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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amsung

삼성, '플랫폼, 플랫폼, 플랫폼'



 삼성전자는 지난 8일, 매출 52조 원, 영업이익 7조 2,000억 원의 시장 예상을 크게 밑도는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8조 원으로 예상한 영업이익이 7조 원 수준에 머물면서 위기론이 나올 법한 상황입니다. 7조 원이 다른 기업과 비교해도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8조 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2년 2분기 이후 처음이며, 고공 행진하던 성장 곡선이 떨어지게 되었다는 점은 삼성의 하반기에 커다란 과제를 던져놓은 것입니다.
 


삼성, '플랫폼, 플랫폼, 플랫폼'
 
 과제라고 표현했지만, 삼성이 당장 해낼 수 있는 건 새 하드웨어 제품을 만들어 판매량을 올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이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이는 웨어러블과 사물인터넷 분야도 먼저 뛰어들었지만, 더 큰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쪽은 구글입니다.
 
 


 구글은 구글 I/O 2014에서 안드로이드 웨어, 안드로이드 TV, 안드로이드 오토까지 웨어러블, TV, 자동차까지 아우르는 영역으로 안드로이드를 확장했습니다.
 
 분명 삼성이 웨어러블이나 TV, 사물인터넷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직접 생산한다는 것인데, 특히 TV는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웨어러블 시장에서도 가장 나은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구글 쪽이 훨씬 쉽게 확장하는 느낌입니다.
 
 플랫폼의 차이가 영역이 벌어지면서 더 심해진 것인데,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의 가능성을 공고히 했고, 당연히 다음 성장할 시장이라는 웨어러블이나 사물인터넷으로 안드로이드를 확장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개발 환경이나 개발자 생태계, 그리고 기기 간의 연동을 위한 기능 등 삼성 정도의 규모에 직접 제품을 생산하진 않지만, 잘 성장한 커다란 플랫폼을 두고, 참여하질 않을 업체를 고르는 쪽이 더 어려운 것이죠.
 
 삼성도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고 해야겠지만, 문제는 그 밖의 플랫폼에 대한 대책 마련은 미흡했다는 겁니다. 기존 하드웨어 제품을 만들던 방식을 플랫폼 사업으로 확장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가령 얼마 전, 자사 앱마켓인 삼성 앱스를 '삼성 갤럭시 앱스'로 개편했습니다. 삼성 제품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마켓인 점을 강조했는데, 중요한 건 기존 삼성 앱스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삼성에선 '디자인 변경이나 카테고리, 접근성을 개선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하는 데 왜 해당 마켓을 사용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갤럭시에 특화되었다는 점을 떠나서 하나의 구글 계정을 사용하는 사용자에게는 구글 플레이를 이용할 이유가 명확합니다. 그렇다고 구글 플레이와 차이가 두드러지는 애플리케이션을 독점적으로 갤럭시 앱스가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개편의 이유를 생각해보면 '구글이 어쨌든 삼성의 스마트폰이 가장 많이 팔리고 있으며, 이 점을 살린 플랫폼 사업을 일환으로 삼성 앱스를 삼성 갤럭시 앱스로 개편하고, 갤럭시 브랜드를 강조하여 삼성의 플랫폼을 강화한다.'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드로이드라는 판 위에 삼성의 작은 판이 올라간 형태에서 삼성만을 강조할 기회가 제공될 여지는 아주 희미합니다.
 
 


 정말 쉽게 설명하면 삼성은 분명 자체적인 하드웨어 생산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삼성이 가진 가장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사용자가 구글에 접근해야 할 이유는 명확하지만, 소비자들이 삼성의 하드웨어를 구매해야 할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삼성 제품이 가장 잘 팔리고 있음에도 꼭 삼성이어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 콘텐츠 산업에 접근하거나 타이젠 개발을 주도하는 등 시도한 건 맞습니다. 그런데 콘텐츠나 운영체제가 꼭 플랫폼을 형성하는 요소가 되진 않습니다. 반대로 말해서 그 요소로 플랫폼 사업에 성공한 업체들이 있다는 것이지, 삼성이 그 기반을 가진다고 해서 플랫폼 사업을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겁니다. 삼성 뮤직만 하더라도 2년 만에 철수해버렸으니까요. 타이젠도 웨어러블 제품에 시험적으로 탑재했지만, 스마트폰 출시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여기서 삼성의 플랫폼에 대한 접근법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성은 자기만의 강점이 뚜렷한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런 강점보단 다른 플랫폼으로 성공한 업체의 방식을 차용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하드웨어 라인을 늘리는 것처럼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라인만 늘린 것입니다. 플랫폼이라는 영역의 확장이 아니라 제품의 개수만 듬성듬성 늘렸다는 겁니다.
 
 삼성의 강점은 하드웨어이고, 강점을 플랫폼 사업에 적용하는, 그러니까 소비자가 삼성의 하드웨어를 구매해야 할 이유를 마련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사업이 필요했던 것이지, 삼성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건 의미가 플랫폼 측면에서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애초 고객들은 안드로이드 제품 중 삼성을 택한 것이지, 삼성 제품 중 안드로이드를 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이 안드로이드 기반의 독자적인 파이어 OS를 운용하는 것처럼 삼성이 갤럭시 OS를 들고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터치위즈를 그대로 적용하면 될 테고, 삼성 앱스를 통해 앱을 유통하고, 콘텐츠 업체와 제휴하여 발 빠르게 공급하고, 대신 여타 안드로이드 제품보다 나은 하드웨어 성능과 라인 확장을 보여줬다면 말입니다. 물론 그랬다면 삼성이 성공적이었을 것이라고 단정하진 않겠습니다. 가정이니까요.
 
 다만, 현재 삼성은 그런 시도를 해야만 하는 처지이고, 그래야만 악화한 상태를 벗어나 삼성의 장기적인 미래를 도모할 수단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 타이젠이 포함된 것이지만, 안드로이드가 확장하는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그 당시보다 덩치부터 차이가 심하게 납니다. 이제 와서 갑작스럽게 안드로이드를 전면 탈피하면서 하드웨어 강점을 내세우기에는 순식간에 떨어질 매출과 위기론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죠. 너무 커진 덩치에 걸맞지 않은 시도가 될 수 있으니 겁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과감하게 플랫폼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안드로이드에 묶여있는 상황만으로 문제가 있음을 이번 실적이 방증합니다.
 
 


 그간 삼성이 시장에 잘 대처한 것은 맞지만, 대처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내다보는 부분은 약했습니다. 무언가 중요하다고 해서 강화한다는 얘긴 꾸준히 해왔지만, 강화해야 할 것은 누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요소가 아니라 자신만의 플랫폼을 확고하게 할, 누군가에게 '이게 중요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삼성은 플랫폼을 계속해서 곱씹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계속 안드로이드와 함께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강점을 내세워 새로운 시장으로 꼽히는 웨어러블과 사물인터넷에서 특출난 역량을 보여 안드로이드를 잠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핵심을 플랫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