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애플은 아이패드 에어 2와 함께 아이패드 미니 3를 공개했습니다. 아이패드 에어 2의 설명에 발표 시간을 많이 쓴 애플이었지만, 아이패드 미니 3는 골드 색상의 추가와 터치 ID 탑재가 설명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공식 애플 웹 사이트에 올라온 아이패드 미니 3는 미니 소비자들을 실망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이패드 미니 3, 기업 시장이 전지
아이패드 미니 3는 전작과 다른 점이 거의 없습니다. 터치 ID를 제외하고는 프로세서, 카메라 등 아이패드 미니 2와 같으며, 외형도 선택지로 골드가 추가된 것, 그러니까 키노트에서 얘기한 게 끝인 제품입니다. 여타 신제품처럼 특별한 표어도 없이 '터치 ID 탑재.'로 설명하고 있으니 아이패드 미니 3가 제작한 애플도 어떤 신세로 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출시한 아이패드 에어와 아이패드 미니 2는 디스플레이와 크기 차이를 빼면 완전히 똑같은 제품이었습니다. 그래서 활용 방안에 따라서 맞는 크기의 제품을 선택하면 그만이었지만, 아이패드 미니 3는 이전에 아이패드 미니를 선택하지 않았던 소비자는 물론이고, 새로운 소비자도 구매할 매력을 느끼지 못할 제품입니다. 그러면서 가격은 내려가지 않았고, 터치 ID의 차이로 아이패드 미니 2가 낮은 가격 라인으로 물러섰습니다.
비교하면 16GB 모델 기준으로 100달러 차이이며, 아이패드 미니 3는 32GB 모델이 없지만, 지난해 같은 가격의 위치였던 64GB 모델과 아이패드 미니 2의 32GB 모델을 150달러 차이입니다. 굳이 따져보면 터치 ID에 100달러 차이를 두고, 32GB 용량 차이에 50달러의 차이를 둔 겁니다.
그런데 위처럼 비교하면 아이패드 미니 3의 가격이 전작과 사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생각해도 비싸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거의 굳어진 전통적인 애플의 가격 책정 방식인 전작 가격을 낮추고, 신제품 가격을 전작 가격으로 유지하는 방식, 혹은 두 제품의 가격을 100달러 수준 차이를 두는 방식이 적용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아이패드 미니 2 32GB 모델이 349달러로 책정되었지만, 아이패드 미니 3 64GB 모델은 499달러입니다. 두 제품의 16GB 모델과 아이패드 미니 2의 32GB 모델에 틈이 있다는 것과 터치 ID를 배제하고 보면, 아이패드 미니 2 16GB 모델이 299달러, 32GB 모델을 399달러로 생각해봤을 때, 64GB 모델이 499달러, 128GB 모델이 599달러로 두 제품을 연결해도 용량별 가격이 일정하게 나타납니다. 단지 터치 ID가 32GB 모델 가격의 변수로 작용했을 뿐, 아이패드 미니 2의 64GB 모델을 가정해보면 사양에 차이가 없는 것만큼 가격에서도 큰 차이를 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128GB 모델이 등장하면서 아이패드 에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의미가 다른 건 아이패드 에어와 아이패드 에어 2의 차이는 명확하고, 아이패드 미니는 세대 간 차이는 없으면서 가격조차 기존 정책에 빗대어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 달리 보면 아이패드 미니 3는 숫자를 하나 더 붙여 신제품 행세를 하고 있지만, 실상 가격을 떨어뜨린 아이패드 미니 2와 함께 가격이 내려간 포지셔닝을 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아이패드 미니를 지난해와 달리 상기한 포지셔닝으로 바꾼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아이패드 판매량 감소', 두 번째는 '아이폰 6 Plus의 출현'이죠.
애플의 회계연도 4분기 실적을 보면 아이패드 판매량이 지난해 1,408만 대에서 1,230만 대로 떨어졌습니다. 지난 3분기에도 판매량이 떨어졌다는 걸 돌이켜보면 여전히 승승장구 중인 아이폰과 달리 회복세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제조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가격을 낮춰서 보급을 늘리거나 판매량이 일정 수준 줄어들었을 때 단종하는 것입니다.
이를 전제로 했을 땐 애플은 아이패드 미니의 판매량을 크게 올릴 생각이 없습니다. 사양에 변동이 없고, 아이패드 미니 3와 아이패드 미니 2를 합쳐 라인 전체 가격을 100달러 낮춰 관리하는 형태만 취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남은 건 판매량 추이를 보고 단종하는 것입니다.
다만, 단종을 확신할 수 없는 건 'IBM과의 협력'이 기업 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탓인데, 지난달에 애플과 IBM은 새로운 파트너쉽을 발표했습니다. IBM의 엔터프라이즈 앱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iOS 기기에 제공하기로 했고, 애플 CEO 팀 쿡은 4분기 실적발표에서 '애플과 IBM의 첫 협력 제품이 다음 달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애플과 IBM의 협력으로 기업들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는데, 협력으로 기업 시장에 진입했을 때, 업무에 어떤 아이패드를 선호하는지 파악해야 하고, 아이패드 미니도 선택지 중 하나이자 낮은 가격으로 보급에 탄력을 줄 수 있는 제품입니다.
애플은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 떨어지고 있는 아이패드 판매량을 아이폰으로 회복하기 위해 5.5인치의 아이폰 6 Plus를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아이폰 6 Plus를 구매한 소비자가 아이패드 미니를 구매할 확률은 매우 낮으므로 카니발리제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아이패드 미니에 힘을 주지 않은 것으로 이해하는 게 가장 간단하지만, 전작과 큰 차이를 두지 않으면서 가격을 조정하여 라인을 관리한다는 건 일반 소비자 시장보다 기업 시장에 중점을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능만 보면 아이패드 미니 3에 끌릴 일반 소비자는 찾기 어렵겠지만, 가격에서 기대할 기업 시장이 있고, 이를 위해 애플은 IBM과 손을 잡았으니까요.
즉, 아이패드 미니가 기업 시장에서 판매량을 회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단종의 미래가 걸렸다는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아이패드 미니가 찬밥으로 전락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는 것이죠. 정확히는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 찬밥이라는 얘기지만요.
아이패드 미니 3의 성적에 따라서 내년 아이패드 미니의 운명은 달라질 것입니다. 판매량을 회복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가격 정책을 유지하면서 9.7인치 아이패드보다 사양을 낮춘 형태로 판매할 테고, 회복하지 못하면 단종 처리되거나 가격을 더 낮추는 방향을 시도할 겁니다.
아이패드 미니 3는 일반 소비자 시장을 떠나서 아이패드 미니의 생존을 실험해볼 제품으로 나온 것이며, 남은 건 내달 발표할 애플과 IBM의 협력 제품입니다. 팀 쿡은 이 제품이 '은행, 정부, 보험, 소매, 여행, 유통, 통신 시장에서 쓰일 것.'이라며, '아직 태블릿 시장이 포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기업 시장 확장에 아이패드가 아직 파고들 틈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면 아이패드 미니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볼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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