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애플이 백투더맥(Back to the Mac)을 걸고 나왔을 때부터 OS X과 iOS의 최고 화두는 통합이었습니다. iOS의 요소를 OS X으로 옮기고, OS X의 요소를 iOS로 옮기면서 서서히 통합되리라는 거였죠. 단지 이것이 하드웨어의 통합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 멀티 터치 제스처, 앱스토어, 앱 홈 스크린 등의 요소들을 OS X을 탑재한 하드웨어에 맞게끔 디자인하는 통합이었습니다.
팀 쿡, 'OS X과 iOS를 통합하진 않을 것'
전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아이패드에서 다시 맥으로 돌아갈 지점으로 설명했고, 맥북에 터치스크린을 탑재할 수는 없지만, 매직 마우스와 매직 트랙패드로 멀티 터치 제스처를 옮기는 걸 예로 들었습니다. 그게 백투더맥이었죠. 그런데 애플이 새롭게 출시한 '아이패드 프로(iPad Pro)'는 그걸 뒤집어 놓았습니다.
많은 이가 대체로 아이패드 프로와 곁들일 애플 펜슬을 두고, 잡스의 고집을 꺾었다고 말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아이패드 프로라는 제품의 개념에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백투더아이패드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존 OS X과 iOS를 통합하려는 애플의 움직임과 다르게 그 과정에서 제품의 성격까지 바꿔버린 건 아이패드 프로가 처음입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 iOS로 동작하는데, 본디 애플은 맥을 생산성으로, 아이패드를 미디어에 중점을 둔 제품으로 구분했습니다.
물론 아이패드만의 생산성은 있습니다. 그래서 되레 애플 펜슬을 그런 생산성을 가꾸는 존재라고 볼 수 있지만, 핵심은 아이패드가 좀 더 맥북 라인에 가까워졌다는 거죠. 아이패드와 관련한 뜬소문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기대는 터치스크린으로 작동하는 OS X을 탑재한 제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iOS를 탑재하여 맥의 다른 라인이 아니라 맥북과 아이폰의 중간 제품으로 설명하면서 보조 제품으로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인데, 아이패드 프로는 용도에 따라서 맥북과 겹칠 수 있는 포지셔닝인 겁니다.
덕분에 아이패드 프로는 맥, 아이패드, 아이폰으로 잡힌 균형에 생긴 변화이고, 백투더맥에서 이어진 OS X과 iOS의 통합이 크게 나아간 제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UX킷으로 OS X과 iOS 앱 개발 환경을 통일하는 것이나 과거 ARM 기반 맥북 뜬소문 등도 이와 연결할 수 있기에 비록 아이패드 프로가 여전히 iOS를 탑재한 상태지만, 앞으로 더욱 통합적인 환경에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애플의 CEO 팀 쿡은 지난 3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박스가 개최한 박스웍스(BoxWorks) 컨퍼런스에 참석하여 애런 레비(Aaron Levie)와의 대담에서 이와 관련한 중요한 발언을 했습니다.
쿡은 OS X과 iOS의 통합과 관련해서 애플 제품들 사이에 핸드오프(Handoff), 에어드롭(AirDrop), 아이클라우드(iCloud) 등으로 연결성은 긴밀해졌으나 '기기들의 혼합이 OS X과 iOS의 혼합을 의미하진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기기들의 접점, 아이패드 프로에서 보여줬듯이 맥북의 영역에 아이패드가 침범할 수는 있으나 iOS는 iOS로 남는다는 의미입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아이패드에 OS X을 탑재할 일은 없으며, iOS가 OS X으로 들어갈 일도 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연결성으로 기기 간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겹치는 포지셔닝의 제품 중 한 가지는 도태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습니다. 가령 아이패드 프로는 맥북 프로 라인과 견주긴 어려우나 맥북 에어와 12인치 맥북과는 비교할 만 합니다. 소비자가 생산성에 맞춰서 한쪽을 선택하는 게 가능한 데, 아이패드 프로가 생산성을 강조하고자 지금보다 더욱 생산성에 초점을 둔 인터페이스와 기술을 채용해간다면 맥북 에어와 12인치 맥북을 밀어낼 상황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는 OS X이 일정 부분 iOS에 밀렸다고 해석해야겠죠. 물론 iOS의 뿌리는 OS X이지만, 판매 차별성에서 iOS가 OS X을 밀어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통합하지 않더라도 단일화할 여지를 남기는 것이니까요.
애플의 의도는 이해가 됩니다. 애플은 제품들이 적재적소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걸 뚜렷하게 주장했고, 그것을 애플이라는 생태계로 구축하여 소비자가 다양한 애플 기기를 연결성으로 통합하여 이용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러므로 OS X(Mobility)과 모빌리티에 특화한 iOS를 분리해두려는 의도 말입니다.
여기서 필자는 몇 가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앨런 케이(Alan Kay)는 객체 지향과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이반 서덜랜드(Ivan Sutherland)와 함께 컴퓨터 그래픽의 개념을 제시한 스케치패드를 개발하면서 GUI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이후 제록스 파크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런 그의 특별한 업적 중 하나는 교육에 활용하기 위한 미디어 중심의 컴퓨터인 '다이나북(DynaBook)'을 고안했다는 것으로 현재 태블릿의 원형을 간직한 기기입니다.
재미있는 건 케이가 다이나북을 처음 구상한 때가 1968년이었으며, 1982년 스티브 잡스는 한 강연에서 '애플의 전략은 당신이 20분 만에 사용법을 익힐 수 있는 컴퓨터와 그 엄청나게 훌륭한 컴퓨터를 책만한 크기에 담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고로 시기로 보자면 다이나북의 고안이 먼저라는 걸 알 수 있고, 사실 잡스는 케이에게 매우 큰 영향을 받았죠. GUI뿐만 아니라 객체 지향 언어에 집착하게 된 원인이었고, 케이가 개발한 프로그래밍 언어인 스몰토크(Smalltalk)의 후손인 오브젝트 C(Objective C)를 근간으로 OS X에서 iOS까지 이어졌으니까요. (아이폰 발표 당시에도 케이를 언급했습니다.)
다이나북이 실제 제품으로 등장했던 건 아니기에 애플이 아이패드로 다이바북을 재현했다고 할 수도 있는데, 중요한 건 1984년부터 케이가 애플의 연구 개발 부서에서 특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는 겁니다. 잡스는 1년 후 애플에서 쫓겨났으나 다이나북과 아이패드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 또한, 다이나북이 애초에 기업을 겨냥한 제품이 아닌 교육과 미디어 소비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실상 아이패드가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OS X이 아닌 iOS를 개발하게 하고, 탑재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으며, 본래 아이패드가 소파에서 살용할 법한 제품으로 소개된 근본입니다.
단지 필자가 말하려는 건 운영체제의 분리가 요점이 아니라 다이나북에서 아이패드로 이어졌던, 아이폰으로 먼저 발현된 것 뒤로 아이패드 프로라는 제품의 개념은 iOS와 아이패드에서 일체화한, 그러니까 다이나북의 원형을 버린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겁니다. 즉, 백투더아이패드가 되어서 iOS가 OS X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iOS가 독자적으로 확장할 가능성에 매우 무게를 두는 방향입니다.
그건 운영체제의 포지셔닝과는 상관없이 제품이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쿡의 'OS X과 iOS를 통합하지 않겠다.'라는 발언은 모빌리티에서 iOS의 영역이 훨씬 넓어지는 것과 그런데도 지금의 자리를 유지할 OS X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상기한 것처럼 통합이 운영체제를 합치는 것이 아니라 모빌리티를 중점으로 제품을 확대하는 방안이 플랫폼 차원에서 이뤄지리라는 증명입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미 애플 워치나 애플 TV처럼 iOS가 기반이 된 다른 기기들을 금방 떠올릴 것입니다. '그 쉬운 걸 왜 이렇게 길게 돌려서 얘기하나?' 싶겠지만, 박스웍스에서 레비가 쿡에게 '그럼 애플의 비행기도 만날 수 있는가?'라고 묻자 쿡은 '결국에는 애플 비행기도 있어야겠지만, 그걸 목표로 밀고 나갈 단계는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가벼운 농담인 대답에서 건져야 하는 건 이미 애플은 카플레이(CarPlay)라는 커넥티드 자동차 기술을 제공하고 있으며, 자체적인 전기차 프로젝트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만약 비행기를 만든다면 무엇을 기반으로 하겠냐는 겁니다. 물론 진짜 비행기를 만들진 않겠지만, 카플레이는 iOS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거기서 적어도 우리는 이미 진행 중인 전기차 프로젝트에서도 iOS를 떠올릴 것입니다. 비행기도 마찬가지죠.
앞서 iOS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되새기면 iOS의 영역 확대가 애플 워치든 애플 TV든, 앞으로 전기차든 비행기든 뭐든, 애플 플랫폼에서 가지는 가치가 대단하며, 그것이 OS X과 묶어서 사용 영역을 구분하기만 하는 게 아닌 꽤 큰 희망을 품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와 다를 바 없다고 넘겨도 되겠지만, OS X과 iOS의 통합이라는 플랫폼 과제에 대한 대답으로 본다면 애플의 운영체제 전략을 더욱 명확하게 내다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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