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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APPLE Geek Bible

아이폰 5c로 본 애플의 전략 수정


 애플은 회계연도 1분기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분기에만 팔아치운 아이폰이 5,100만 대, 전년동기 대비 6.6% 상승한 수치입니다. 매출은 576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월가의 예상을 밑도는 탓에 주가는 급락했습니다. 실적 자체로만 본다면 나쁘지 않지만, 성장에 대한 지적이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플의 성장 문제야 매번 실적이 좋아도 투자자들을 웅성거리게 했던 만큼 별로 놀랄만한 일도 아니지만 말이죠.
 


아이폰 5c로 본 애플의 전략 수정
 
 오히려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아이폰 5c(iPhone 5c)'입니다. 필자는 작년에 아이폰 5c의 성적이 썩 나쁜 편은 아니고, 애플이 2014년에 어떤 전략을 들고 나오느냐에 따라서 아이폰 5c의 포지셔닝이 결정될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실적발표에서 아이폰 5c에 대한 팀 쿡의 발언은 이를 추측하도록 하는데 적합했습니다.
 
 


 매번 그렇지만, 애플은 아이폰 5c만 얼마나 판매했다고 따로 공개하진 않았습니다. CIRP가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10~12월에 아이폰 5c는 미국 내 아이폰 점유율의 2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59%인 아이폰 5s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작년 같은 위치의 아이폰 4s가 32%를 차지했으니, 대단히 성공적인 미드 레인지 모델로 볼 수 없습니다. 팀 쿡은 이것이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애플의 CEO인 팀 쿡은 '아이폰 5c의 수요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고 말했는데, 이는 기대를 충족할만한 제품은 아니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애플이 아이폰 5c에 걸었던 포지셔닝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아이폰 5를 갈아치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폰 5s를 최상위 모델로 두고, 아이폰 5c를 미드 레인지 모델로 양분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기존 최상위 모델 사용자는 다시 최상위 모델로 몰려들 것이 뻔합니다. 그렇다면 기존 미드 레인지 모델 소비자들이 아이폰 5c를 구매하도록 해야 하는데, 아이폰 5c는 그렇다 할 특징이 없는 제품입니다.
 
 CFO 피터 오펜하이머는 '아이폰 5s의 수요를 맞추기 어려웠다.'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아이폰 5s가 잘 팔렸다는 것이고, 미들 레인지 모델에 신경 쓸 틈 따위는 있었선 안되었던 겁니다. 이런 현상의 이유를 팀 쿡은 '터치 ID(Touch ID)'에서 찾았는데, '터치 ID라는 새로운 기능이 소비자를 끌어들였고, 아이폰 5s를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아이폰 소비자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욕구가 크고, 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일 뿐 미드 레인지 모델은 이러나저러나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을 파악한 것입니다.
 
 아이폰 5c로 판매량을 늘릴 생각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가격을 더 낮춘다? 괜찮은 방법이겠지만, 애플의 이익은 떨어졌을 겁니다. 오히려 아이폰 5c에 터치 ID를 장착하여 소비자들을 고민하도록 할 수 있었겠죠. CIRP의 분석가 조쉬 로위츠(Josh Lowitz)는 '아이폰 5c는 아이폰 5s의 구매를 강제하기 위해 디자인된 것 같다.'고 했는데, 이는 '아이폰 5를 구매하려던 소비자도 강제적으로 아이폰 5s 구매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깁니다. 사양은 같지만, 처음부터 최상위 모델로 나온 아이폰 5와 처음부터 미드 레인지 라인을 저격한 아이폰 5c는 소비자들이 느끼기에 서로 다른 제품이고, 아이폰 5s를 강제적으로 구매하지 못한 소비자는 아이폰 5c를 선택하거나 남아있는 아이폰 5를 선택하거나 혹은 다른 제품을 선택해야 했을 겁니다.
 
 아이폰 5c가 미드 레인지 모델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실패한 제품으로 보기도 힘들지만, 아이폰 5c의 후속작이 나온다면 아이폰의 판매량을 늘리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굳이 라인을 이어나갈 이유는 없습니다. 애플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전략 수정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기존의 방식처럼 아이폰 5s를 미드 레인지 모델로 두고, 신제품을 최상위 모델로 둔다면 그것으로 아이폰 5c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플이 원하는 것은 아이폰 5c의 문제점 해결이 아닙니다. '더 많은 아이폰의 판매'가 되어야 하죠.
 
 하지만 단순히 가격이 낮은 미드 레인지 모델로는 판매량을 늘릴 수 없다는 것이 아이폰 5c로 증명되었습니다. 유지만 했을 뿐 판매량 증가로 이어지지 못했으니, 결국 어떤 미드 레인지 모델을 내놓더라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최상위 모델을 아주 잘 만드는 것인데, 이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일본의 아이폰 돌풍과 중국의 아이폰 판매 돌입과 같은 부분을 두고 본다면, 상승한 전체 6%를 제품이 아닌 지역을 통해서 얻은 결과라고 봐도 좋을 것이고, 만약 전반적으로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했다면 월가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도 가능했을 겁니다. 아이폰 소비자가 아닌 타사 최상위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아이폰에 더욱 몰려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선택지가 없다는 걸림돌이 생깁니다.
 
 아무리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고 싶고, 거기에 매료되더라도 다양한 소비자를 공략하는 것에는 아이폰의 한계가 분명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아이폰 5c는 색상도 늘리고, 디자인에도 차별화를 뒀을 겁니다. 그러나 소비자는 최상위 모델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미드 레인지 라인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품 라인을 급격하게 늘려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최상위 모델에 최소한의 선택지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아이폰 5c에 터치 ID가 장착되었다면 양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폰 5s보다는 저렴한데, 신기술인 터치 ID가 탑재되어 있고, 색상이라는 선택지도 있으니까요. 저렴한 가격에 터치 ID를 쓰고 싶다면 나쁘지 않은 결정이겠죠. 이를 두고, 별로 하는 것도 없는 터치 ID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 같지만, 아이폰 5s의 대표적인 기술이고, 좀 더 생각해보면 A7이나 M7, 듀얼 플래시도 같은 범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이 아이폰 5c에 탑재되었고, 가격만 아이폰 5s보다 낮았다면 어땠을까요?
 
 우리는 이미 비슷한 사례를 한 가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아이패드'입니다. 9.7인치 아이패드와 아이패드 미니로 양분되어 크기, 사양, 가격에 차별점을 뒀던 것을 아이패드 에어와 아이패드 미니 레티나로 넘어오면서 크기와 가격에만 차별점을 뒀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굳이 특별한 저가 라인을 구성하지 않아도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지난 분기 아이패드의 판매량은 2,600만 대이며, 이는 전년동기 대비 18% 상승한 것입니다.
 
 애플은 아이폰에서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최상위 단일 모델만으로 성장세를 지속하느냐, 아니면 최상위 라인의 분리를 통해 성장세를 지속하느냐입니다. 단일 모델로 성장세를 지속할 것이라면 굳이 신제품에 이전 제품을 광고할 필요가 없고, 신제품 마케팅에 주력할 수 있습니다. 최상위 라인을 분리한다면 크기에 차별점을 둘 수도 있을 것이고, 사양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두 제품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어중간한 미드 레인지 제품은 내놓지 않을 테니까요.
 
 그것이 애플의 성장세에 도움될 것이라고 단안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애플은 다음 1분기에 아이폰의 판매량을 15% 이상 올려놓아야 성장세

가 꺾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즉, 5,800만대는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아무런 전략 수정 없이 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아이폰 5c를 기점으로 라인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면 아이패드와 같은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가능성 높은 수정 방안입니다.
 

 


 생각해보면 삼성도 이와 같은 전략으로 시장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갤럭시 S 라인과 갤럭시 노트 라인이 그것인데,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라인의 출시 간격을 따로 두고, 각 소비 계층을 분리하여 공략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애플이 최상위 라인을 분리한다면 출시 간격을 따로 두기보다는 한 번에 출시하여 소비자들이 두 가지에서 고민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용자가 어떤 제품을 선택하든 최상위 모델의 느낌을 이어나갈 수 있을 터입니다.
 
 다만, 이런 전략 수정이 새로운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는 또 한 가지 복병이 있습니다. '새로운 제품'입니다. 애플이 올해 차세대 제품 사업 모델을 새롭게 선보인다면 아이폰을 두 가지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최상위 단일 기종으로 사업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성장 동력으로 아이폰을 계속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버리니, 그 파급력에 따라서 굳이 전반적으로 포화 상태에 다다른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를 기대하는 쪽이 누그러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모험을 하지 않아도 최상위 단일 기종으로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이 결과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려면 올해 WWDC까지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올 상반기에도 별다른 제품 소식이 들리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WWDC에서 최소한의 가닥을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 애플이 어느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전반적인 전략을 내다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며, 몇 가지 남아있지 않은 선택의 갈래에서 어떤 방향을 주시하고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