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월 24일, 애플은 '매킨토시(Macintosh)'를 선보입니다. 그리고 지난주 30살을 맞이했습니다. 클래식 매킨토시가 단종된 지 18년이 되었으니 생일 축하를 하는 것이 우스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제품이기에 되새겨 보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매킨토시 30주년, 맥이 맥으로 존재하는 이유
리사(Lisa)부터 시작된 애플의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결정타라고 할 수 있는 매킨토시는 1982년 스티브 잡스가 리사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되면서 탄력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매킨토시가 탄생한 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리사2는 외면받았음에도 매킨토시는 GUI의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준 제품으로 불립니다.
매킨토시가 보인 가능성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매킨토시 시스템 1.0을 넘어서 현재 OS X까지 왔지만, 디자인이 세련되게 변한 것 외 전체적인 매킨토시의 느낌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듬어졌다'고 할 수 있겠죠. 애플은 30년 동안 다듬어져 온 매킨토시를 기념하기 위한 웹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필자가 매킨토시를 처음 접했던 이야기를 살짝 하자면 초기 매킨토시부터 사용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계속 맥을 사용하고 있지만, 가장 먼저 제 것으로 가지게 된 PC는 도스(MS-DOS)로 구동되던 녀석이었습니다. 당시 펜티엄이 막 등장하던 시기였는데 부모님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생전 처음 보는 도스를 저에게 주신 겁니다. 버전도 3.2로 필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시된 PC였습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건 이게 아니에요.'라고 해보았지만, 갖다버릴 수도 없으니 학교에서는 윈도 95를, 집에서는 도스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스를 쓰다 보니 컴퓨터의 구조를 익히기도 수월했고, 그렇게 컴퓨터와 친해지게 됩니다. 숙명처럼 잡지를 통해 매킨토시의 존재를 알았으며, 마침 다니기로 했던 컴퓨터 학원 선생님이 매킨토시를 사용하는 것에 관심을 두면서 여러 번 만져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학원에서 배우는 것은 윈도였지만, 마음은 매킨토시에 빼앗겼죠. 다 똑같은 걸 쓰는데 선생님만 특별해 보이니 그랬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잡지를 보면서 느꼈던 일종의 매킨토시에 대한 기대에도 빠졌었나 봅니다.
중요한 건 그렇게 경험할 수 있었던 매킨토시의 느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디자인이나 기능의 추가나 CPU와 OS의 변화를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30년 동안 매킨토시가 지니고 있었던 가능성과 PC의 본질적인 면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맥월드(Macworld)는 매킨토시 30주년을 맞이하여 애플 간부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해당 인터뷰에서 애플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석부사장인 크레이그 페더리기(Craig Federighi)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제품에 터치스크린을 적용하기는 쉽지만, 그것이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주진 않습니다.'
그는 OS X과 iOS가 다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에서 손가락을 터치하는 것으로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 각자 최적의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발전을 해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맥의 인터페이스는 맥의 인터페이스대로, iOS의 인터페이스는 iOS의 인터페이스대로 발전해왔다는 겁니다. 즉, 맥은 마우스와 키보드에 최적화된 제품으로 발전하기를 30년이나 걸렸습니다.
맥월드의 디렉터인 제이슨 스넬(Jason Snell)은 인터뷰를 위해 애플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을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인터뷰를 위해 맥북 에어를 선택하는 것을 두고, 페더리기는 가방을 가리키면서 '당신도 바로 일을 수행하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 장치를 꺼냈습니다.'라며, '그것은 단순히 더 강력한 컴퓨팅을 제공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현재 일을 수행하는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입니다.'고 지적했다고 밝혔습니다.
'GUI를 채용한 PC의 아주 본질적이고, 그 장치가 가장 잘해낼 수 있는 일을 위해서 발전을 거듭해온 것.'
많은 이가 터치스크린보다 마우스와 키보드가 구식이라고 생각할지언정 애플로서는 발전의 대상이고, 맥이 다듬어지는 것과 함께 더욱 적합한 장치가 되도록 인터페이스도 발전해온 것입니다. 거기서 30년이라는 시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애플이 넥스트(NeXT)를 인수하기 전까지 하드웨어 없이 소프트웨어만을 개발해서 성공하는 업체들이 많았습니다. MS가 그렇고,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가 그랬죠. 거기다 너도나도 객체 지향 디자인(Object Oriented Design)에 빠져있던 탓에 애플도 IBM과 손을 잡고 탈리전트(Taligent)라는 객체 지향 운영체제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습니다. 넥스트도 1993년에 하드웨어 사업을 정리하고, 소프트웨어 회사로 전향하면서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었으며, 애플 내부적으로도 맥 OS를 새로운 객체 지향 운영체제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던 차였습니다. 결국에는 탈리전트가 실패하고 애플이 인수했던 것이 넥스트였는데, 넥스트스텝이 랩소디(Rhapsody)를 거쳐 OS X이 됩니다.
더 자세하게 얘기하면 코플랜드 OS(Copland OS)까지 포함해야겠지만, 어쨌든 OS X은 기존 맥 OS의 후속이라기보다는 넥스트스텝의 후속인 셈입니다. 그러나 OS X은 기존 매킨토시의 사용자 경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본다면 다른 운영체제라고 해야겠지만, 실제 사용에 기존 맥 OS가 노후했다는 것을 빼면 경험적인 측면은 매킨토시가 계속해서 발전해왔던 형태를 따른 겁니다. 만약 애플이 MS나 썬처럼 소프트웨어에 눈을 돌리고, 맥 호환 기종의 생산을 제조사에 넘기면서 코플랜드 OS나 탈리전트를 밀고 나왔다면 OS X은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고스란히 매킨토시의 사용자 경험이 이어졌기에 넥스트스텝에서 뻗어나온 OS X으로 객체 지향 디자인을 포함하면서도 맥이라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죠.
대개 잡스가 넥스트스텝을 들고 애플로 돌아오면서 맥이 재탄생했다고 평가하지만, 실상 애플이 매킨토시를 유지했던 몫이 큽니다. 만약 존 스컬리 시절, 제품 담당이었던 장 루이 가세(Jean-Louis Gassée)가 호환 맥을 지지하고 나섰다면 진작에 매킨토시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고, 존 스컬리와 같이 장 루이 가세가 쫓겨나자 맥을 싸구려 컴퓨터로 전락시킨 애플 희대의 오점,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가 바로 맥 호환 프로그램을 내놓았던 걸 생각해본다면, 그걸 길 아멜리오(Gil Amelio)가 다시 돌려놓지 않았다면, 잡스가 다시 돌아왔더라도 30년을 이어온 지금의 맥을 만나지 못했거나 아예 애플은 썬이나 IBM에 인수되어 잡스가 돌아오는 일도 없었겠죠. (여차하면 오라클이 개입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애플이든 사용자든 맥에 대한 애착이 강력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처음 등장했던 매킨토시의 모습을 아직도 맥에서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매킨토시의 형태를 망가뜨리지 않고자 하는 것은 지금에 와서는 확고한 일종의 신념입니다. 아주 구식 같은 얘기로 들리지만, 맥의 강력한 DNA을 유지하고자 했던 애플의 모습이 페더리기가 얘기했던 것처럼 맥 그 자체로 발전해왔기에 맥으로써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의 명맥은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유지되고 있는 역사적인 30년의 지점에 서 있죠. 애플이 열어놓은 매킨토시 30주년 기념 웹사이트의 타임라인은 이 지점까지의 여정을 훌륭하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또한, 'Your First Mac'이라는 메뉴를 통해 처음 사용한 맥과 시기를 입력하면 감사 메시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입력한 내용은 인포그래픽 형식으로 제공되어 어떤 모델이 첫 맥이 되었는지, 어느 시기에 어떤 분야에 맥이 더 사용되었는지 알려줍니다. 이것조차 맥이 지금껏 존재한 덕분에 기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용자들은 사용 중인 맥을 다시 한 번 쳐다보겠죠.
매킨토시 30주년이 지닌 의미는 각자 다를 것이고, 그 의미가 제품으로 유지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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