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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T일반

HP, '5만 5,000명 감원'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15년 2분기 PC 출하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5% 감소한 6,840만대라고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 PC 점유율에서 HP는 레노버의 뒤를 이은 2위에 올랐으며, 연간 성장률은 9.5% 하락했습니다. 미 달러의 가치 상승, XP 지원 중단으로 발생한 PC 교체 감소, 윈도 10 출시 임박이 이유였죠.
 


HP, '5만 5,000명 감원'
 
 실제 HP는 미국 출하량에서는 델과 레노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출하량이 HP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고 보긴 어려웠고, HP는 2015년 회계연도 3분기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분사를 앞두고 있기에 이번 실적은 HP가 어느 사업에 무게를 둘 것인지 볼 수 있는 거였습니다.
 
 


 HP는 회계연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PC 판매 하락과 서비스 부문의 어려움으로 252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 감소한 것입니다. 순이익도 8억 5,000만 달러로 지난해 9억 9,000만 달러보다 13%나 떨어졌습니다.
 
 특히 분사의 핵심 중 하나인 엔터프라이즈 부문은 68억 7,000만 달러에서 2% 오른 70억 1,000만 달러 매출을 거두었지만, 다른 한쪽인 PC 및 프린터 부문은 11.5% 하락하여 전체 HP의 매출 하락에 PC 판매가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줬습니다.
 
 실적 발표 후 HP 주가는 1.4% 하락한 채 마감했고, 시간 외 거래에서 4% 넘게 떨어지면서 올해 30% 가까이 감소한 모습을 보입니다. 달리 말하면 분사를 위한 준비라고도 할 수 있지만, HP의 PC 사업에 얼마나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은 지 방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HP의 CFO 캐티 레스작(Cathie Lesjak)은 자사 인력 5만 5,000명 이상을 감원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HP는 2만 5,000명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었는데, 이제 인원을 추가하여 5만 5,000명까지 구조조정에 포함하겠다는 겁니다. HP는 이번 구조조정으로 55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로이터는 분사 이후 더 많은 감원이 이뤄질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감원 예정 인원은 대부분 PC  및 프린터 부문 인력일 것으로 보이는데, 엔터프라이즈 부문도 사업을 축소하면서 구조조정에 들어가겠지만, PC 시장이 이전처럼 대형화하여 대응해야 할 만큼 매력적인 시장은 되지 못하기에 소수의 개발 인력 외에는 감원 대상이 될 겁니다. 이는 2가지를 의미합니다.
 
 첫 번째는 'PC 사업의 축소'입니다. 분사 계획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이번 실적 발표와 감원 계획 탓에 구체적으로 HP가 PC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는 지난해 'HP 분사, PC 시장을 포기한 것'이라는 글을 통해서 '서비스와 소프트웨어가 HP에 중요한데, 하드웨어 제조만 별개의 회사로 두겠다는 건 PC 사업에서 희망을 찾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리고 이번 구조조정 발표로 PC 제조는 하겠지만, 소프트웨어 부문은 전적으로 소프트웨어 회사에 맡기며, 소규모로 하드웨어 제조를 하겠다는 걸 알렸기에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PC를 제조할 뿐 성장 가능성은 두지 않게 됩니다. PC 사업의 축소죠.
 
 두 번째는 '저가 전략의 실패'입니다. 필자는 'HP, 스트림 11이 구원투수가 될 수 없는 이유'라는 글을 통해서 '스트림 11은 HP의 미래를 전혀 책임질 수 없는 그냥 저렴한 제품이고, 윈도의 구원투수는 되겠지만, HP를 위한 제품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스트림 시리즈는 작년 HP가 주력한 윈도 위드 빙의 주력 저가 제품이고, 실제 많은 인기를 끌긴 했습니다. 문제는 매출은 4분기 연속 하락했고, 출하량도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저가 제품 자체로만 보면 수요를 늘릴 요소가 명확한 것 같으나 전체 시장에서 HP를 견인할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판매량이 늘어나더라도 매출을 올릴 수 없기에 사실상 실패라고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만약 저가 제품이 HP PC 부문을 견인할 수 있었다면 감원 결정도 달라질 수 있었겠죠.
 
 또한, 저가 전략이 실패했다는 건 이후 HP의 전략을 가늠할 단초이기도 합니다. 이전까지 큰 규모였던 HP의 PC 제조는 다양한 제품 라인과 브랜드로 여러 수요층을 골고루 만족하는 데 중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전략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건 델의 제품 라인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개인 회사로 돌아간 델은 중구난방의 제품 라인을 줄이고, 전통적인 라인을 강조하면서 뚜렷한 수요 전략을 내놓았는데, 저가 전략을 내세웠던 HP와 미국 출하량에서 고작 10만 대 수준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출하량에서도 240만 대 차이로 라인을 비교했을 때 실제 저가 전략이 HP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걸 방증합니다.
 
 즉, HP가 PC 사업을 축소하게 된다면 저가 전략의 실패를 발판으로 제품 라인을 델처럼 가질 가능성이 큽니다. HP의 새로운 가격 전략을 두고 볼 수 있겠죠.
 
 


 PC가 결국은 필요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PC 부문을 축소하는 것만으로 HP가 저조한 PC 매출에서 탈출할 방도는 마련되리라 생각합니다. IBM이 PC 부문을 레노버에 매각한 후 엔터프라이즈 사업에 치중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분사 이전보다 나은 기회가 될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혹은 델이 개인 회사가 된 것과도 연관 지을 수 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PC 제조사 중 하나였던 HP가 작은 그룹이 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구조의 이점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HP는 11월 1일에 분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