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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APPLE Geek Bible

애플 워치를 아이팟처럼 보라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이은 애플의 새로운 카테고리 '애플 워치'. 출시는 내년으로 잡혔지만, 9일 발표 이후 가장 말이 많은 제품입니다. 애플이 내놓은 신제품이기도 하지만, 새롭게 성장하는 스마트 워치 시장에 대한 회의감을 애플 워치가 풀어줄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애플 워치를 아이팟처럼 보라
 
 애플 워치가 측면의 용두를 활용한 조작법을 추가하고, 원형 아이콘을 엮어서 앱을 정리하며, 많은 디자인 옵션을 제공하지만, '왜 스마트 워치를 착용해야 하는지?'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제품인가 보기에는 전체 기능을 보면 여타 스마트 워치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제품이 아니라는 반응도 많습니다.
 
 


 필자는 앞서 '애플워치가 제시한 방향과 앞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는 글을 통해 애플 워치의 방향성을 얘기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기능들을 탑재한 시계입니다.'가 아니라 '시간을 보는 시계인데, 이런 기능들을 탑재했습니다.'라고 애플 워치를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차이인가 싶겠지만, '손목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어떤 방식으로 탑재한 시계를 만들 것인가'와 '크기나 디자인, 인터페이스, 다양한 옵션 등, 설계부터 시계를 중점으로 두고, 거기에 걸맞은 기능을 추려냈다'는 건 다릅니다. 전자는 시계 본연의 기능을 뒷전에 두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앞선 글에서 애플 워치와 함께 모토 360을 얘기한 겁니다.
 
 애플 워치는 제품 설명부터 시간 보는 것을 먼저 얘기합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을 알려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계'라고 말합니다. 여태껏 시계라는 걸 먼저 앞세운 스마트 워치는 없었습니다. 소비자조차 당연히 시계라는 걸 알고 있고, 대부분 '스마트 기능을 탑재한 시계입니다.'를 통해 기능을 비교하는 것이 선택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애플 워치는 기능을 뒷전이고, '이건 시계입니다.'를 연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뒤집어, '여태 시계를 어떻게 선택해왔는가?'를 돌이켜봐야 합니다. 필자는 지난해 3월, '애플 워치의 혁신은 기술 집약이 아니다'는 글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사람들이 시계를 구매하는 대부분 이유는 '패션'일 겁니다. 딱히 다른 이유를 찾기란 레저나 군인들에게서 가능하겠죠. 그런 이들조차 기능보다 디자인 요소에 따라 시계를 구매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시계 디자인은 매우 중요하고, 시간의 정확도에 대해 크게 신경 쓰는 대중은 흔치 않습니다. 그리고 크로노그래프나 그리니치 표준시 등 부가 기능이 붙어있어도 기능조차 디자인 일부로 판단하는 게 대중이라는 겁니다. 이런 심미적 부분을 넘어 째각 째각 소리에 기어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만족하는 것이 바로 시계 시장입니다. 사람들은 고급스러운 시계를 원하고, 거기서 기능적인 안정감보다 심미적 안정감을 얻길 원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집약하여 등장하면 기존 시계 시장을 뒤엎고 혁신을 이끌 수 있다? 매우 심한 비약이며, 그런 생각은 째각 거리는 소리보다 손목시계에서 흘러나올 시리 목소리에 흥분할 긱들 뿐입니다.'
 
 시계가 시간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 마땅하지만, 기존 시계든 스마트 워치든 기능으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없습니다. 물론 시간이 틀어지면 다시 조정하긴 하겠으나, 핵심은 나를 나타낼 수 있는 표시로서의 가치에 시계를 선택해왔다는 겁니다. 애플이 계속 애플 워치가 기존 시계와 다를바 없음을 강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기능은 그다음이죠.
 
 '그럼 애플 워치는 기존 시계처럼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인가?'
 
 그렇진 않습니다. 반드시 아이폰을 사용해야 하고, 가격은 기능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해야 합니다. 그럼 시계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퇴색될만하며, 기존 시계와 비교할 여지를 주지 않기도 합니다. 적어도 애플이 그걸 범위에 두지 않고, 시계를 강조하진 않았을 거라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설계부터 시계에 중점을 두지 않았을 테니까요. 여타 스마트 워치와 다를 바 없었겠죠.
 
 


 2001년, 애플은 1세대 아이팟을 출시합니다. 잠시 현재로 와서 아이팟이 어떤 평가를 받는 제품인지 봅시다.
 
 'MP3 플레이어의 또 다른 말', '그저 음악을 재생하는 기계가 아닌 패션 아이템'
 
 그런데 1세대 출시 당시에는 그냥 용량 큰 MP3 플레이어였습니다. 디자인이 주목받기도 했지만, USB가 아닌 파이어와이어를 사용하며, 윈도를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맥에 파이어와이어가 기본 탑재되어 있었으니 상관없긴 했지만, 어쨌든 맥 사용자가 아니라면 아이팟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단일 제품으로 평가받기보단 그냥 맥에 딸린 액세서리였죠. 윈도를 지원하기 시작한 건 2003년부터지만, USB 2.0을 지원한 건 2004년부터였습니다.
 
 그리고 2004년, 기본 아이팟 모델과 아이팟 미니, U2 에디션, 아이팟 포토로 라인을 크게 늘렸습니다. 1년 마다 단일 제품으로 출시하던 것이 한 해 4가지 모델을 내세우게 된 겁니다. 아이팟은 이 시기에 온갖 패션쇼 무대에 올라섰으며, 루이비통, 구찌 등 브랜드에선 아이팟을 위한 케이스를 쏟아냈습니다. 아이팟이 패션 유행을 선도하니 같은 말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아이팟은 MP3 플레이어지만, 사용자의 개성을 나타내는 제품이 됩니다.
 
 어떤 모델을 쓰는가, 어떤 색상인가, 어떤 케이스를 쓰는가, 어떻게 휴대하는가. 음악을 재생한다는 기본 기능을 넘어서 사용자의 성향을 판단할 수 있는 일종의 코드였습니다. 출시 이후 누적 판매량만 3억여대, 기능이 어떻고, 무엇을 지원하는가 하는 얘기보다 훨씬 주목하는 부분이었으며, 아이팟을 통한 개성, 그리고 음악을 재생하는 제품으로서 결정하는 소비자가 더 많았습니다. 2001~2003년 사이의 아이팟과 달랐습니다. 그만큼 옵션이 늘어난 상황이었고, 그게 현재 아이팟을 바라보는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애플 워치로 돌아옵시다. 애플 워치는 시작부터 6가지 시곗줄, 15가지 색상을 제공하며, 스포츠 라인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애플 워치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CEO인 팀 쿡은 애플 워치가 '애플이 출시한 제품 중 가장 개인적인 기기'라고 소개했습니다. 서드파티 액세서리와의 조화를 통해 훨씬 풍부한 개성을 표현할 수 있었던 아이팟과 달리, 애플 워치는 애플이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개성을 표현할 수 있고, 센서를 통한 인증으로 개인화하여 웨어러블의 특징을 살린 개인적인 기기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본래 시계가 그런 물건입니다. 소비자들이 6세대 아이팟을 왜 손목에 착용하고 다녔을까요?
 
 애플 워치는 시계이며,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옵션을 제공하고, 기능은 덤인 제품입니다.
 
 


 애플 워치의 방향이 이렇다면, 애플은 사용자들이 자신의 개성을 더 표현할 수 있는 쪽으로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더욱 캐주얼한 모델이나 원형 제품, 훨씬 다양한 시곗줄을 기대해볼 수 있겠죠. 다른 플랫폼을 지원할 가능성은 적지만, 독립해서 작동하거나 클라우드를 통해 정보를 받을 수 있는 모델도 여지가 있습니다. 아이폰은 없지만, 구매하려는 수요를 받아들여야 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팟은 어느 MP3 플레이어보다 개인적인 제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애플 워치는 본래 개인적인 시계입니다. 그 관계를 애플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애플 워치를 좀 더 동향에 맞춰 볼 수 있어야 하고, 가장 쉬운 방법이 아이팟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이팟의 성공을 '윈도 지원, USB 지원, 음질' 등의 기술 요소로 판단하려는 이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배터리, 포맷 지원, 사용자 이퀄라이저 부재, 아이튠즈 의무 등의 기술 요소로 비판받았던 걸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순 없고, 아이팟은 여전히 70%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애플 워치에서도 기술 요소는 중요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존 시계처럼 구매하기에는 그렇지 못한, 반드시 아이폰이 필요한 제품이므로 아이폰 외 사용자에게 매력적일 순 없겠죠. 대신 아이팟이 맥의 액세서리였던 것처럼, 그리고 시작부터 개성을 더할 수 있는 조건도 갖춘 애플 워치는 아이폰 사용자에게 매력적인 제품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이것이 당장 애플이 노리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