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PC가 있는 집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매우 강했던 터라 학교에 방과 후 컴퓨터 교실 등도 막 생겨나던 때인데, 그럼에도 생소하다는 것과 복잡한 전자기기라는 점, 그리고 비싼 가격으로 막상 가정에 컴퓨터를 들이는 일이라고는 아이 교육을 위한 정도였습니다.
데스크탑을 훌륭한 가구로 보라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컴퓨터가 없는 집을 찾기가 더 어렵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손에 컴퓨터 하나씩을 쥐고 있죠. 필수품이 되었고, 접근도 수월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바뀌기 시작한 것도 컴퓨터에 대한 인식입니다.
인식
과거의 컴퓨터, 그러니까 데스크탑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성능'과 '가격'입니다. 모든 전자제품을 구매할 때 마찬가지겠지만, 컴퓨터는 유독 어떤 용도인지 그 용도로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는지, 얼마나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지를 관건이었던 겁니다. 지금도 그렇게 컴퓨터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많습니다. 용도 이상의 비용을 사용하게 되면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이 현재에 와서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컴퓨터의 외형이 집의 인테리어와 어울려야 하고, 간단한 웹서핑을 즐기더라도 고성능 32인치 모니터로 깔끔한 화면에서 즐길 수 있어야 하며, 교육용으로 아이만 사용하던 것이 아닌 집 전체의 컴퓨팅 활동을 담당하는 장치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 필자도 포함해서 말이죠. 그들이 나이를 먹고 자란 이유도 있습니다. 컴퓨터가 자연스럽고, 필수 도구로 인식한 시점부터 이미 그 자리에 놓여있었을 테니까요.
다만, 가장 큰 이유는 각자 사용하는 컴퓨터가 생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말입니다. 이전에는 가족 구성원이 모두 PC를 가질 순 없었습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다루기도 쉽지 않았고, 놓을 공간도 부족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크게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 항상 휴대할 수 있는 컴팩트한 사이즈, 그리고 누구나 사용하기 편하다는 점에서 1인 1PC 시대를 열었습니다.
덕분에 데스크탑과 노트북의 성장률은 뚝 떨어진 상태인데, 그렇다고 해서 구매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소비는 일어나지만, 1인 1PC가 되면서 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죠. 예를 들어 가끔 TV를 보는 집이라도 어쨌든 그 가끔을 위해 크고 좋은 TV를 구매하길 원합니다. 물론 가격 요건이 충족하는 선에서 말이죠. 마찬가지로 컴퓨터도 혼자서 사용하지 않는 이상은 각자 이미 개인용 컴퓨터를 지니고 있으므로 집 안의 중심이 될만한 제품을 고르려는 성향을 보이게 됩니다. 그 성향이 인테리어와의 조화나 용도와 상관없이 고성능의 제품을 구매하도록 소비자들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가구
이런 점에 PC 제조사들은 소비자의 성향을 맞추기 위한 제품을 시장에 계속 내놓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파워풀한 기계라는 걸 보여주는 듯한 디자인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성능은 당연하고, 소비자들도 성능에 대한 이해도가 풍족해진 상태이므로 이 성능을 감싸 안을 케이스가 드러나지 않고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의 다양한 재질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나무로 된 제품은 원목 책상과 잘 어울리기도 해서 본체뿐 아니라 주변기기들도 함께 나무로 제작되곤 합니다. 또한, 아무 나무나 사용하는 것이 아닌 대나무나 삼나무 원목과 같은 고급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고급스러움을 더합니다.
깔끔한 설치와 단조로움이 장점인 올인원PC도 이런 변화에 주목하면서 애플은 오래전부터 벽에 걸어놓을 수 있도록 마운트를 판매하고 있으며, 마운트를 장착한 옵션도 내놓았습니다. 레노버는 바닥에 뉘 울 수 있는 호라이즌 PC를 선보였는데, 여러 사람이 테이블PC로 함께 컨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여 거실 중심의 PC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올인원PC의 성장률은 올해 160%를 기록했으며, 2016년까지 13%나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여 하락하고 있는 전체 PC 판매량을 혼자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레드 하빈저(Red Harbinger)는 ‘크로스데스크(cross desk)’라는 책상을 선보였는데, 이 책상은 아예 책상을 컴퓨터 본체로 사용하여 내부에 부품을 장착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책상을 컴퓨터 케이스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컨셉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형태의 변화는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고, 처음부터 컴퓨터가 탑재된 책상에 모니터만 놓아두는 광경을 쉽게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알루미늄 PC 케이스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리안리(Lian Li)는 컴퓨터의 형체 자체를 없애버리는 'PC-CK101'이라는 기차 모양의 케이스를 선보였습니다. 장식품 같은 이 케이스는 실제 컴퓨터 본체이며, 레일을 연결하면 달리게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컴퓨터가 좀 더 세련되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제품이죠.
단지 디자인 때문만이 아닙니다. 소비자들이 이제 PC를 고르는 기준을 이전과 달리하고 있고, 시장도 그 기준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필수품이 된 데스크탑이 집안의 중심으로 하나의 가구로서 인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데스크탑
이전에는 컴퓨터의 업그레이드도 신경써야하고, 때에 따라 부품도 교체해야 하는 등 골머리를 안으며 컴퓨터를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능이 평준화 되었고, 이전만큼 성능에 쫓기는 상황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아예 처음부터 고성능의 제품을 구매하고 오래 사용하자는 인식이 강하고, 그 탓에 고성능의 데스크탑 판매가 늘면서 덩달아 외형적인 변화도 함께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계속 될 것입니다. 필자는 이것이 오히려 하락 중인 기존 PC 시장이 아니라 PC 시장의 새로운 기회이며, 제조사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스크탑은 이제 하나의 가구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어떤 가구를 선호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데스크탑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IT > IT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패드 교육, 불가능한가? (13) | 2013.10.05 |
---|---|
팔로 알토, 전기차 충전시설 의무설치하라 (10) | 2013.10.02 |
에버노트, 자체 브랜드 제품 판매 시작과 하드웨어 사업 (8) | 2013.09.29 |
모프리아, 모바일 프린팅 연합 출범하다 (6) | 2013.09.25 |
HP, 립모션을 노트북에 탑재하다 (4) | 2013.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