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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T일반

HP, 완전한 하드웨어 회사로 돌아오다


 제목을 보고 '원래 하드웨어 회사가 아니었나?' 싶겠지만, 꽤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PC 제조사로 명성을 떨치더니 모바일 대응에 실패하여 참담한 실적을 거두고, PC 시장 축소로 판매량까지 떨어지면서 1위였던 PC 출하량도 레노버에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HP는 두 개 회사로 분사했죠. 물론 본문은 분리한 PC 및 프린터 부문 얘기입니다.
 


HP, 완전한 하드웨어 회사로 돌아오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HP가 분사를 결정했을 때 HP가 PC 시장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엔터프라이즈 부문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실적을 떨어뜨리는 PC 및 프린터 사업의 규모를 줄일 필요가 있었고, 그 탓으로 분사했다는 것이었죠. 그렇다고 PC 부문이 살아남을 방도를 찾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HP가 PC 시장을 포기한 것이라 필자가 얘기한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먼저 PC 실적이 감소하여 적자가 예상되었고, 프린터는 계속 적자였죠. 두 번째는 EMC와의 합병 논의였는데, 합병하더라도 EMC가 PC 부문을 운영할 여지가 전혀 없기에 엔터프라이즈 부문을 나누어 합병 논의를 진행하고, PC 사업부는 따로 떼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은 어려운 PC 시장에서 기민하게 움직이기 위해 몸집을 줄이면서 엔터프라이즈 부문과 별개 회사로서 대응한다는 겁니다.
 
 필자는 HP 분사 전에 'HP, 스트림 11이 구원투수가 될 수 없는 이유'라는 글을 통해서 '스트림 11은 HP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그냥 저렴한 제품'이며, 'HP만의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엔터프라이즈 신뢰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스트림 11은 199달러의 저가 윈도 랩톱으로 인텔 셀러론 프로세서, 2GB 메모리, 32GB 저장공간을 제공하는 제품입니다. 그리고 필자가 스트림 11이 구원투수가 될 수 없는 건 HP의 덩치를 유지하기에 심각하게 단기적인 전략 제품이고, 장기적으로는 엔터프라이즈를 노릴 수 있는 쪽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HP는 엔터프라이즈와 PC를 분리했습니다. 즉, 엔터프라이즈 대응은 별도로 진행하고, PC 사업은 기존보다 몸집을 줄인 상태로 시장에 대응하여 그나마 생존하는 방법을 택한 겁니다. 덕분에 스트림 11은 분사한 시점에서 구원투수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력으로 해야 할 엔터프라이즈 시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PC 시장 동향에 대응할 수 있는 회사로 떼어놓았으니까요.
 
 


 HP는 스트림 랩톱 시리즈의 뒤를 이어 180달러의 '스트림 미니'라는 미니PC를 출시했습니다. 인텔 셀러론 프로세서, 2GB 메모리, 32GB의 저장 공간으로 스트림 11과 비슷한 사양이며, 기가비트 이더넷과 4개의 USB 3.0 포트, HDMI 1.4 포트 등 확장성도 강조했습니다.
 
 또한, 스트림 시리즈뿐만 아니라 파빌리온 브랜드를 통해 다른 미니 PC인 '파빌리온 미니'도 선보였습니다. 펜티엄 프로세서와 4GB 메모리, 500GB HDD를 제공하여 가격은 319달러입니다.
 
 강력한 성능의 모델도 아닌 작은 크기의 PC 출시가 뭐가 중요한가 싶지만, 사실 스트림 미니와 파빌리온 미니는 HP의 주력 상품 포지셔닝입니다. 최근 국내 PC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미니 PC가 굉장히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외국 시장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미니 PC에 주목했었습니다. 이전보다 부품이 작아진 탓도 있지만, 구글이 주도하는 크롬의 데스크톱 형태인 크롬박스가 낮은 가격으로 접근하면서 비슷한 윈도 PC를 원한 수요가 몰려 각광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올해는 출하량이 따로 집계될 것으로 기대할 만큼 미니 PC 시장은 주목을 받는데, 윈도 PC 전체에 저가 전략을 내세우는 MS의 움직임을 잘 반영한 제품이 스트림 미니와 파빌리온 미니입니다. 그리고 랩톱에서는 스트림 11을 선두에 세웠죠.
 
 재미있는 건 HP는 비슷한 가격과 성능의 크롬북과 크롬박스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난해 급성장한 크롬과 주목받은 미니 PC, 그리고 레노버 등의 업체와 경쟁하기 위한 저가 랩톱까지 현재 PC 동향에 따른 맞춤 전략은 모두 꺼내놓은 거죠.
 
 기존 엔터프라이즈 부문과 엮어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전략을 나름대로 구축하고자 했던 HP는 분사한 후 사라졌고, 구글과 MS의 플랫폼, 그리고 전략에 맞춰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점에서 하드웨어에 모든 걸 집중한 완전한 하드웨어 회사로 돌아온 것입니다.
 
 


 HP는 그 밖에 3D 프린터 시장에 눈독 들이는 등 신규 산업에도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대신 덩치가 컸을 때처럼 사업 방향을 여러 갈래로 잡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몇 가지 집중할 부분에 집중하면서 하드웨어 플랫폼을 형성할 수 있도록 내디뎠습니다.
 
 필자는 이 점이 HP가 당장 성장하기에 좋은 방법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물론 엔터프라이즈 집중하기 위해서 PC 시장을 내쳤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그만큼 집중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기에 앞으로 HP의 PC 전략은 기존과 다르게 기대해볼 만 합니다.
 
 HP의 지위를 앗아간 레노버 등과의 싸움에서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