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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amsung

타이젠은 왜 안 나올까?


 삼성 주도의 오픈 소스 운영체제인 '타이젠(Tizen)'에 대한 소문은 끊임없지만, 그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본 사람은 프로젝트 관련자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개발자 행사도 진행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타이젠이 어떤 모습으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죠. 계획은 있는듯하지만, 아직은 안드로이드 껍데기에 불과한 정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타이젠은 왜 안 나올까?
 
 그럼에도 타이젠 연합은 지난해 12월, '올해 2월에 열릴 MWC 2014(Mobile World Congress 2014)에서 타이젠 기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초대장을 언론에 발송했습니다. 만날 수 있긴 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타이젠은 왜 안 나올까?'라는 제목이 이상하게 들리는데, 조금 더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타이젠에 기대하는 건 '스마트폰'이지만, 타이젠은 스마트폰만을 위한 운영체제가 아니라는 건 다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세탁기나 냉장고 등 가전제품에도 탑재되는 형태로 다목적이죠. 스마트폰은 그 첫 단추와 같은 것입니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에 따라서 두 번째 단추도 문제가 없을 텐데, 그 스마트폰의 단추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얼마 전, 일본 통신사 NTT도코모는 올 1분기 선보이기로 했던 타이젠 스마트폰의 출시를 미뤘습니다. 거기다 NTT도코모는 타이젠을 담당하던 임원을 좌천시켰습니다. 2월에 MWC에서 공개하기로 했으니, 굳이 먼저 출시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시기가 아닌 전체로 보면 타이젠 연합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몇몇 참여사는 아예 연합을 탈퇴해버렸고, 주도하던 인텔도 타이젠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타이젠의 목적을 사물인터넷(IoT)과 연결해보면 인텔은 x86 중심의 사물인터넷 환경을 노리고 있습니다. CES 2014에서 발표한 에디슨(Edison)이 잘 보여주고 있죠. 그럼 타이젠은 어떨까요? 삼성 중심의 ARM이 주력입니다. 삼성이 자사 반도체를 내팽개칠 이유가 없으니까요. 둘이 갈라졌다기보다는 인텔이 에디슨을 발표한 모양은 타이젠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소프트웨어 플랫폼보다는 하드웨어 플랫폼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상 타이젠에 주력하는 건 삼성뿐입니다.
 
 재미있게도 삼성전자의 CEO였던 황찬규 KT 회장 내정자가 삼성과 협력하여 타이젠 스마트폰을 내놓을 것이라는 얘기가 들리는데, 휴대폰이라는 것이 통신사와 함께 판매는 해야 하므로 협력할 통신사를 두고 보자면 결국에는 삼성으로 이어지는 형태가 돼버립니다.
 
 첫 단추에 대한 실체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기존 참여자들이 남아있거나 적극적인 것도 아닌 타이젠을 두고, 사물인터넷까지 바라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현재 타이젠의 모습은 HP가 팜을 인수했던 당시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HP는 팜의 웹 OS를 가지고 스마트폰을 제작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발표했던 계획이 '스마트폰만 아니라 데스크톱이나 프린터에도 탑재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염원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실제 그런 개발 과정은 존재했고, 제품 개념도 상당히 많이 보여줬지만, 상용화되진 못했습니다. 그러더니 웹 OS를 LG에 넘기고, 남아있던 팜의 특허를 퀄컴에 팔아버렸습니다. 폭탄 돌리기 같은 느낌인데, 타이젠도 비슷하다는 겁니다.
 
 무언가 하겠다고 하지만,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고서 스마트폰을 내놓는다? 이미 안드로이드와 iOS가 활개치는 마당에 새로운 스마트폰만으로 타이젠의 가능성을 점쳐보라는 건 젖은 종이에 불붙여보라는 겁니다. 확실히 '타이젠이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타이젠 스마트폰조차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위에서 얘기한 타이젠의 정의에 대해서 삼성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타이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가장 설명하고 싶은 게 삼성이고, 그 탓이 타이젠을 내보이는 것에 신중하도록 작용합니다. 문제는 타이젠의 방향이 처음부터 사물인터넷이었던 것은 맞는데, 이쪽 분야가 갑자기 더 큰 관심을 얻게 되자 이 동향을 놓쳐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처음에는 스마트폰으로 시작된 동향을 따라서 타이젠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런 디자인이 스마트폰을 포함하여 여러 분야에 전반적으로 사용되었죠.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사물인터넷으로 확장하는 단계를 밟아도 될 것으로 내다보았습니다. 이는 타이젠의 초기 버전의 모습과 출현 시기를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물인터넷 사업이 확장되면서 스마트폰과 동떨어진 플랫폼으로도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사례가 속속 등장합니다. 오히려 자동차나 집을 기반으로 한 제어 시스템과 이것을 모바일로 이어붙이려는 형태가 강화되고 있으며, 스마트폰을 중심에 두고 뻗어 나가던 형태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물인터넷에서 스마트폰을 벗어난 새로운 플랫폼 가능성을 찾은 덕분입니다.
 
 그럼 타이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전처럼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뻗어 나가는 형태를 취해야 할까요? 아니면 타이젠을 좀 더 포괄적인 플랫폼으로 디자인하여 제시할 수 있어야 할까요? 타이젠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것입니다.
 
 사실 안드로이드를 이용하면 삼성은 크게 어렵지 않게 플랫폼을 확장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타이젠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자체적인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내다봤을 때 덮치는 불안감 탓일 겁니다. 필요하지만, 딜레마가 되면서 타이젠의 계획에 전반적인 수정이 필요하게 된 셈이죠. 타이젠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건 이런 의미입니다. 동향을 따라가려 하니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전 부분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LG는 웹 OS를 인수하여 CES 2014에서 웹 OS TV를 선보여 호평받습니다. 앞서 구글TV를 내놓았던 LG였지만, 삼성이 그렇게도 바라던 구글과 안드로이드를 뗴놓는 완성도 높은 제품을 LG가 먼저 내놓은 셈입니다. LG는 이제 선택지가 많습니다. 웹 OS TV를 주축으로 다른 가전에도 시험해볼 수 있게 되었죠. 사물인터넷으로의 첫 단추를 LG가 먼저 끼워버린 겁니다.
 
 반면, 타이젠은 선택지가 없습니다. 차라리 누군가 새로운 것을 터뜨리고, 타이젠으로 그것을 하겠다고 얘기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이를 두고 패스트 팔로워의 한계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삼성이 삼성의 것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타이젠이 MWC에 등장하더라도 큰 기대를 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스마트폰이 중심일 것이고, 그 밖의 무언가를 타이젠에서 찾기 어려울 테니까요. 몹시 어려운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