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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T일반

팀 쿡 커밍아웃, 의미있는 일


 팀 쿡이 게이라는 소문은 일찌감치 있었습니다. 단지 본인이 직접 밝힌 것은 아니었으므로 타인이 그를 게이라고 지칭할 순 없었습니다. 그건 그가 정말 게이일지언정 폭력이니까요. 폭력이라는 단어가 그를 약자로 만드는 것 같지만, 강자든 약자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다면 그건 폭력입니다. 그건 그가 애플 CEO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지난 6월, 애플 CEO 팀 쿡은 한 언론인으로부터 아웃팅 당했습니다. 남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은 비도덕적 행위이고,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팀 쿡의 성적 정체성을 더욱 쉬쉬하게 만드는 발단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탓으로 '게이라면 공개하라.'는 식의 비이성적인 몰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쿡은 10월의 마지막날, 자신이 게이임을 밝혔습니다. 그는 '저는 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게이가 자랑스러운 존재라거나 그렇지 못한 존재라는 걸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그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를 통해 올린 기고문을 보면, 자신이 소수자였기에 '소수자의 의미', '다른 소수자 집단이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 그것을 통해 얻은 '타인과의 더 큰 공감', '역경과 편견을 넘어설 수 있는 자신감과 강인함'을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소수자가 아니더라도 함께 감내하고, 고민할 수 있다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사실 대다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하기 보단 경계를 구분하고, 배척하는 데 많은 시간을 버리고 있죠. 쿡은 자신이 소수자이기에 더 깊게 다가갈 수 있었던 고민으로 가질 수 있었던 정체성, 그렇기에 자신이 게이임을 자랑스럽다고 밝힐 수 있었던 겁니다. 이는 게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인권에 대한 진취적인 발언입니다.
 
 '모든 사람이라니? 난 게이가 아니야.'라고 판단하는 건 굉장히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소수자를 만든 건 개인이 아니라 사회이고, 가령 5명이 모인 자리에서 1명을 따돌리는 것만으로도 소수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대개 사람은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소속하거나 사회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면 소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소수자가 될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얘기했던 고민을 통해 형성하지 못한 정체성과 자존감을 그룹이나 사회적 위치에서 찾으려 하고, 집단이 크면 클수록 그런 경향은 두드러집니다.
 
 이것은 비단 성 소수자만이 아니라 장애인, 미혼모 등 모든 소수자가 겪는 문제입니다. 이들에 대한 인식과 인권이 밑바닥인 건 상기한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집단과 사회적 위치에서 채운 다수'가 '집단과 사회적 위치에 포함하지 못한 소수자'를 그들의 잣대로만 판단하려는 비인도적인 생각이 원인입니다.
 
 사실 누군가가 어째서 게이이며, 장애인이며, 미혼모인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그들이 그걸 얘기할 의무도 없습니다. 그건 명확한 사생활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다수는 자신들의 잣대로 그들의 상황을 포장하며, 매도합니다.
 
 예를 들어 성폭행으로 임신을 하게 된 여성의 뉴스라면 비난의 대상은 범죄자가 되지만, 막상 낙태가 아닌 미혼모가 되는 것을 선택하여 아이를 기른다면 피해자조차 차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설사 그 아이가 어떤 경위로 태어났는지 모르더라도 미혼모라는 사실만으로 비난받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은 비난을 피하기 위해 성폭행 당한 사실을 타인에게 밝혀야 할까요?
 
 가장 쉬운 건 그냥 그 여성이 어떤 문제로 미혼모가 되었건 여성과 아이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인정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폭행 당한 사실을 밝혔더니 그 사실로 비난하거나 왜 낙태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하거나 막상 낙태를 했더니 낙태를 했다고 비난하거나 다수가 소수자를 자신들만의 잣대로 인권을 짓밟을 수 있는 형태가 너무나도 많고, 그것은 누구나 소수자로 만들 수 있는 단초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필자가 말한 '폭력'입니다.

 (성폭행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부분을 덧붙이면, 임신 사실을 알아 차리지 못하는 일도 많고, 막상 알아차린 시점에서는 수술이 어려운 상황도 있으며, 성폭행과 낙태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기에 제 3자가 선택을 강요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강요한다는 자체가 인권에 대한 폭력이고, 해당 예시도 절대 하나의 잣대로 평가해선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쿡의 용기는 모든 사람이 대상 될 수 있고, 현재 소수자인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는 세계적인 기업의 CEO이며, 아주 강한 그룹과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올랐습니다. 만약 그가 자신이 게이임을 밝히지 않았다면, 다수의 영역에만 존재했을 테지만, 그룹과 사회적 지위를 초월하여 현재 고통받고 있는 소수자를 끌어안았습니다.
 
 단순히 그가 애플 CEO고, 유명해서 의미있는 행동인 게 아닙니다. 소수자는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받고, 인권을 존중받으며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건 쿡도 마찬가지고, 여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이 소수자임을 밝힌 건 자신의 사샐활을 포기하면서 자신이 했던 감내와 고민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모든 사람에게 줬다는 겁니다.
 
 필자는 그것이 좀 더 나은 세상, 인도적인 사회가 될 보탬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누구든 오늘이 될 수도, 내일이 될 수도 혹은 내 친구나 내 자녀가 소수자가 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소수자를 매도하는 것이 얼마나 더렵고, 치사하며, 자신의 인권, 또는 친구, 자녀의 인권까지 내버릴 수 있는 일인지 이 글을 읽은 사람이 꼭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