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 중 가장 혐오하는 두 기업이 바로 이스트소프트와 '한글과컴퓨터'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의 갈파파고스를 만들고 그를 이용한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토종 소프트웨어로 한국 시장에 발전과 기여한 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감싸는 부모가 아닌 잘못 된 것은 따끔히 혼내는 부모의 마음으로 둘을 바라보는게 필자의 입장입니다.
HWP 배포 중단, 한/글의 위기인가?
서울시 얼마전 '정보소통광장' 사이트를 열어 정보공개법이 제한한 8개 항목외 모든 시정 관련 정보를 제공했는데, 이 문서 파일을 기존에 사용하던 HWP가 아닌 PDF로 배포하였습니다. 공문서를 PDF로 배포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플랫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터라 이후에도 PDF로 계속 제공할 가능성을 내비치는 일이었습니다.
정보소통광장의 모든 문서가 PDF로 제공되진 않고, 스프레드시트 형식의 문서는 XLS로 제공하며 과거 자료의 경우는 아직 HWP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작성용 문서로는 HWP가 제공 될 것입니다만, 아마 DOC 등과 같이 제공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이트 슬로건인 열린시정 2.0에 따르면 시민 알권리 10대 원칙 중 3번 항목인 '시민은 누구나 서울시의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하여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와 4번 항목인 '서울시는 정보를 생산, 공개하는 과정에서 시민이 정보를 편리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를 뒷받침하는 처사로 향후 수정용 포맷으로 HWP가 제공될 순 있지만 뷰어용으로는 PDF가 계속 제공 될 것으로 보입니다.
토종 소프트웨어
한/글은 토종 소프트웨어입니다. 벌써 세상에 등장한지 20년이 넘었고, 우여곡절도 많이 겪으면서 국민 위드프로세서로써 여러 분야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HWP는 한국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문서 포맷 중 하나이며, 한글뷰어는 필수 뷰어 프로그램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게 나쁘다는게 아닙니다.
한글이라는 언어 포맷을 디지털 환경에서 제대로 구성하고 작성하기 위해 한/글은 가장 적합한 위드프로세서 입니다. 정확한 한글 출력과 단축키, 인터페이스 등이 우수하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춰있습니다.
한/글 문서는 HWP라는 전용 포맷을 사용합니다. 전용 포맷이 있다는게 문제가 되진 않아요. 하지만, 이를 공용으로 사용했던건 문제가 되었습니다. 한글을 출력하는데 한/글은 매우 좋은 소프트웨어지만, HWP는 한국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갈라파고스화 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관공서 뿐 아니라 교육기관 등에도 HWP를 사용하면서 이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한/글을 구입해야 했고, 한글뷰어가 없으면 뷰어용 문서를 볼 수 없었습니다.
'어차피 DOC도 작성하려면 오피스를 구입해야하고, PDF도 아크로뱃을 구입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이 당연히 나오겠지만, 어떤 문서도구를 사용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공하는 문서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고, 한컴은 이를 수익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토종 위드프로세서라는 이유로, 물론 기능적인 면도 포함되지만 관공서와 교육기관에 깔렸고 문서 작업을 한/글로 해왔습니다. 그때문인지 학교의 과제 등도 HWP로 제출하라는 교사나 교수도 늘면서 한/글만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제공됩니다. 포맷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시절이란 점도 있었지만, 어찌되었건 학생들은 한/글을 구입해야 했습니다. 따로 선택지를 제시하지 않았죠. 한/글의 활용이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HWP 포맷으로 된 문서가 늘어났고 당연히 HWP는 국민 포맷이 됩니다. 여기까진 그렇다고 칩시다. 문제는 한컴은 최근까지 HWP포맷을 오픈 하지 않았고 한/글만 사용하도록 유도했으며, 한글뷰어만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거기까지도 '쓰는데 문제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컴은 여기에 더해서 한글뷰어로는 통합 소프트웨어 설치를 권장하고, 한글뷰어2010에는 광고배너를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기업이 무료 소프트웨어를 통해 광고 수익을 취하는게 뭐가 문제인가?'라고 반발할지도 모르겠지만, HWP라는 갇힌 선택지를 주고서는 한글뷰어만 이용해야하는 상황에서 한글뷰어 광고를 보라는 것은 제품의 품질이나 소비자의 권한이 아닌 국민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라는 점만을 이용한 수익 걷기에만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오픈 된 포맷 조차 다른 워드프로세서나 뷰어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두지 않고 오픈했다는 명목만 달성한채, 국민들이 많이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라는 점만을 이용한 것입니다.
한/글
아마 필자와 반대의 입장이라면 한/글 사용 유도는 한컴이 아닌 정부가 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 점도 분명히 맞아요. 하지만 한컴이 한/글을 제공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겁니다.
한컴이 다양한 플랫폼에서 다양한 사용자들이 한/글문서를 이용하길 바랬더라면 HWP의 오픈화는 서둘렀어야 했으며, 그 오픈화도 정말 소비자를 위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디테일을 보였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했습니다. 또, 한글2010 이전에는 PDF, OPF 보내기 등의 기능은 제공하지도 않았으며, 한/글이 기능적으로 발전한 면도 크게 없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소프트웨어로의 발전'이 아니라 '소비자가 많이 쓰는 소프트웨어로써의 발전'만 계속 해왔던 것이 한/글이라는 것이죠. 만약 HWP를 오픈하고, 다양한 뷰어를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워드프로세서에서 HWP 보내기 등의 기능들이 활성화 되었다면 HWP 배포 중단이 이렇게 환호받는 일이 되진 않았을겁니다. 그건 한컴의 자초하였고, 짊어지고 가야할 것들 입니다.
한/글을 선택에 의해 그 기능만을 보고 구입하도록 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발전도 없었으며, 단지 '토종'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글을 바라봐야 한다면 그건 한/글의 도태됨을 인정하자는 것이고, 그 어떤 소비자에 대한 보상도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많이 쓰기만 하는' 제품으로 전락해버리겠죠.
PDF
그런 면에 있어서 PDF 사용은 매우 환영받아 마땅합니다. 물론 '어도비'라는 외국 기업의 소프트웨어이고, PDF를 수정할 수 있는 아크로뱃도 돈주고 구입해야 합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단편적인 것입니다.
PDF라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뷰어 포맷 중 하나를 사용함으로써 한컴은 어느정도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한컴 입장에서는 HWP가 계속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글뷰어 광고비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HWP로 PDF를 깨기 위해 HWP 오픈화 작업을 글로벌 환경에 적합하도록 바꾸어야 하고 다양한 플랫폼에서 HWP가 지원되고 '어쩌다가'가 아닌 '자연스레' HWP가 대중들에게 사용되고 그것이 토종 소프트웨어로써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경쟁 채제가 되어야합니다. 그런 경쟁 체제로 발전을 거듭하는 한컴이 된다면 '토종'이라는 타이틀의 메리트는 더욱 빛날 것이고, 소비자들도 한/글의 구입을 권장할 것입니다.
카카오가 왜 국민 메시젼가 되었을까요? 단지 많이 사용해왔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많이 사용한다는 이점에만 메달린 것이 아니라 서버 폭주 문제나 컨텐츠 등의 다양한 개선이 이뤄졌었기 때문에 여전히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고 글로벌에서도 먹히는 플랫폼이 되었으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가 된 것입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 라인이나 틱톡 등과의 경쟁체제에서 무너졌을 겁니다.
오피스가 파이를 잃고 에버노트나 구글 도큐멘트가 왜 새로운 워드 플랫폼으로 각광받는 것일까요. 치고 올라오는 이유는 안주하지 않고 경쟁하며, 소비자 욕구를 계속 충족해주기 때문입니다. 한/글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면에 있어서 HWP를 토종 포맷이라는 이유로 밀어주기 보다는 자연스레 최고가 될 수 있도록 환경이 제공되어야 하고, 만약 경쟁에서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면 그건 한컴의 기력 문제 일 것입니다.
적어도 예전 한컴사태처럼 국민들이 한컴을 살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토종 소프트웨어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나서길 원한다면 한/글이 소비자를 위해 발전 할 수 있어야 따라가는 대가입니다. 현재 다시 한컴사태가 벌어진다면 예전과 같은 운동이 얼마나 활성화 될 수 있을지 필자는 회의감마저 듭니다.
한컴 위기?
결론적으로 '관공서의 PDF 배포가 한컴의 위기가 될까?'라는 질문에는 NO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PDF를 작성하기 위해 무조건 아크로뱃을 구입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워드 프로세서나 한/글을 사용해서도 PDF보내기만 하면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한글 작성에 유리한 한/글을 사용하되 배포는 PDF로 하자는 것입니다. 결국 관공서에서는 꾸준히 한/글이 사용되겠죠.
다만, 관공서 시장과는 별개로 개인과 기업에 있어서는 한/글이 시장 원리를 적용받고 경쟁체제로 돌입하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점유율 이점만 활용하는 기업이 아닌 나아가는 기업으로써 토종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겁니다.
알집이 욕을 먹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ALZ나 EGG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알집으로 압축을 하되 ALZ와 EGG라는 전용 포맷을 내놓으면서 알집 사용을 유도하고, 그걸로 통합 소프트웨어를 배포하여 광고 수익과 다른 툴바 같은 소프트웨어를 강제 접근 시키면서 압축 포맷 갈라파고스를 이뤄놓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알집을 이용해 ZIP 포맷으로 압축하고 풀면 되는 일이고, ALZ와 EGG는 웹에서 글로벌하게 사용 될 수 있도록 확정성을 키우기 위해 이스트소프트가 전략을 짠다면 욕먹지도 않았을 겁니다.
HWP가 좋지 않다는게 아닙니다. 단지 한컴이 나태해져 있는 것이 문제이고, PDF 배포는 이런 한컴의 문제점을 꼬집고 HWP를 다시 진보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쟁 속에 한/글이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들어 씽크프리나 모바일용 한/글을 내놓으며 확장을 꾀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생산성 소프트웨어로써 가져야 할 기본적인, 본질적인 부분을 먼저 손보고 그것을 토대로 모바일 확장과 씽크프리 같은 편의 서비스,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 등으로 한컹이 나아가길 정말 바래봅니다.
PDF 배포만으로 그렇게 원대한 꿈을 한컴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단초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한컴이 이를 기회라고 여길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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