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애플은 3년 만에 4세대 애플 TV를 선보였습니다. 인터페이스 디자인이 바뀌었고, 새로운 리모컨과 시리를 탑재하여 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게 했죠. 그리고 기존에는 iOS로 구동했으나 iOS 기반의 tvOS를 새롭게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콘텐츠였죠.
 


애플-타임워너, 인수설에 대한 단상
 
 애플 TV의 콘텐츠가 부족한 건 아닙니다. 단지 경쟁 업체들과 비교해서 차별점이 없다는 건데, 익히 알고 있듯이 아마존이나 넷플릭스는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으며, 아마존은 스트리밍 서비스인 트위치를 확보했고, 구글도 유튜브로 실시간 방송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서비스는 콘텐츠를 기반에 둔 서비스 형태이고, 애플은 애플 TV라는 셋톱박스를 기반으로 하기에 접근성이 떨어지는데, 콘텐츠에 차별점이 없으니 애플 TV를 매력적으로 느낄 요소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애플 TV가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미국 가정에서 유선 방송을 해지하고, 넷플릭스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수요가 몰리면서 TV와 연결할 미디어 기기 시장이 주목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플이 어영부영하는 사이 경쟁사인 로쿠(Roku)나 구글, 아마존이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애플 TV도 잘 팔리는 셋톱박스 중 하나지만, 3세대 애플 TV가 나온 시기의 로쿠를 생각하면 4세대를 출시할 때까지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 알 수 있죠. 또한, 최근 샤오미가 구글과 협력하여 미국을 겨냥한 셋톱박스인 '미박스'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콘텐츠에 차별점이 부족하다면 꼭 애플 TV를 구매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선택지가 많은 겁니다.
 
 이런 중에 파이낸셜 타임즈(FT)는 '애플이 타임워너에 인수를 제안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애플의 인터넷 서비스 부문 부사장 에디 큐는 작년 말에 타임워너의 기업전략 부문 임원인 올라프 올라프슨과 만났고, 타임워너를 인수하는 방향에 대해서 의논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논의는 초기 단계였기에 애플 CEO인 팀 쿡은 검토조차 하지 않았고, 이미 2016년이 절반 가까이 지난 시점이기에 이 협상이 실제 성사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하지만 애플이 콘텐츠 확보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타임워너라는 강력한 카드를 쥐어 단번에 해결할 생각을 했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죠.
 
 


 타임워너는 생각보다 애플과 접점이 많은 곳입니다. 2013년부터 애플은 타임워너케이블과 생방송 콘텐츠 협상을 진행했으며, 작년에는 타임워너의 자회사인 HBO와 전략 제휴하기도 했습니다. 단지 요금이나 콘텐츠 제공 등 정책에 애플이 쉽게 관여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인수 제안은 그 점을 노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전략은 과거 소니가 콜럼비아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여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를 세운 것과 비슷합니다. 소니는 사업의 다각화와 자사 베타맥스 방식 비디오에 힘을 주고자 당시 2,700개의 영화 콘텐츠를 보유했던 콜럼비아를 인수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대세가 된 VHS 방식을 베타맥스로 이길 수는 없었고, 영화 사업을 강화하고자 피터 구버와 존 피터스를 영입하는 데 이들은 이미 워너브라더스와 계약한 상태였기에 이를 몰랐던 소니는 법정에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후인데, 그런데도 소니는 영화 사업에 계속 많은 투자를 쏟았고, 1990년 후반부터 2000년에 들어서는 제작한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을 기록하면서 과거 소니의 손실은 잊혔습니다. 그리고 소니가 블루레이를 주도할 때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라는 카드를 다시 쓸 수 있었죠.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전략은 참신한 게 아닙니다. 넷플릭스가 그렇고, 아마존이 그러하며, 두 업체는 콘텐츠 사업을 확장하면서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위치를 노리고 있습니다. 만약 애플이 타임워너를 인수하면 단번에 넷플릭스나 아마존의 목표를 달성하게 되는 셈인데, 소니의 사례를 생각하면 애플이 자체적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당장 애플 TV를 하나라도 더 팔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콘텐츠라는 카드를 통해서 자사 다른 사업을 확장할 기회를 얻을 여지도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2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먼저 미디어 시장 자체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는가입니다. 넷플릭스처럼 콘텐츠가 모든 경쟁력인 기업은 당연히 콘텐츠에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업을 진행하는 애플로서는 콘텐츠 제작을 다른 사업의 성장을 위한 구실로 여길 수도 가능성도 큽니다. 소니는 콜럼비아 인수 이후 법정 싸움과 실적에서 6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보면서도 영화 사업을 독립적으로 키우고자 투자했고, 인수 후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그러니 블루레이와 HD_DVD 전쟁에서도 좋은 카드로 쓸 수 있었던 거죠. 애플이 콘텐츠 제작에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타임워너를 인수하더라도 시너지를 고려할 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는 게임체인저입니다. 애플이 타임워너를 인수했을 때 가장 기대할 수 있는 건 콘텐츠 제작이 아니라 최근에는 케이블 사업이 힘을 잃으면서 스트리밍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므로 타임워너도 스트리밍 기반을 마련해야 하고, 애플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인수가 성사된다면 애플 TV를 통한 실시간 방송 서비스도 곧바로 적용될 수 있겠죠. 하지만 실시간 방송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건 애플만이 아닙니다. 현재 셋톱박스와 유선 방성의 위치는 아주 근접한 위치에 있는데 콘텐츠를 통해서 셋톱박스 중심의 TV 생태계 기반을 마련하는 건 게임체인저로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콘텐츠가 중요한 것과 함께 애플 TV의 역할도 중요한데, 애플은 충분히 게임체이저가 될만한 경쟁력을 애플 TV에서 보고 있는지 중요합니다. 애플 TV의 점유율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콘텐츠의 부재'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서비스 중심의 경쟁 업체가 많다는 건 그만큼 콘텐츠 역량을 큰 차이가 없다는 의미인데, 그런데도 압도적이지 않다는 건 애플 TV의 역량을 고민해봐야겠죠. 타임워너의 인수는 애플이 게임체인저에 다가갈 기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임워너 인수만이 해답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분명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는 건 애플에 필요한 과제이지만, 그건 순전히 하드웨어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방안의 하나입니다. 애초에 애플은 콘텐츠 사업을 하면서도 직접 별도의 제작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등 행보는 보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외부 콘텐츠를 끌어다 자체적인 콘텐츠로 희석했을 뿐이죠.
 
 과거에는 그렇게 하더라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이 당연한 순서가 되었기에 안정적인 콘텐츠 확보는 필요하지만, 앞서 얘기한 2가지 조건을 애플이 얼마나 갖출 수 있는가에 따라서 애플이 미디어 기업을 인수하더라도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단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에 애플은 콘텐츠 사업에 적극적인 면이나 애플 TV의 중요성만큼 공격적인 행보는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구글의 인공지능 사업 확대를 두고, 애플이 올해 차세대 애플 TV를 출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뜬소문이 있습니다. 여기서 애플이 콘텐츠 사업의 장기적인 목표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타임워너를 인수하든, 하지 않든 비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으리라 필자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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