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제품 발표나 행사는 여느 기업의 것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럴 이유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사 전 발표할 제품에 대한 여러 뜬소문, 뜬소문대로의 제품이지만, 그걸 뒤집어내는 가격이나 정책 등 행사가 끝나면 할 얘기를 억지로 토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애플, 당연한 걸 당연하게 하게 되다
 
 물론 애플의 행사는 여전히 깔끔하고, 특유의 분위기는 애플답습니다. 오늘 애플은 새로운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공개하는 행사를 했습니다.
 
 


 먼저 '아이폰 SE'입니다. 아이폰 SE는 아이폰 5s와 동일한 크기와 두께의 제품입니다. 애플의 설명으로는 '인기 있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채택했다.'라는 겁니다. 대신 내용물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아이폰 6s에 탑재한 A9 프로세서를 장착했고, 1,200만 화소 카메라, 4K 동영상 촬영, 그리고 라이브 포토 기능도 들어갔습니다.
 
 3D 터치는 빠졌지만, 터치 ID로 애플 페이를 이용할 수 있고, 작은 크기지만, 아이폰 6보다 더 강력한 사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가격은 16GB 모델에 399달러, 64GB 모델이 499달러로 책정되었습니다. 이는 64GB 모델이 16GB의 아이폰 6보다 저렴한 것입니다.
 
 다음은 아이패드 프로입니다. 애플은 앞서 12.9인치의 아이패드 프로를 선보였습니다. 이번에는 9.7인치인데, A9X 프로세서, 1,200만 화소 카메라, 12.9인치 모델에 탑재한 4개의 스피커 등을 포함했습니다. 그리고 기존 아이패드 에어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던 애플 펜슬과 스마트 키보드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32GB 모델이 599달러, 128GB가 749달러, 256GB가 899달러로 책정되어 12.9인치 모델보다 130달러씩 저렴합니다. 대신 아이패드 에어의 가격 정책은 변경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애플 워치의 시작 가격을 299달러로 낮췄습니다.
 
 


 필자는 앞서 '애플, 아이폰 5se로 노리는 2가지'라는 글을 통해서 '애플이 평균 가격 500달러의 아이폰을 출시한다면 아이폰 5s의 가격을 낮추고, 아이폰 6를 단종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애플은 그보다 더 낮은 가격의 아이폰 SE를 선보였고, 아이폰 6의 가격은 약간 낮아졌지만, 아이폰 SE보다는 비쌉니다.
 
 이것은 카니발리레이션 상태입니다. 더 나은 사양의 아이폰 SE가 아이폰 6보다 저렴하다는 건데, 더 큰 크기의 아이폰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아이폰 6가 저렴한 선택지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이폰 SE는 아주 저렴한 선택지입니다. 그러니까 크기만 구애받지 않으면 아이폰 SE가 아이폰 6를 잠식한다는 거죠. 성능으로는 아이폰 6s라는 선택지도 있으니 말입니다.
 
 대신 아이폰 SE의 가격 정책은 이전처럼 라인을 비꼬는 게 아니라 여느 회사처럼 당연한듯합니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아이폰 SE를 출시하는 목적 중 하나는 인도입니다. 1차 출시국에 인도를 포함하진 않았지만, 현재 인도는 애플뿐만 아니라 다른 스마트폰 업체들도 중국 다음으로 집중하는 시장입니다. 그리고 인도의 대졸 평균 임금은 400달러 수준이고, 아이폰 SE의 16GB가 딱 400달러이죠. 굉장히 정직한 가격 정책입니다.
 
 이는 현재 라인보다 앞으로의 제품 정책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하반기 아이폰 6s를 이을 신제품을 출시하면 자연스럽게 아이폰 6s의 가격이 낮아지고, 아이폰 6의 단종 가능성은 커지니 아이폰 SE가 자연스럽게 아이폰 6s와 비슷한 사양에 크기만 다른 아이폰 5s의 포지셔닝을 갖게 되니 말입니다.
 
 애플 워치도 그렇습니다. 필자는 '애플 워치의 다음 단계'라는 글을 통해서 '기능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게 스마트워치인 탓에 디자인 경쟁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건 좁아진 선택지의 남은 경쟁력이 굉장히 낮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스마트워치의 기능에 대한 기대감은 고착화하는데, 애플 워치의 가격은 기능에 기대했었던 그때의 가격이고, 비싸다는 겁니다. 그러니 애플 워치의 다음 단계를 애플이 보여줘야 한다는 거였죠.
 
 그런데 애플은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가격을 낮추는 거죠. 이미 애플 워치의 가격을 100달러 할인하는 행사를 베스트바이 등에서 했기에 당연한 조치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가격 정책을 유지하면서 판매할 수단을 강구한 이전과 다르게 가격을 낮추는 당연한 방법을 쓴 겁니다. 이후 2세대 애플 워치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야 하고, 그거를 위한 포석일 수도 있으나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가격만 낮춘 건 당분간 이 가격 정책을 유지한 채 애플 워치를 판매하겠다는 겁니다.
 
 여타 스마트워치보다 여전히 비싼 건 분명하지만, 정책적으로는 애플의 행보를 예상하기에 예상, 혹은 기대할 필요가 없을 만큼 당연한 행보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이번 애플 행사를 두고, '드디어 잡스의 현실왜곡장이 힘을 잃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동안 애플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도 정신 나간 가격 정책을 유지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매력으로 작용하여 아이폰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마트폰으로 만들었죠. 이를 상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게 애플 특유의 무언가였던 건 맞습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의 평가는 그런 애플 특유의 무언가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구형 기술을 당연한 듯 그 가격대에 맞춰서 내놓았으며, 소비자들은 제품의 새로움보다는 가격의 합리성에 더욱 주목할 겁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확실히 아이폰 SE의 가격 정책은 많은 수요를 끌어들일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앞으로의 애플 행사가 이전과 다르게 지루해질 수 있다는 것에 큰 감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애플 팬보이라면 애플 행사에서 감흥을 느끼길 바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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