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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T일반

에버노트, 마켓 종료의 긍정적인 면


 2013년 4월, 당시 에버노트 CEO였던 필 리빈(Phil Libin)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뉴 이코노미 서밋(New Economy Summit)에서 IDG와의 인터뷰를 통해 '직접 제조사가 되려는 건 아니지만, 공동 설계로 전용 기기를 만들 준비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버노트, 마켓 종료의 긍정적인 면
 
 그리고 '3~5년 후에는 스스로 하드웨어를 제조할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죠. 이는 에버노트가 하드웨어 사업에 진출한다는 출사표였습니다. 이후 에버노트는 코뗴씨엘(Côte&Ciel), 3M, 에스웰(S’Well), PFU, 아도니트(Adonit) 등과 제휴한 상징인 코끼리 로고와 회색과 녹색의 제품을 쏟아냈습니다.
 
 


 에버노트는 자사 공식 블로그를 통해서 '에버노트는 궁극적으로 소프트웨어 회사'라면서 '에버노트 마켓을 종료한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에버노트 마켓은 에버노트가 제휴하여 생산한 제품들을 판매하는 공간이었고, 코떼씨엘의 백팩이나 아도니트의 스타일러스팬 등이 진열되었습니다. 그 밖에 티셔츠나 물병처럼 에버노트와 연결할 수 없는 제품도 존재했지만요.
 
 에버노트는 그동안 80만 개의 몰스킨 노트, 30만 개의 잣 스크립트 스타일러스, 2만 대의 스캔스냅 스캐너를 판매했다고 말했습니다. 에버노트 마켓은 묻을 닫지만, 해당 인기 제품들은 별도의 유통 채널을 마련하여 구매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그저 에버노트가 주도적이었던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는 거죠.
 
 그러자 최근 불거진 유니콘 거품이 에버노트에 대한 평가를 더욱 부정의 늪에 빠뜨렸습니다. 지난해, 투자자 빌 걸리 (Bill Gurley)는 '2015년에 하나 이상의 죽은 유니콘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으며, 그중 하나로 에버노트를 지목한 바 있습니다.
 
 2015년 에버노트는 구글 임원이었던 크리스 오닐(Chris O’Neill)을 CEO를 교체했고, 2번이나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전 직원의 13%를 해고했습니다. 사무실도 3개나 폐쇄했죠. 거기에 미래 사업으로 3년 전 제시한 하드웨어 사업까지 포기했으니 부정적인 여론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구조조정이나 사무실 폐쇄 자체가 에버노트의 어려움을 단정하는 요소는 아닙니다. 에버노트는 자사 매출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뚜렷한 IPO 계획도 보이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노트 등 경쟁 제품이 성장하는 중에 구조조정과 사무실 폐쇄가 일어났으니 위기감이 고조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에버노트 마켓 종료는 되레 이런 위기감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에버노트 마켓은 에버노트의 하드웨어 사업보단 브랜드 상점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제품이지만, 에버노트 브랜드와 연결했을 뿐이죠.
 
 본래 에버노트가 하드웨어 사업을 하겠다고 한 건 플랫폼을 확장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당시 에버노트는 에버노트 푸드 등 별도의 독립 앱으로 에버노트의 사용성을 분산하여 확대하려고 했습니다. 하드웨어도 그랬습니다. 여러 하드웨어 제품을 출시하는 것으로 해당 상품과 에버노트의 연결점을 찾으려는 소비자가 에버노트를 활용하게 하는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독립 앱을 늘리는 방법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사용자가 에버노트에 집중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분산한 탓에 새로운 하드웨어를 구상하려고 하더라도 시장성을 확보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연히 에버노트와 연결할 하드웨어의 등장이 느려질 수밖에 없고, 실제로 에버노트 마켓에서 판매한 제품 대부분 초기 판매하던 것들에서 바뀌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에버노트가 알게 모르게 이런 플랫폼 전략을 내세우는 동안 에버노트의 본래 기능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았고, 경쟁 제품들은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는 겁니다.
 
 대신 에버노트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 전략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모양입니다. 에버노트가 내놓은 스캐너 앱인 '스캐너블(Scannable)'이 그 방증인데, 필자는 과거 '스캐너블을 놓고서는 스캔스냅 스캐너와의 연동에서 볼 때 에버노트가 하드웨어와 꾸준히 연동할 수 있는 앱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스캐너블의 기능은 스캔스냅을 대처할 수 있고, 앱으로 스캔 활동을 해결할 수 있다면 굳이 연동하지 않아도 됩니다.
 
 즉, 별도의 하드웨어로 플랫폼을 확장하지 않더라도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것으로 에버노트의 경쟁력에 힘을 주겠다는 게 변화 없는 하드웨어 사업을 종료하는 결정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무작정 확장하려 했던 과거와 다른 방향을 설정했다는 것만으로도 정체한 에버노트가 아닌 새로운 에버노트를 기대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 에버노트가 소프트웨어적으로 어떤 변화를 하게 될 것인가도 중요한데, 사실 에버노트가 무한정 확장만 하고자 했을 때 더 흥미로운 기능이 많이 추가되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 기능도 그중 하나이고, 2014년 도입한 SNS인 워크챗도 그렇습니다.
 
 다만 이런 기능은 업무와 에버노트의 연계를 위한 기능으로 등장한 것이었으나 실질적인 성과를 보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경쟁 제품들도 비슷한 기능을 하나씩 둘렀고, 무언가 부족한 프레젠테이션이나 워크챗을 쓰는 것보다 노트 기능으로서 대체 서비스를 찾지 못한 게 사용자들로서는 계속 에버노트를 쓰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필자는 여기에 답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