.


 사람들은 얘기했습니다. '컴퓨터에 색깔이 있으면 뭐해?', '컴퓨터가 더 얇아지면 뭐해?'. 성능적, 사양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PC를 바라봤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제 PC의 성능은 평준화 되었고, 가정에 있어 필수 제품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거주 할 그림같은 전원주택을 새로 지었습니다. 고풍적인 앤티크가구와 세련된 디자인의 소파, 그리고 그 앞에 75인치 TV와 푹신한 카펫으로 새 집을 인테리어 하겠죠. 그렇다면 필수가 된 PC는 모니터와 본체가 분리되어 선이 주렁주렁 달리고 검은색 박스 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배치하겠습니까, 아니면 아이맥으로 인테리어 하겠습니까.


 심미적인 효과가 강한 제품에 대한 선택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애플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계속 발전시켜왔습니다. 굳이 전원을 켜놓지 않아도 공간활용이나 깔끔한 외관이 시각적 위안을 줄 수 있도록 PC 디자인은 진화했습니다. 기술적 바탕이 따라줬어야 했지만, 출연이 30년이나 차이나는 TV와 가구로써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PC를 가구로




 애플이 PC를 가구로 만들어 놓기 위한 노력은 단순히 디자인에서만 비롯되진 않았습니다. 풀스크린으로 음악이나 영화, 사진을 볼 수 있는 프론트 로우 인터페이스나 마우스와 키보드로 조작이 가능함에도 굳이 원거리에서 조작할 리모트를 만들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지 않더라도 서서든 누워서든 멀티미디어를 즐길 수 있도록 제공한 것입니다.


 단순히 본체와 모니터가 연결되어 있고, 뛰어난 성능이어야 하며, 마우스와 키보드를 가지고 생산적 연산 작업만 하는 PC가 아니라, 좀 더 미려하고 일반 가정에서 인테리어적으로 우수하며 멀티미디어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제품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물론 심미안적 요소와 상관없이 가성비가 중요한 PC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PC방 같은 곳에다 아이맥 30대를 가져다 놓을 순 없는 것이니까요. 이를두고 '비싸기만 비싸고 성능은 떨어지고, 업그레이드도 어려운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멍청해!'라고 하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합니다만 이는 웨지우드나 로얄코펜하겐이 아닌 아니라 빗살무늬 토기로만 티타임을 즐겨야 한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주장입니다.

 그렇다고 비싼 값을 위해 전문적인 어플리케이션을 꼭 구동해야하느냐? 웨지우드 찻잔으로 스틱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며, 100만원짜리 컴퓨터든 200만원짜리 컴퓨터든 웹서핑만을 즐기더라도 전혀 문제될 것 없습니다. $9,999짜리 TV인 ES9000로 뉴스를 시청한다고해서 욕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듯이 말입니다.

 단지 심미적인 문제에 불과합니다.

 현재 PC시장은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의 PC가 출시되고 있고, 시각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제품 선택으로 충분한 값어치를 할 수 있는 단계에 놓여있습니다. 그런 시장이 태동하고 있고, 실제 일본에서는 전체 PC의 30%가 데스크탑이며, 이들 중 90%가 올인원인 만큼 디자인적 요소와 깔끔함이 주가 되는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국내 올인원 시장만 하더라도 전년동기에 비해 350%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PC가 그저 성능에만 얽매이지 않고 가구의 반열에 올랐다는 반증입니다.


 만약 애플이 PC에 대한 디자인적 성과를 내지 않았더라도 PC의 디자인은 발전하고 발전하여, 지금과 같은 시기에 결국 도달했을겁니다. TV처럼 70년 가까이 소비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애플은 이 시기를 끌어당겼습니다. 애플만이 올인원 제품이나 맥미니와 같은 미니 컴퓨터를 제작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PC의 디자인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와 끈질긴 도전이 심미안적인 부분만으로 PC를 구입하도록 줄을 서게 했으며, PC에게 있어서도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찍 깨닫게 해준 것만은 분명하다는거죠.

 애플은 이런 디자인을 통한 PC의 가구로써의 선택권을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으며, 얼마 전 공개 된 2012년형 아이맥의 경우 이렇게 얇은 컴퓨터가 필요한가라는 의구심이 들었음에도, 갖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되는 디자인 파워를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브라운이 56년 제작한 SK-4가 레코드 플레이어 시장에 큰 반향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죠. 이후 좀 더 세련된 레코드 플레이어 디자인에서 카세트 디자인이 나올 수 있도록 이어진 것처럼, 애플은 PC시장에 있어 디자인을 주도했던, 좀 더 이쁜 PC가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반향을 일으킨 회사로 기억될 것에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