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0살이 되면 성인으로 분류합니다. 법적인 기준은 좀 더 명확하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본다는 것이죠. 상당히 의미 있는 나이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의미 있는 나이가 된 제품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단종되어 버렸지만, 사람들의 서랍이나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애플의 '뉴튼'말입니다.
애플 뉴튼, 20살 되다.
애플은 1993년 8월에 뉴튼을 출시했습니다. 존 스컬리의 역작이자 모바일 기기 역사에 있어 가장 중대한 역할을 한 제품이 시장에 등장했던 순간입니다. 뉴튼의 실질적인 개발은 1987년부터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부품의 개발이었고, 본격적인 시작은 1992년 5월 CES에서 뉴튼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나서부터입니다. 그리고 1년 뒤인 1993년 시장에 등장하죠.
뉴튼 출시
뉴튼은 상당히 파격적인 제품이었고,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제품입니다. 애플이 마케팅을 위해 뉴튼을 그렇게 분류했죠. 출시 당시 이 신통방통한 제품은 상당한 수준의 필기 입력 기능과 기존 PC를 뛰어넘는 인터페이스로 주목받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배터리 문제와 성능에 비해 높은 가격, 불량 문제 등으로 출시된 지 5년 만에 단종됩니다. 1997년에 출시된 eMate까지 5년 동안 총 8개의 뉴튼 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당시 뉴튼이 파격적인 제품인 것은 맞지만, 시장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합니다. 뉴튼이 출시되기 전 뉴튼의 예상 매출을 2억 달러로 추정했는데, 이는 애플의 실적 문제를 해결해줄 만한 액수는 아니었습니다. 28만 대 정도 팔릴 것으로 내다본 것입니다. 판매 시작도 전에 실패가 점찍혔고, 실제 뚜껑을 열었을 땐 첫 해 10만 대 판매가 고작이었습니다.
이런 뉴튼을 애플의 대표적인 실패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결과적으로 뉴튼은 애플을 살려내지 못했고, 실적 악화에 내몰린 존 스컬리는 애플을 떠나게 되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뉴튼을 평범한 실패작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뉴튼을 아이패드의 원조 격이라고 하는 것만 하더라도 이미지가 달라 보이니까요.
뉴튼의 길
뉴튼은 현재 모바일 시장의 길을 열어준 제품입니다.
오리지널 뉴튼부터 메세지패드 130까지 ARM 610 RISC 프로세서를 사용했는데, 1990년 VLSI의 조인트 벤처로 ARM(Advanced RISC Machines Ltd.)에 참여한 애플은 휴대용 단말기의 배터리 사용시간을 늘리기 위해 ARMv3 아키텍쳐 개발을 주도했습니다. 걸음마 단계였던 ARM에 큰 파도가 되었으며, 이후 ARM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발판이 됩니다. 만약 당시 애플이 공격적으로 ARM에 투자하지 않았더라면 현재 모바일 시장이 뒤집어졌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배터리 기술도 상당한 발전을 이룹니다. 뉴튼의 사용시간은 조금이지만 계속해서 늘어납니다. 메세지패드 2100까지 AA건전지 4개로 구동하는데, 처음에는 배터리 수명이 금방 닳아 갈수록 사용시간이 줄어 10시간 정도였다면, 이를 늘려 24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eMate에 다서는 충전지와 함께 28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향상시켰습니다. 현재 스마트폰의 배터리 사용 시간이 그리 큰 발전 없이 제자리 걸음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5년 만에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린 것은 상당한 발전이었습니다. 물론 일본의 배터리 기술이 한 몫하기도 했지만, 배터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펌웨어나 앞서 설명한 ARM 프로세서 등 자체적인 노력도 결실을 맺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컴퓨터를 들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실현했고, 이 개념을 유지하도록 한 커다란 공이 있습니다. 경쟁사였던 팜이나 HP는 뉴튼 덕에 과감하게 PDA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으니까요.
뉴튼은 애플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개념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 같아서가 아닙니다. 뉴튼의 엔지니어였던 폴 마서(Paul Mercer)는 1994년 애플을 나와 PIXO라는 모바일 소프트웨어 업체를 설립합니다. 뉴튼에서 본 영감을 담아내기 위해 설립했던 것이었죠. 재미있게도 PIXO가 개발한 PIXO OS는 2001년 출시된 아이팟의 기반이 됩니다. 애플이 PIXO를 흡수하여 아이팟 개발에 사용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잡스는 애플에 복귀 후 뉴튼을 단종했지만, 뉴튼팀만은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이패드 개발을 지시했고, 그 결과 아이폰이라는 파생 제품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이어 아이패드도 탄생할 수 있었죠. 뉴튼이라는 제품이 시장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이를 탄생한 엔지니어들의 실력만큼은 높게 평가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뉴튼을 개발했던 개발자들이 애플 모바일 혁신의 핵심이 되었던 셈입니다.
뉴튼, 20살 되다
애플은 올해 초에 뉴튼의 상표를 폐기해버렸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20년 동안 뉴튼의 상표를 지켜왔다는 것인데, '아이(i)'시리즈로 상품을 내놓고 있는 애플에게 뉴튼이라는 상표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크지 않을 겁니다. 뉴튼 제품을 새로 출시할 리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상당히 아쉬웠던 뉴스였습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뉴튼을 기억하고, 빠르게 단종되어버린 제품임에도 기린다는 것, 그리고 상표 폐기가 아쉽게 느껴졌던 것은 그만큼 뉴튼이 가져다준 충격과 열어준 길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는 뉴튼은 소매점에서 구매할 수 없지만, 뉴튼이 열어준 길로 하여금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비롯하여 다양한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급진적이었고 앞서 갔으며, 그 앞서 갔던 만큼 우리에게 모바일 혁신을 앞당기게 했으니 말입니다.
뉴튼은 오늘 20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뉴튼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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