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삼성의 특허 소송전은 끈질기게 계속 되었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 중 하나인 표준특허 관련 에플의 수입금지 명령건의 오바마 행정부의 결정에 상당한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이 결정에 따라 수입금지 명령이 집행될 수도 있고, 반대로 취소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플에 손들어 준 오바마 행정부가 남긴 것
그리고 어제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삼성과의 특허권 분쟁으로 ITC의 수입금지 명령이 내려진 애플의 아이폰4와 아이패드 3G의 판매금지 명령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ITC의 결정을 뒤집은 것인데, 이에 미국의 보호 무역 주의 논란과 ITC의 판결이 애초부터 문제 있었다는 의견이 대립합니다.
거부권
아마 너무 오래된 일이라 왜 여기까지 왔는지 잊어버린 독자를 위해 간략하게 정리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삼성은 자사의 3g 특허를 인피니온과 라이센싱 체결을 맺습니다. 하지만 인텔이 인피니온을 인수하면서 삼성과 인피니온의 체결 관계가 종료되지만, 그럼에도 인텔은 애플에 삼성의 3g 특허가 포함된 칩을 판매합니다. 즉, 애플은 라이센싱이 체결되지 않은 삼성 특허의 칩을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침해하게 됩니다. 여기서 의견이 많이 나뉘는데, '라이센싱이 끝났음에도 칩을 판매한 인텔 탓'과 '확인하지 않고 구매한 애플 탓'이 대립합니다. 그러나 이런 때는 최종 구매자에 어느 정도 책임이 따르고, ITC의 수입 금지 판결에 인텔이 철회를 부탁하는 서한을 남겼으니 누구 탓보다는 한통 속으로 생각하는 편이 낫습니다.
삼성은 이를 ITC에 제소했고, 애플은 삼성이 대당 2.4%의 로얄티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삼성이 제시한 특허가 표준 특허였고, FRAND 원칙에 따라 로얄티를 공정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ITC를 먼저 애플이 삼성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예비 판정을 내립니다. 하지만 예비 판정 이후 지난 6월, ITC는 애플이 삼성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최종판정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올해 초, 삼성과 애플이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으나 애플이 로얄티 문제에서 미온적이었고, 이 내용이 ITC에 전달되면서입니다. 애플은 삼성의 특허에 대해 아주 낮은 로얄티를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특허에는 높은 로얄티를 주장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수입금지 판결이 나게 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여기에 거부권을 사용하면서 수입금지 판결이 철회됩니다.
이에 대해 '판결도 뒤집어 버리는 미국의 심각한 자국 기업 보호'와 '애초 문제 있었던 표준특허 소송의 ITC의 잘못된 판결에 대한 거부권'으로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 과정만 본다면 미국이 자국 기업인 애플을 보호하기 위해 거부권을 발동했고, 이는 이후에도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할 수 있음을 뜻하므로 법의 틀을 무시한 사례로 미국에서의 소송에 타국 기업이 제동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 정부를 등에 업은 애플은 국가를 잘 꼬드긴 것으로 미국 정경유착의 표본으로 포장해버립니다. 그러자 국내에선 '삼성도 똑같이 국내에서 그러고 있지 않으냐'면서 둘 중 어느 기업이 더 더러운지 대결하는 구도로 나아갑니다. 이는 각종 커뮤니티는 물론 뉴스 덧글, 해외 포럼의 덧글에서도 나타나면서 으르렁대고 있을 뿐입니다.
정작 으르렁 댈 필요가 없는데 말입니다.
남긴 것
ITC의 판결 내용에 문제로 삼는 것은 유럽 소송에서 삼성이 소송을 취하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EU가 공식 성명을 통해 같은 사안으로 삼성에 반독점법 위반으로 기소합니다. 그러자 삼성은 '애플이 선의로 협상에 나서지 않았고, 애플이 우리를 먼저 고소했으므로 이를 방어하기 위해 표준 특허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유럽 국가 어디에도 애플에 대한 판매 금지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미 표준 특허와 관련한 소송은 모두 취하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유럽에서의 소송에서 EU는 삼성에 표준 특허와 관련해 반독점법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에 삼성은 소송을 취하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애플 제품의 수입 금지 판결이 났습니다. 똑같은 사안에서 다른 결론이 난 것인데, 이를 두고 '유럽과 미국의 판결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와 '그 문제점을 오바마 행정부가 거부했다'는 것과 '어떤 판결이 나든 그 지역의 법에 따라 판결이 난 것이고, 이에 행정부가 개입한 것은 옳지 못하다'는 주장 등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좀 더, 좀 더 간단하게 볼 수는 없는 것일까요?
삼성은 미국에서 정부에 대한 로비 자금을 대폭 늘렸습니다. 지난해 삼성이 로비 자금으로 사용한 금액은 85만 달러, 한화로 약 9억 2,700만 원이었는데, 이는 사상 최대치로 4분기에만 48만 달러를 투입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뭔지 삼성이 로비 자금을 대폭 올린 시점에서 ITC가 예비 판정을 뒤집고 삼성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럼 왜 오바마는 애플의 손을 들어줬나', 애플은 지난해 로비 자금으로 197만 달러를 사용했고, 4분기에만 54만 달러를 사용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애플이 금액에서 이긴 것 같지만, 2011년보다 23만 달러나 줄어든 수치입니다. 반대로 삼성은 늘어났죠. 재미있게도 구글은 960만 달러에서 1,820만 달러까지 로비 자금이 늘어났고, MS의 800만 달러, 페이스북의 400만 달러로 2011년보다 늘었습니다. 애플과 삼성의 로비 자금은 구글, MS, 페이스북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지만, 어찌 되었든 싸우고 있는 주체는 이들이고, 중요한 것은 얼마나 로비에 성의를 보이느냐입니다. 그리고 거부권 행사 직전에 가장 강력한 로비 기업인 MS, 인텔, 오라클 등이 뭉쳐서 애플 편에서 표준 특허를 들먹이며,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습니다. 이래저래 이해관계가 얽혀서 복잡해보이지만 큰 틀 자체는 굉장히 간단합니다.
이런 성의 표시 경쟁은 2011년을 기점으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소송전이 커지면서 2011년부터 로비 경쟁이 심해집니다. 다른 기업들은 가만히 있는데, IT기업들만 난리를 쳤던 것이고, 이런 문제가 실제 법체계와 대선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페이스북은 아예 IT기업 로비 단체를 만들기도 했는데, 여기까지 보면 '결국 돈노름 때문인거냐'고 묻겠지만, 이것이 가장 간단한 이해 관계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분명 미국과 유럽의 판결이 달라졌고, 그것은 그 지역법에 따라 달라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가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표준 특허의 문제점 탓일 수도 있고, ITC의 수입금지 판결이 정당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소비자들이 이를 보면서 판결을 다시 읊어내고 뭐가 옳고 그름인지 판단하려 하는데 문제는 이 사이사이에 들어간 그들만의 주고 받기, 그리고 연합이 조그마한 영향이라도 끼친 것이라면 돈으로 변질되어 버린 문제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과연 소비자들이 해낼 수 있는 문제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누가 악질적이라고 얘길한들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돈놀음이며, 어쨌든 그 속에서 그들의 제품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는 것이고, 거기서 남아도는 씁쓸함만이 애플에 손을 들어준 오바마 행정부가 남긴 것입니다.
누구의 편이 되어 대변을 할 이유는 크게 없습니다. 물론 누가 잘 못한 것인가 하는 인도적인 문제점은 각자 꼬집어 낼 수 있으며, 그런 내용은 필자도 여러번 써내었던 것입니다. 다만, 필자가 하지 않았던 것은 인도적인 문제를 벗어난 것, 즉, 이따위 돈놀음이 들어간 부분에 선을 긋는 것이었고, ITC의 최종 판결과 오바마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그에 걸맞은 것이었습니다.
결론
그럼에도 필자는 이번 문제를 완전히 돈 놀음으로 치부하여 결론 내릴 생각은 없습니다. '뭐가 이리 왔다갔다하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냐'고 비난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와 반대되는 사안이 아직 하나 남았기 때문입니다.
ITC는 애플과 삼성의 특허 침해 부분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가 8월 9일에 발표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건은 애플의 7개의 특허에 대한 삼성의 침해 여부와 관련된 것으로 삼성의 특정 제품의 미국 내 수입 금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난 12월에 한 번 판결된 사안으로 삼성 제품의 미국 수입금지 결정되었지만, ITC가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검토 결과가 8월 9일 발표되며, 결과가 결정되면 똑같이 오바마 행정부가 60일 이내에 승인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번에 오바마가 거부권을 행사한 것과 반대로 만약 ITC가 삼성 제품의 수입금지를 결정하고 이것에 오바마가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미국의 보호 무역이 어떻다'는 얘기에 다시 무슨 코멘트를 해야 할까요? 그때 가서 '구글 덕분이겠지'라고 얘기하면 그만일까요?
예상하건대 만약 삼성 제품에 대한 수입금지 결정이 내려진다면, 당연하게 구글은 삼성 편에 설 것이고, 그리고 이들이 얼마나 미국 정부에 성의 표시를 했느냐에 따라 오바마가 결정할 것입니다. 비록 이번 결정이 25년 만의 일이고, 25년 만에 두 번의 결정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반대로 ITC가 수입금지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삼성이 백악관보다 ITC에 더 많은 성의를 표시했다'와 '자국 기업보다 선의의 경쟁을 먼저 생각하는 미국'이란 의견이 또 으르렁거리겠죠.
필자가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필자가 얘기하는 씁쓸함이며, 과연 으르렁댈 필요가 있는지 다시 상기토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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