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제품은 배터리 효율이 높습니다. 이건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는데, 아이폰의 배터리 사용시간에 불만족인 사람도 많지만, 그 외 제품의 배터리에 불만인 사람을 필자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하다못해 애플의 무선 키보드와 무선 마우스의 AA 배터리도 오래간다고 할 정도니 다른 건 몰라도 배터리만큼은 믿고 사는 것이 애플 제품이죠.
애플은 어떻게 배터리에 집착하는가?
애플이 제품을 공개하면서 배터리 사용시간을 소개하면 사실 발전된 느낌이 없습니다. 매번 사용시간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죠. 이번 하스웰 프로세서 장착으로 늘어난 맥북의 배터리를 빼고 보면 그렇습니다. 마치 먼저 배터리를 얼마 사용할 것인지 정해놓고 그에 맞춰 배터리 사용시간을 계산한 제품을 내놓은 느낌이죠.
배터리
애플의 10월 이벤트에서 필자가 가장 눈여겨본 것이 '배터리'입니다. 아이패드 에어를 소개할 때 아이패드 에어의 레이어를 하나하나 분리해서 보여줬는데, 이 두께들이 모여 7.5mm의 아이패드 에어를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줄어든 것 중 하나가 배터리입니다. 애플은 소개 영상에서 A7 프로세서 장착으로 배터리 효율이 높아졌고, 그 덕분에 배터리를 줄이면서 사용시간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더 가벼워진 아이패드 에어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이패드의 사용시간은 10시간이고,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그런데 배터리를 줄이면서도 사용시간이 같도록 했습니다. 대신 사용자들은 얇고 가벼움을 얻었죠.
맥북의 배터리 사용시간도 획기적으로 늘었습니다. 이것을 하스웰 덕분으로 떠넘길 수도 있으나, 신형뿐만 아니라 구형 맥북들의 배터리 효율까지 높아졌으니 전체 맥북을 얘기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필자도 주말에 맥북 에어의 매버릭스 업데이트를 진행했는데, 확실히 배터리 사용시간이 늘었고, 단순 숫자 놀음이 아닌 체감할 정도였습니다. 활용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사용시간으로 사기를 치는 게 아닌가 할 정도여서 실제 사용해보고 느끼기 전까지는 믿기 어려울 만큼 좋아졌습니다. 필자의 맥북 에어는 2011년 형으로 배터리 사용시간도 점점 줄어가던 마당이었는데, 다시 새것으로 돌아간 듯한 배터리 효율을 보여줬으니 새 제품을 얻은 기분입니다.
이건 '그런 느낌이다'가 아니라 실제 아스테크니카(Ars Technica)의 배터리 벤치마크 결과를 보면 매버릭스를 설치한 것만으로 배터리 효율이 향상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게는 10~20%, 많게는 50%까지 향상된 배터리 사용시간을 보여주니 별다른 배터리 교체 없이 배터리 상향 효과를 사용자들이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집착
애플 제품 모두가 만족스러운 배터리를 보였는가 하면, 꼭 그렇진 않습니다. 초기 아이팟은 배터리가 항상 단점으로 지적되었고, 아이폰은 여전히 배터리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한 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인데, 중요한 것은 애플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배터리에 대한 비결을 쌓아왔다는 겁니다.
배터리 기술 자체는 그리 발전된 것이 없습니다. 아니, 발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속도가 폭발적으로 배터리 사용시간을 늘려놓고는 있지 못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배터리 자체를 오래가게 하는 것보다 프로세서를 저전력으로 만드는 등의 노력에 더 큰 공을 들입니다. 그리고 그 공을 가장 훌륭하게 해내는 곳이 애플이죠.
아이팟, 아이폰, 이젠 아이패드군요. 모두 배터리 크기는 초기와 비교해 줄어들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것은 다른 제조사들과 반대로 가는 것인데, 더 많은 배터리를 넣었다고 얘기하는 회사들과 달리 애플은 사용시간만 얘기하고, 정확한 배터리 용량은 제품을 뜯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뜯어보면 배터리 용량을 처음과 달리 줄어들었죠. 하지만 언제나 배터리 사용시간은 동일합니다. 물론 활용에 따른 편차는 나타나지만, 큰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는 겁니다.
애플은 항상 배터리를 더 줄이길 원하고, 그것으로 얇은 두께와 가벼운 무게, 혹은 다른 무언가를 집어넣을 공간을 얻어내려 합니다. 더 많은 배터리 사용시간을 위해 더 많은 배터리를 넣는다는 기본적인 전제를 두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용시간, 그러니까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따지면 10시간을 두고 10시간을 맞추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애플이 배터리에 집착하는 방법입니다.
아난드텍은 서피스 프로 2가 새로운 CPU를 탑재했음에도 구글의 넥서스7과 갤럭시노트 10.1보다 못한 배터리 성능을 증명했습니다. 다만, 서피스 프로 2와 2013년형 맥북에어는 똑같은 프로세서를 장착하고 있고, 배터리는 맥북에어 11인치와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안드로이드 태블릿보다 맥북과 비교해야 할 것 같지만, 배터리 효율만 보면 맥북에어와 비교해 2배나 떨어집니다. 같은 프로세서, 비슷한 배터리임에도 2배나 차이가 난다는 것은 운영체제 부분에서 윈도우의 효율이 굉장히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반대로 얘기하면 OS X의 효율이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단지 하드웨어가 비슷한 것으로 같은 배터리 성능을 낼 수 없다는 걸 간단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배터리 발전의 뒷면을 애플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융합
애플의 배터리 기술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애플이 A7 프로세서를 내놓은 시점에서 그 융합이 진정한 빛을 내뿜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미 소프트웨어를 통해 배터리를 잡아낼 수 있었던 것과 자체적으로 설계한 프로세서를 통해 배터리를 잡아낼 수 있게 된다면 애플은 비워낸 배터리 공간으로 더 얇고 가벼운 제품을 만들거나 혹은 다른 것을 집어넣어 앞서나가는 결과로 바꿔놓을 것입니다.
이것은 애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만드는 거의 유일한 회사이므로 가능한 것이지만, 이제는 이것이 여러 제조사들이 갖춰야 할 중요한 지점일 것입니다. 그나마 근래 가장 큰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이 구글이고, 마찬가지로 애플처럼 소프트웨어를 통한 배터리 효율을 상당히 높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렇다면 구글이 하드웨어를 본격적으로 제조하게 되었을 때 필요한 부분 역시 배터리를 어떻게 잡느냐가 될 것입니다.
애플은 배터리의 사용시간을 늘린다는 것보다 배터리를 줄이면서 무엇을 할 것인지 매번 고민해왔습니다. 물론 배터리 사용시간이 늘어나길 사용자들은 바랍니다. 필자도 마찬가지고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24시간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다만, 애플이 그런 단편적인 배터리 기술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배터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애플의 배터리에 대한 집착으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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