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전자화폐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파생형인 라이트코인은 전자화폐의 확장을 보여줬습니다. 기존 화폐 개념을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것인데, 그래서 이런저런 논란도 뒤따라 붙지만, 전자화폐의 사용 자체가 소멸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달리 말하면 전자화폐의 가능성이 비트코인이나 라이트코인에서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오로라코인, 화폐의 개념을 재구성하다
아이슬란드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경제위기 상황에 놓였습니다. 아이슬란드의 화폐인 크로나 가치는 크게 떨어졌고, 3대 은행도 국유화되었습니다. 현재는 빠르게 회복하여 안정을 찾아가는 추세지만, 국민들의 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은 여전히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죠. 한 아이슬란드 기업가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정부가 아닌 국민 주도적으로 경제를 돌려놓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전자화폐로 말입니다.
아이슬란드 기업가 발데르 오딘슨(Baldur Odinsson)은 라이트코인을 기반으로 만든 전자화폐인 '오로라코인(Auroracoin)'을 내놓았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수많은 비트코인의 파생형 중 하나인 것 같지만, 오로라코인이 특별한 이유는 아이슬란드의 전 국민에게 31.8 오로라코인을 배포하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즉, 채굴이나 거래 없이 33만 명에게 전자화폐가 전달되는 겁니다.
배포 시기는 3월 25일이며, 아이슬란드가 ID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채굴 가능한 오로라코인 중 절반이 무상으로 지급됩니다. 나머지 오로라코인은 채굴하거나 거래를 통해서 누구나 획득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발데르 오딘슨이라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가명이라는 것에서 의심할 수도 있는데, 아이슬란드 국민을 대상으로 무상 배포한다는 점이 오로라코인이 잘 되든, 그렇지 않든 아이슬란드 국민에게는 밑져야 본전인 전자화폐가 된 셈입니다. 오딘슨은 오로라코인은 비트코인 수준으로 성장하게 할 생각이라고 밝혔는데, 그가 오로라코인으로 이득을 본다면 아이슬란드 국민 전부가 이득을 본다는 것이죠.
오로라코인의 가치가 상승하면 아이슬란드 국민은 이를 외화로 재판매하거나 국민 전체가 전자화폐를 이용하여 정부 손으로 넘어간 은행의 영향을 벗어난 경제 체제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득을 보는 것 외 경제 불안감 해소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오로라코인이 품고 있습니다.
성공할 것으로 단정할 순 없지만, 오로라코인의 시도는 기존 전자화폐가 가진 목표와는 조금 다릅니다. 의도적으로 대상에 화폐를 배포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경제 문제를 해소하고자 합니다. 배포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하면 아이슬란드 국민만 이득을 보는 것 같지만, 33만 명의 오로라코인 사용자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고, 아이슬란드가 오로라코인으로 상거래를 하게 되면 나머지 오로라코인을 가진 사람까지 가치 상승의 이득을 취하게 됩니다.
이 점에서 알 수 있는 건 누군가가 분명히 이득을 보게 되지만, 그것으로 하여금 전자화폐의 가치 상승을 가능하게 한다는 겁니다. 마치 키프로스 사태의 비트코인을 의도적으로 재연한 것처럼 말이죠. 이는 전자화폐의 가능성과 기존 화폐 사이에서 발생하는 화폐 생성의 과도기적인 면을 이용한 화폐 개념을 재구성한 시기적절한 계획입니다.
만약 전자화폐가 아주 일반적으로 통용되거나 완전히 가치가 하락한 상태라면 오로라코인은 분명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많은 이가 이 계획에 주목하는 이유는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고, 굳이 중앙은행의 통제 없이도 한 국가의 통화 체제를 뒤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전자화폐 시가총액 분석 사이트인 코인마켓캡(CoinMKTCap)의 자료를 보면 오로라코인의 시가총액이 한때 라이트코인을 제치고 3위에 올랐으며, 많이 하락했으나 4위에 머물면서 5위인 피어코인(Peercoin)과 큰 차이를 벌리고 있습니다. 그 밑으로 수십 개의 전자화폐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오로라코인에 쏠린 이목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아이슬란드 국민에게 배포되면 현재 이상의 폭발적인 가치를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전자화폐 상황에서 단숨에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고, 국가가 경제를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했을 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언제든 전자화폐로 이행하여 경제 체제를 자립할 수 있음을 방증합니다. 어떻게 보면 무섭지만, 전자화폐가 범국가적으로 인정받아 통제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므로 오로라코인의 사례가 다른 국가에서 벌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오로라코인의 사례는 특별하며,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쟁점입니다.
다만, 오로라코인이 완전히 아이슬란드 국민 손에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은 비트코인을 통한 외화 거래가 위법이라고 판단했으며, 채굴을 막고 있지는 않지만, 국민들의 경제 이탈을 부정적으로 주시하고 있습니다. 오로라코인을 마찬가지로 위법이라 판단한다면, 오로라코인의 가치가 상승하더라도 외부 사용자들이 아이슬란드에서 발생한 이득을 취하긴 어렵고, 그만큼 가치 하락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로라코인이 국가 경제 체제를 뒤집을 수 있지만, 오로라코인의 의도만 막으면 아무것도 아닌 2진법의 나열일 뿐입니다. 단지 가능성이 있는 건 아이슬란드 국민이 오로라코인을 전면적으로 사용하여 정부가 오로라코인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고, 이제 그것에 대한 시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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