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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APPLE Geek Bible

애플, "용도에 맞게!"


 물건의 용도를 누군가 정해주진 않습니다. 적합하게 디자인을 하지만, 어떤 용도로도 사용할 수가 있죠. 예를 들면 칫솔을 양치질을 위해 고안되었지만, 틈을 청소할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넓게 생각하면 아이폰으로 못을 박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이런 것을 기행이라 생각하며, 못질을 위해 디자인한 망치를 놔두고 아이폰을 쓰려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애플, "용도에 맞게!"
 
 필자가 말하고 싶은 건 '아이폰으로 못을 박으면 기행이다.'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제품이든 누군가 용도를 명확하게 결정하긴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령 아이패드가 등장한 시점에서 태블릿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스마트폰을 놔두고, 더 커다랗고 무거운 기기로 사진을 촬영하고자 하는 건 용도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죠. 사실 돌이켜보면 용도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어색했을 뿐이고, 태블릿의 카메라를 이용할 방법이 늘어나면서 태블릿으로 사진을 촬영한다는 건 매끄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애플은 10월 스페셜 이벤트에서 흥미로운 사진을 내걸었습니다. 아이맥부터 차례대로 맥북, 아이패드, 아이폰, 애플 워치로 제품을 벌여놓은 것입니다. 해당 이미지가 '우리 제품들은 다 날씬해요.'라는 걸 얘기하기 위함은 아닐 겁니다.
 
 처음 아이패드가 등장했을 때, 스티브 잡스는 소파에 앉아 아이패드를 시연했습니다. 아이패드를 그런 용도로 디자인한 것이었죠. '아이폰보다 큰 화면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제품 의미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아이패드를 휴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확실히 필자도 그렇습니다. 태블릿을 휴대합니다. 필자는 처음 아이패드가 등장했을 때 '외출에는 아이폰, 집에서는 아이패드'라고 기대했었지만, 구매한 직후부터 외출에 휴대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기대했던 아이패드의 용도가 확장한 겁니다.
 
 분명 집에서만 태블릿을 사용하는 이도 있겠지만, 꼭 그렇진 않았던 것이고, 이는 아이패드의 용도에 변화를 줘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용도의 변화는 태블릿 시장을 바꿔 놓았습니다. 애플은 더 얇은 아이패드를 출시했지만, 휴대에서 만족감을 높이긴 힘들었습니다. 대신 크기가 7인치 수준인 태블릿이 성장했고, 애플도 휴대성을 충족하기 위해 아이패드 미니를 출시합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태블릿을 휴대하여 사용자고자 하는 소비자가 대상이었습니다.
 
 아이패드 미니는 휴대성에서 강점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품의 용도는 더욱 세부적으로 쪼개져 5인치 이상의 패블릿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더는 패블릿이라는 용어에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스마트폰이고, 스마트폰의 용도가 7인치 태블릿으로 넘어갈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이는 17인치 랩탑이 줄어든 이유와 비슷합니다. 랩탑에서 17인치 제품은 휴대성을 가지고 커질 수 있는 거의 마지막 크기입니다. (20인치 노트북도 존재했었지만...) 과거에는 랩탑이 휴대는 전반적으로 무거웠고, 어차피 무거운 제품이라면 큰 화면을 채용하는 것이 작업 효율을 올릴 수 있었기에 17인치 제품도 꽤 많았습니다. 무게보다는 휴대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죠. 그러나 울트라북이 보편화하면서 랩탑의 휴대성이 크게 부각될 수 있었고, 크기에서 나오는 휴대성의 차이는 벌어졌습니다. 무게보다 부피가 중요해졌으니까요.
 
 휴대성이 강조되면서 태블릿을 함께 들고 다닐 필요가 줄어들면서 아이패드 미니의 용도는 아주 애매해졌습니다. 되레 휴대성을 방해하는 제품이 돼버렸고, 애플은 제품들의 용도를 다시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폰 6 플러스를 출시했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합친 패블릿이 끝내 승리했다.'라고 표현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것보단 '태블릿에서 휴대성을 찾기 어려워졌고, 태블릿에서 휴대성을 찾던 소비자가 스마트폰 화면이 커지자 옮겨간 것.'이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 비슷한 표현인 것 같지만, 태블릿의 용도가 스마트폰으로 넘어간 게 아니라 태블릿의 용도에 대해 소비자들이 제대로 모르고 있으며, 이는 애플도 마찬가지이고, 기존 스마트폰보다 큰 화면과 휴대성이라는 요소만이 7인치의 태블릿이 아닌 5인치 이상의 스마트폰으로 옮기게 했다는 겁니다.
 
 그 점에서 애플의 아이폰 6 플러스와 새로운 아이패드 제품군은 이전과는 다른 제품의 용도에 대한 애플의 새로운 시도입니다. 되돌아가면 아이패드 미니도 그랬지만, 태블릿 제품 간의 용도 전환보다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경계를 뚜렷하게 두려는 모습이 강합니다.
 
 필자가 '아이패드 미니 3, 기업 시장이 전지'라는 글에서 얘기했지만, 3세대 아이패드 미니는 일반 소비자 시장에 어울리지 않는 제품입니다. 어울리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사양이 터치 ID를 제외하면, 기존 2세대와 같으면서 가격에서 기대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이는 일반 소비자 시장보다 기업이나 교육 시장 등 엔터프라이즈 시장에 어울립니다. 팀 쿡도 태블릿이 아직 포화 시장이 아니며,  엔터프라이즈 쪽에 기대한다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패드 에어는 기존 태블릿의 포지셔닝을 유지했는데, 2세대 제품이 더 얇아지고, 가벼워졌지만, 아이패드 미니를 일반 소비자 시장에 주력하지 않는다는 건 아이패드 제품군에 아이폰의 휴대성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미키도 합니다. 잡스가 소파에 앉았을 때의 아이패드로 돌아간 것 같으나 그것보단 휴대성을 극대화하지 않지만, 태블릿 특유의 생산성과 엔터테인먼트를 끌어올릴 수 있는 쪽에 무게를 뒀습니다. 랩탑보다 가방에 넣고 다니기 편하고, 증강현실이나 스캔 앱 등은 아이폰보다 큰 화면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아이패드 에어 2의 새로운 카메라를 강조한 것도 단지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을 얘기하기 위한 건 아니었죠.
 
 그리고 양손을 커진 아이폰에서 자유롭게 하도록 애플 워치가 등장했습니다. 아이폰 6는 여전히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수준이고, 아이폰 6 플러스는 주머니보단 가방이 어울립니다. 어느 쪽이든 애플 워치는 양손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양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스마트폰과 태블릿 사이의 경계가 좁아집니다.
 
 이것이 '모든 애플 제품을 사용해야 용도에 대처할 수 있어!'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나름 제품들의 용도를 분류하여 사용자의 용도에 대한 선택을 제어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이폰을 단일 제품으로 사용하는 사용자도 있겠지만, 큰 화면의 경험을 원한다면 아이패드 에어 2가 있고, 이는 아이폰 6 플러스 사용자여도 포지셔닝이 근접해 있지 않습니다. 매우 쉬운 선택지죠. 반대로 아이폰의 크기, 특히 아이폰 6 플러스로 하여금 발생하는 양손 사용에 양손 자유를 위한 경험이 필요하다면 애플 워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용도에 맞춰 선택지를 분류해 놓았기에 본인이 생각하는 용도에 적합한 기기를 선택하기 편합니다.
 
 그런데 이는 필자가 앞서 얘기했던 것과 상반되는 겁니다. '애플도 태블릿의 용도를 모르고 있다.'고 했으며, 더 앞에는 '누군가 제품의 용도를 명확히 결정하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애플은 용도에 적합한 기기를 나열하고 있다?
 
 아이폰으로도 충분히 못을 박을 수 있지만, 더 적합한 망치를 구매하여 못질하는 것처럼 아이패드의 용도를 재편했고, 재편하기 위해 아이폰의 크기는 두 가지가 되었으며, 애플 워치도 구분해놓았습니다. 망치를 구매한 소비자가 못질에 사용할지, 얼음을 깨기 위해 사용할지는 판매자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지만, 못질을 위한 망치와 얼음을 깨는 망치의 모양이 다르다는 걸 생각해보면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포지셔닝을 밀접하게 한 것이 아이패드의 용도를 더욱 명확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아이패드 사용자가 어떤 사용자인지 분류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못질을 위한 망치로도 얼음을 깰 수 있고, 얼음을 깨는 망치로도 못질을 할 순 있지만, 두 가지를 분리해서 판매하고, 구매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꼭 그렇지 않은 사용자도 있음을 인식한다는 걸 아이폰 6 플러스가 방증합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그렇다고 용도를 완전히 '이것이다!'라고 단정하지 못한 애플입니다. 그렇기에 아이패드의 포지셔닝은 다시 바뀌었고, 애플은 그것이 용도라고 줄곧 말하고 있습니다. 단지 이전보다 세밀하게 용도에 접근했다는 게 보일 뿐이죠. 중요한 건 해마다 조금씩 이동한 제품들의 포지셔닝이고, 애플은 각 제품의 용도를 꼭 구분하려고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 8으로 PC와 태블릿을 합치려 하거나 삼성이 갤럭시 노트가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합친 것이라며, '용도 구분 없이 한 가지를 쓰세요!'라고 말한 것과 달리 '이 제품은 이런 용도이므로 이래야 하고, 이렇게 써야 합니다.'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약 소비자가 제품의 용도와 다른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일부 미세하게 조정하여 포지셔닝을 확장하거나 이동하는 행보를 꾸준히 보였고, 그럼 '이 제품의 용도는 이렇다.'고 다시 말해왔습니다.
 
 아이폰 6 플러스만 하더라도 태블릿과 합쳤다는 쪽으로 설명하지 않으며, '아이폰이 커졌고, 커진 걸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를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애플이 아이패드의 용도를 명확히 모르면서도 용도를 구분하여 말하려는 이유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명확해지도록 계속 제품의 본질과 용도에 계속 접근하는 것이죠. 모르기에 용도에 집착하고, 집착한 것으로 명확한 쪽으로 다가가는 겁니다.
 
 그 점을 10월 이벤트의 사진 한 장이 말하고 있습니다.
 
 


 애플의 제품 중 용도에 집중하여 명확히 한 제품은 있습니다. 맥입니다.
 
 10월 이벤트가 끝난 후 씨넷은 소프트웨어 총괄의 크레이그 페더리기와 인터뷰를 했고, 그는 '맥에 터치스크린을 탑재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데스크톱 운영체제에 터치스크린을 탑재하는 건 좋은 인터페이스가 아니다.'라면서 '애플은 트랙 패드에 집중했고, 그런 제품에 관심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애플이 맥북에 터치스크린 탑재를 실험하고 있었다는 건 유명한 소문이지만, 용도에 집착한 나머지, 실제로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윈도 8이 그걸 시도했을 때 결과는 참혹했고, 이로써 맥의 용도는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페더리기가 단언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애플은 꾸준히 "용도에 맞게!"를 외칠 겁니다. 새로운 아이폰과 아이패드, 그리고 애플 워치가 제품의 본질과 용도에 얼마나 접근했는지, 그것이 명확한 것임을 증명할 수 있을지 기대해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