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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APPLE Geek Bible

'애플 공장을 미국으로 옮겨라!'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도널드 트럼프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내뱉는 허무맹랑하거나 말도 안 되는 주장은 연일 뉴스거리가 되니 말입니다. 덕분에 그가 하는 어떤 얘기든 쉽게 받아들이긴 어렵습니다.
 


'애플 공장을 미국으로 옮겨라!'
 
 지난 18일, 리버티 대학교에서 열린 연설의 마지막에 트럼프는 애플을 겨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플의 망할 컴퓨터들을 미국에서 만들게 하겠소.'
 
 


 이 발언을 표면적으로 놓고 보면 '저 양반이 또 헛소리하는군'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애플의 경이로운 이익은 저임금 외국 노동자의 손에서 나오고 있으며, 미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아주 한정적이라 모든 생산 설비를 미국으로 옮기게 하겠다는 건 현실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애플이 이익률을 포기하고, 설비를 갖출 투자까지 감행하여 모험할 때 발생할 손실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기업의 생산 시설을 외국에서 미국으로 강제로 옮길 권한이 있지도 않습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서 '35% 관세'를 주장하고 있는데, 미국 기업이 외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으로 들여오는 건 수입이고, 이 수입에 대해서 35%라는 관세를 부과하면 어쩔 수 없이 미국에 공장을 짓게 되리라는 겁니다. 이 주장도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죠. 미국 기업만 대상으로 하더라도 물가를 비롯한 각종 지표에 영향을 끼칠 테고, 미국에 공장을 짓게 하겠다는 일념만으로 경제를 밑바닥으로 굴릴 도화선이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주장은 역시 믿을게 못 된다.'라고 하기에는 미국의 전체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애플이 실제 미국으로 공장을 옮겼을 때 발생할 손실에 실제 애플에 얼마큼 영향을 끼치고, 회사에 긍정적인 효과는 없는지 들여다보면, 현실성은 둘째 치더라도 맥락만은 수긍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지난해 9월, 제너럴일렉트릭(GE)은 미국의 3개 공장을 영국과 프랑스로 이전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달러 강세로 비용을 증가한 탓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달 미쓰비시 자동차도 미국 일리노이 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했고, 일본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한다고 밝혔습니다.
 
 비료 업체인 CF 인더스트리는 35%의 법인세율을 피해서 네덜란드의 OCI와 합병한 후 법인을 런던으로 옮겼고, 제약업체인 화이자도 앨러건과 합병한 후 아일랜드로 옮겼습니다. 제조업 경기 둔화가 지속하는 중에 미국에 둥지를 틀었던 기업들이 하나씩 빠져나가면서 고용 시장도 심각하게 얼어붙었습니다.
 
 고용 시장 위축은 결과적으로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그럴수록 미국의 제조업 활동도 더 저조할 수 있기에 현재 오바마 행정부도 미국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세우도록 돌려세우는 방침을 고수했습니다. 2013년 애플은 중국 생산 설비 일부를 미국으로 옮기고, 1억 달러 이상 투자했습니다. 그러더니 구글도 자사 하드웨어 일부를 미국에서 생산하고, 포드나 GE도 미국에서 생산한다는 방침을 내놓았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극히 일부라는 겁니다.
 
 트럼프가 35%의 관세를 주장하게 한 건 미국 기업들이 멕시코에 많은 공장을 세우고 있는 탓입니다. 2년 전에 미국 생산 방침을 밝힌 포드조차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공장을 2018년까지 폐쇄하고, 멕시코 공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일자리가 늘어나자 멕시코 이민자들이 다시 멕시코로 돌아가는 상황도 벌어지면서 제조 산업 활성화는 미국 대선뿐만 아니라 경제에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죠.
 
 그렇다고 빠져나가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제너럴모터스(GM)는 미시간주 델타타운십, 폰티악, 워런시의 3개 공장에 8억 달러 이상 투자할 계획이고, 이번 투자로 650명의 인력은 추가로 고용할 예정입니다.
 
 GM의 이런 행보는 2009년을 돌아보게 하는데, 파산보호 신청한 GM을 두고, 오바마 행정부는 임기 초기 반대에 부딪혔음에도 GM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원 정책을 차례로 내걸면서 자동차 산업에 사활을 걸었는데, 미국 내 자동차 생산량은 당시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고, 지난해에 5%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최근 '디트로이트가 부활했다.'라고도 표현하는데, 기대치를 밑돈 미국 제조업 지수와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애플의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겠다는 명분을 대중에 각인하기 쉽습니다.
 
 또한, 미국에 진출하는 중국의 행보도 주목할 만 합니다. 과거 미국 기업들은 중국으로 공장을 옮겼지만, 현재는 중국 자본이 미국을 본거지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부호의 지원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전기차 업체 패러데이 퓨처는 작년 12월에 '미국에 공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고, 중국 저장지리그룹이 인수한 볼보도 지난해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미국 첫 공장을 건립했습니다.
 
 중국 자본이 미국으로 건너오는 건 중국 내수 시장에 대한 기대가 점차 줄어들고, 시장을 확장해야 하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을 거점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외국에 공장을 짓고, 빠져나가는 미국 기업을 미국 국민이 호응할 리 없습니다. 현실성을 떠나서 트럼프의 발언 자체를 여느 헛소리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거죠.
 
 현실성은 어떨까요? 실상 애플이 미국에 공장을 짓더라도 대규모 고용이 발생하긴 어렵습니다. 이미 자동화 공장이 정착했고, 대부분 로봇으로 생산하게 될 테니까요. 그렇다고 고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닌 게 애플의 미국 공장도 최신 설비의 자동화 공장이지만, 1,000명의 고용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자동화로 인건비를 절약하면서 대신 미국 내 고용 창출은 어느 정도 이뤄내는 겁니다.
 
 그럼 '그래서 애플에 무슨 이득이 있나?' 싶은데, 현재 애플은 중국 공장에서 몇 가지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먼저 과거처럼 신제품을 완벽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죠. 신제품은 공개되기 전에 이미 공장에서 유출되어 기대감을 꺾습니다. 그리고 중국 공장 내 노동 착취와 관련한 비판이 계속 이뤄지는데, 이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비용은 계속 지출하고 있지만, 완벽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자동화 공장이라면 그럴 염려도 없을뿐더러 미국 여론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탁월합니다.
 
 투자자들이 가장 염려하는 건 생산 단가의 증가인데,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생산하는 제조원가를 100이라고 했을 때 중국은 이미 96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임금 노동력을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제조 공장이 굳이 중국에 있어야 할 이유가 줄어든 것입니다.
 
 오히려 애플에 걸림돌이 있다면 세금이겠죠. 그렇기에 트럼프가 관세로 미국 기업을 압박하겠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세금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애플이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는 것이 비현실적이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애플이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겠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한 개인의 주장이므로 실현될 여지는 거의 없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애플은 이미 중국을 벗어나고 있는데, 아이폰 생산 업체로 잘 알려진 폭스콘은 인도에 공장을 건립했고, 애플도 인도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애플은 인도 산업정책진흥부(DIPP)에 애플스토어를 열기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고, 인도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여 공급할 계획입니다.
 
 인도 상황이 내리막을 달리지 않는 한 한동안 애플은 인도에 집중할 것이고, 인도의 성장이 둔화하더라도 별다른 정책 지원이 없다면 멕시코나 브라질에 생산을 집중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단지 이런 미국이 제조업 상황을 놓고, 트럼프의 발언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