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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T일반

팬택의 이해할 수 없는 가격 정책

 팬택이 위기를 극복하겠다며, 다짐한 지 두 달여 지났습니다. 직원 800명이 6개월 무급휴직에 들어갔고, 박병엽 부회장이 사임하면서 암울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전략 제품으로 내놓은 '베가 시크릿 노트'가 판매 호조를 이루면서 부활 조짐을 보였습니다.
 




팬택의 이해할 수 없는 가격 정책


 그랬던 팬택이 올해 마지막 제품이 될 '베가 시크릿 업'을 공개했습니다. 시크릿라인의 후속작으로 시크릿 노트의 특징을 살리면서 풍부한 음향을 제공합니다. 팬택의 박창진 부사장은 '베가 시크릿 업이 전 국민 2%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는데, 1%라 다짐했던 시크릿 노트의 목표보다 두 배 더 판매하겠다고 설정한 것입니다.
 



시크릿 업



 베가 시크릿 업은 2.3GHz 쿼드코어 퀄컴 스냅드래곤 800 프로세서, 안드로이드 4.2.2, 5.6인치 1920 x 1080 디스플레이, 13M 카메라, 2.1M 전면 카메라, 2GB 메모리, 16GB 저장공간, 3,150mAh 배터리, 블루투스 4.0 등을 제공하는 스마트폰입니다.
 
 기존 시크릿 노트에서 보여준 사생활 보호 기능과 함께 음향에 중점을 둬,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많이 듣는 소비자 성향을 반영했습니다. 특별한 음향 장치가 없더라도 풍부한 음향을 제공한다는 것이 팬택의 설명인데, 제원이나 특징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이것이 전 국민 2%가 구매할 제품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가격'입니다.
 
 시크릿 업의 출고가는 95만 4,800원. 거의 100만 원에 육박합니다. 대부분 높은 사양 제품들이 100만 원 수준의 가격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팬택의 목표인 100만 대를 판매하기에는 다소 무리 있는 가격입니다.
 
 시크릿 노트가 99만 9,000원의 출고가로 하루 개통량 5,000대를 달성하는 등 기록을 세우면서 판매가 원활하게 이뤄졌던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 출고가는 유지되지 못한 채 금방 떨어졌고, 중요한 점은 4분기 흑자의 쐐기를 박는 제품으로 내놓은 시크릿 업이 주목할만한 특징 없이, 그렇다고 사양이 타제품보다 월등히 높지도 않은데, 가격만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안드로이드 4.4는 아니더라도 4.3도 아닌 4.2.2는 얼마나 대충 찍어냈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 외 사양도 지난 8월 출시한 베가 LTE-A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베가 LTE-A의 출고가가 87만 8,900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시크릿 라인이라는 점'과 '풍부한 음향 제공'만으로 가격이 7만 원 가까이 오른 셈입니다. 그렇다고 베가 LTE-A가 잘 팔렸느냐고 하면, 잘 팔렸으면 팬택이 지금 이 모양 이 꼴은 되지 않았겠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가격 정책입니다.



가격 정책



 시크릿 노트가 잘 팔리긴 했습니다. 지금도 그러하나 시크릿 업이 시크릿 노트와 같은 판매 전략을 내건다고 해서 똑같이 잘 팔릴 거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먼저 출고가가 높은 만큼 초기 판매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사양이 특출난 것도 아니라서 이후 가격이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타 업체의 중저가 모델과 비슷하거나 플래그쉽 모델과는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입니다.
 
 가장 말도 안 되는 부분이 베가 LTE-A와 사양이 비슷하면서 가격은 더 높은 것인데, 시간이 지났으니 덧붙여진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베가 LTE-A 하루 개통량은 1,000대 수준으로 시크릿 노트의 5,000보다 5배나 부족했던 셈입니다. 그나마 올해 판매된 제품 중 현재 50만 대를 기록한 것이 '베가 아이언'이고, 시크릿 노트도 무난히 50만 대를 넘길 것으로 보이지만, 시크릿 업이라는 뜬금없는 제품의 판매량을 100만 대로 목표한 것은 시장 파악을 제대로 했는지 의심하게 합니다.
 
 시크릿 업의 제일 큰 문제는 잘 나가던 시크릿 노트의 뒤를 이어 흥행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가격이 베가 브랜드의 가장 최신 스마트폰이라는 인식을 하게 하고, 시크릿 노트를 구형으로 밀어내어 잠식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현재 가격이 내려간 시크릿 노트를 계속 주력으로 두면서 40~50만 원 수준의 제품을 내놓았다면 라인 정리와 함께 넥서스 시리즈와 여타 중저가 시리즈에 익숙해진 소비자를 대상으로 베가라는 브랜드를 확립하는 좋은 수가 되었겠지만, 시크릿 업은 제품 자체의 특장점도 뚜렷하지 않으면서 가격만 높습니다.
 
 어렵다며 눈물로 호소하던 팬택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회사가 문을 닫게 생겼다더니 높은 출고가는 계속 유지하고, 피처폰처럼 찍어내던 버릇은 고쳐지지도 않았으며, 버스폰 이미지를 계속 유지할 모양입니다. 시장 논리 다 집어치우고, 동정으로 제품을 판매하더라도 그 동정을 받아줄 만한 가격 정책을 내놓든지, 아니면 95만 원을 주고 구매할 확실한 매력이 있는 제품을 내놓든지, 진짜 망하고 싶지 않다면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팬택



 출고가를 높게 잡는 것이 나쁜 짓은 아닙니다. 제조사가 그렇게 팔고 싶다면 그렇게 팔면 되고, 소비자는 소비자 나름의 소비를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팬택은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실제로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회사를 살리기 위해선 기존의 회사를 어렵게 만든 방식을 버리고, 체제 전환과 전략 수정으로 시장을 똑바로 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이해할 수 없는 가격 정책은 팬택이 과연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의심하게 합니다.
 
 누군가는 '어렵다는 팬택을 왜 욕하느냐'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필자는 삼성, LG와 더불어 팬택이 존재하는 체제가 국내에 유지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으며, 그러기 위해선 팬택이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 스스로 시궁창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은 팬택입니다.
 
 살아날 생각이 있다면 더는 소비자의 눈을 가리고 판매할 생각은 버리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