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삼성전자가 블랙베리를 인수할 것이라는 로이터의 보도로 블랙베리의 향방에 이목이 쏠렸습니다. 필자는 '삼성이 블랙베리를 인수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한 바 있고, 블랙베리가 경쟁력을 다지기에 시간이 부족했던 탓에 확고한 시너지를 낸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블랙베리를 탐내는 이유
블랙베리는 지난 23일,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수익성이 높은 사업 모델에 집중하려는 방안으로 소프트웨어 사업이 탄력을 받자 하드웨어 부문 인력을 줄이기 위함입니다. 그렇다고 하드웨어 사업을 접는 것 아니지만, 블랙베리의 체제가 소프트웨어로 많이 넘어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블랙베리가 다시 매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앞서 블랙베리 인수를 실패한 레노버를 비롯하여 샤오미와 화웨이가 블랙베리에 눈독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중국 업체들이 경쟁하는 인수전에 마이크로소프트도 뛰어들었다고 폰아레나는 전했습니다.
블랙베리가 직접 매각 의사를 밝히진 않았으나 상기한 업체들이 블랙베리에 인수 의향을 전했다고 알려진 것이 전부이지만, 구조조정과 소프트웨어 사업 전환을 고려하면 블랙베리를 매각할 가능성은 꽤 큽니다.
먼저 CEO인 존 첸은 블랙베리 매각 의사가 없다고 밝혔으나 그건 블랙베리가 매각되었을 때 특허와 기술을 제외하고는 공중분해 될 수 있었던 탓입니다. 실제 수익성이 떨어진 블랙베리를 레노버는 10억 달러에 인수하고자 했으며, 그것은 모토로라를 인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미와 유럽 스마트폰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성사되었다면 블랙베리라는 껍데기만 존재하게 될 뻔했죠.
하지만 첸이 CEO에 오른 후 블랙베리는 빠르게 수익성 있는 사업 모델들을 제시했고, 스마트폰 판매가 매우 좋은 성과를 내진 못 했으나 블랙베리 특유의 보안성을 필두로 회사에 가치가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구조조정 여파도 있었지만, 지난 1분기에는 흑자를 내기도 했죠.
블랙베리의 특허가 아닌 사업에 탐을 낸다면 매각 의사는 달라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 지점에서 등장한 게 MS입니다. 중국 업체 3곳이 껴있지만, 레노버가 인수에 실패했던 게 캐나다 정부의 보안 규제에 따른 것임을 고려하면 의견이 맞더라도 이번에도 중국 업체에 허가를 내진 않을 것입니다. 그럼 가장 인수 가능성이 큰 곳이 MS라고 할 수 있죠.
일각에서는 MS가 이미 노키아를 가지고 있기에 블랙베리는 제조 기반을 다지려는 것보다 특허를 노린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러나 특허만 보고 블랙베리를 노리기에는 노키아라는 카드를 쥔 MS가 무리해서 인수할 가치가 블랙베리에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좀 더 다른 이유를 봐야 합니다.
비즈니스위크는 지난 1월 삼성이 블랙베리를 인수하려 한다는 보도에 '특허와 뛰어난 보안 기술이 이유다.'라면서 '삼성이 블랙베리를 인수하면 구글과 MS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실제 인수가 이뤄지지 않았으나 블랙베리의 보안 기술만 놓더라도 경쟁 업체에 위협적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MS가 블랙베리를 인수하려는 이유가 간단해지죠.
단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MS가 현재 처한 상황에 블랙베리가 작년부터 집중한 소프트웨어 사업은 궁합이 좋습니다. MS는 모바일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노키아를 인수했으나 뭔가 보여준 것은 없습니다. 또한, 윈도 10의 출시를 앞두었기에 모바일과 통합하리라고는 말하지만, 막상 조명받는 건 PC가 되었기에 윈도 10만으로 모바일 사업을 살려내긴 역부족입니다.
애초에 MS가 모바일을 살리려면 일반 소비자 시장을 노리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파고들 틈이 거의 없으니까요. 그럼 노려볼 수 있는 쪽은 엔터프라이즈 시장인데, 그조차 구글은 기업용으로 제작한 '안드로이드 포 워크(Android for Work)'를 출시하여 대응하며, 애플은 IBM과 손을 잡았습니다. 삼성도 보안 솔루션인 녹스(Knox)를 토대로 엔터프라이즈 시장에 자사 단말기를 납품하고 있죠.
MS가 모바일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엔터프라이즈 시장까지 잠식당한다면 모바일 회생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블랙베리가 취하려 했던 전략은 MS의 고민과 들어맞습니다. 블랙베리는 소프트웨어를 강화하고, 안드로이드와 iOS용 앱을 제공하면서 기업 시장에서 블랙베리가 우수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자사 하드웨어를 대량 공급할 수 있는 활로를 열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소프트웨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만큼 다음 단계인 하드웨어에 기대를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니 하드웨어 사업을 접으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하드웨어를 적극적으로 출시하지 않아도 될 새로운 방아쇠를 블랙베리는 찾았습니다. 블랙베리는 삼성과 제휴하여 녹스에 블랙베리 기술을 통합하기로 했으며, 삼성과 IBM의 맞잡은 손에 가세하면서 보안에 특화한 태블릿을 개발했습니다. 자사 소프트웨어를 다른 제조사에 제공하여 충분히 이익을 볼 수 있게 되자 하드웨어 부문 지출을 줄이려는 게 이번 구조조정의 의의인 겁니다.
MS는 이런 블랙베리의 전략을 인수로 당겨올 수 있다면 자사 하드웨어 판매와 윈도 10의 모바일 시장 견인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 모양입니다. 적어도 모바일 시장은 MS가 새로운 윈도만으로 대응할 수 없는 곳이 되었으며, 모바일에 엔터프라이즈 시장을 빼앗기는 만큼 타사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보급도 늘어나기에 MS의 입지 자체가 흔들립니다.
이것이 MS가 블랙베리를 탐내는 이유인 거죠.
인수가 빠른 진척을 보이거나 구체적인 전달 사항이 공개된 건 아니기에 무조건 긍정적인 일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둘의 상황을 겹쳐서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인수합병이 될 수 있고, MS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블랙베리에도 나쁘지 않은 제안인데, 블랙베리가 매각에서 고민할 건 현재 제휴 상황이 장기적이라면 MS의 모바일 사업은 도박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 블랙베리 이사회는 매각보다는 구조조정으로 회사 규모를 줄이고, 이익을 낼 수 있는 사업에 전념하는 쪽이 더 낫다는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MS가 완고한 블랙베리의 마음을 돌릴 만큼 공격적으로 인수에 나선다면 MS의 모바일 상황이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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