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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APPLE Geek Bible

'애플은 인텔을 인수해야 한다', 진정한 탈출구인가?

 '위기의 애플', 꽤 오랜 시간 들려 온 얘기지만, 최근만큼 확실하게 많이 들린 적은 정말 망하기 직전이었던 때 이후 처음입니다. 그때보다 상황은 좋죠. 여전히 경쟁력 있는 제품 라인과 천문학적인 현찰 보유, 더욱 공고해진 고객 충성도. 그리 나쁠 것이 없음에도 애플은 월가의 눈총을 받으며 주가가 반 토막 났습니다. 그 상황에 팀쿡이 자사주매입이라는 선택을 했지만, 그것만으로 살아날 것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




'애플은 인텔을 인수해야 한다', 진정한 탈출구인가?


 작년 12월, 애플과 인텔은 파운드리와 합작회사 설립 루머로 묶인 적이 있습니다. 모바일 시장에서 힘을 잃은 인텔이 힘을 얻고, 칩의 공급 벽에 부딪힌 애플에 꽤 달콤했던 루머였지만, 실체를 드러나지 않은 채 잠잠한 상태입니다. 그런 와중 애플과 인텔을 다시 한번 묶이게 됩니다. 아예 애플이 인텔을 사들이는 걸로 말입니다.




애플은 인텔을 인수해야 한다


 가디언은 애플의 주요 경영진(페라리 이사회 참석으로 빠진 에디 큐를 제외)과 외부 전문가들이 모여 애플의 현재 상황에 대한 회의를 진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외부 전문가로는 애플 이사회의 빌 캠벨를 비롯해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윌슨 손시니 굿리치 앤드 로사티 회장인 래리 손시니, 월가의 슈퍼 투자자 프랭크 콰트론 등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이 회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힌 사안이 바로 '인텔 인수'입니다.

 인텔 인수를 얘기를 꺼내 든 것은 프랭크 콰트론입니다. '인텔을 사야 한다'고 하자, 팀쿡은 '맞다. 우리는 2005년부터 인텔로부터 프로세서를 구매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콰트론은 '칩이 아닌 회사를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합니다. 그 이유로 '애플이 ARM 공급 업체 중 유독 삼성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를 벗어나야 한다', '인텔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조업체이며, 그들은 앞으로 수년 동안 애플의 요구에 맞도록 공장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등을 내세웠습니다.

 사안만 보면 올 초에 등장했던 애플의 BMW 인수설 수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언론플레이를 위한 월가의 인터뷰나 분석이 아닌 애플 경영진을 자리에 둔 비밀회의에서 나온 의견이며, 그 의견 제시자가 프랭크 콰트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뭐하는 놈인데 이런 헛소리를 하는가' 싶겠지만, IT버블 붕괴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프랭크 콰트론의 이름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IT버블 붕괴를 주도한 인물 중 하나로 당시 IT업체들의 가치를 부풀려 IPO를 진행하게 하고 투자자를 끌어모아 주가조작으로 막대한 수익을 챙긴 혐의로 징역 18개월의 판결을 받은 이력이 있습니다. 일명 '콰트론 스캔들'로 불리는 사건입니다. 대중들에는 이 IT버블 붕괴를 주도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죠. 다만, 콰트론이 단순한 범죄자인 것은 아닙니다. 복역 중 무혐의로 풀려나게 된 콰트론은 2008년, M&A 자문 회사인 콰탈리스트 파트너스를 설립해 당시 주요 IT기업을 도맡아 해결했습니다. 월가에서는 IT업계 투자자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인물이며, 그를 거쳐 간 IT기업의 IPO만 수백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월가의 전문가 중에서도 그냥 이름만 있는 정도의 전문가가 아니라 IT업계 투자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그런 콰트론의 입에서 '인텔을 사라'라는 얘기가 비밀회의에서 나왔다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적어도 월가에서는 이 문제를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근거가 되는 것이니까요.

 전체 회의 내용은 알 수 없기에 모두의 의견을 들을 순 없지만, 적어도 모두가 여기에 찬성했던 것은 아닙니다. 캠벨은 인텔의 맥아피 인수와 같이 아무 이득을 보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인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니었다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만약 인수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요? 현금박치기로 사들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단 애플과 인텔의 합의가 필요할 테고 합의선에서 투자은행들에 융자를 끌어놔야 할 것이며, 월가의 투자자들이 주주로 붙어야 인수할 수 있는 꽤 커다란 거래입니다. 애플이 인텔을 인수하는 것은 뒷받침해줄 조건이 필요하며 갖춰낸다면 가능한 거래입니다.

 문제는 그 뒷받침 할 조건인데, 앞서 말했지만 콰트론은 M&A 자문회사의 설립자입니다. 콰트론이 그것을 뒷받침해줄 것이라는 게 아니라 콰트론은 회사가 투자를 받을 가장 큰 시기가 IPO와 M&A라고 생각하는 인물이고, 거기서 발생 된 투자 차익으로 이익을 챙기는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월가의 투자자들과 은행들 입장에서는 애플이 인텔을 인수하려 하면 좋은 측면을 부각했을 때 투자자들이 몰릴 것이고, 그럼 애플의 주가를 방어함과 동시에 애플이 인텔을 잘 운영해내기만 하면 인텔의 안정적인 실적과 애플로의 칩 공급, 그리고 애플은 그로 인한 제품 개발로 이어져 시너지를 만들어 낼 테니 애플의 위기론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콰트론은 제시한 겁니다. 물론 그에 따른 리스크도 확실하지만, 애플이 현재 상태로 있는 것도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이기에 그럴거라면 인텔을 구입해보라는 것이고 이것이 결코 헛소리는 아닌 것입니다.




탈출구



 하지만 이런 방법이 과연 애플에 있어 진정한 탈출구일까요?

 인텔을 인수하는 방법은 애플에 있어 월가의 눈총을 피하는 가장 극단적인 선택입니다. 자사주매입이나 배당보다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죠. 외부 투자자들을 끌어모아 거기서 차익을 발생시키는 것이 월가 입장로서는 가장 큰 먹거리고 거기에 애플이 움직여주면 그만큼의 주가 회복도 보장될 수 있습니다. 주가가 회복되면 언론들은 애플이 부활했다며 떠들 것이고 위기론을 잠잠하게 만드는 것도 시간문제겠죠.

 그럼 그다음은 무엇입니까?


 애플이 월가의 방식대로 주가 회복을 하고 나면 인텔에 투자한 비용을 다시 거둬들여야 하고 인텔의 파트너사, 그러니까 애플의 경쟁사들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현재의 애플을 원상복구 시키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겁니다. '왜 원상복구 시켜야 하는가?' 현재 월가가 애플을 압박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애플이 힘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막대한 현금 보유에 있습니다. 애플이 투자 자본에 묶이지 않아도 될만한 구실이 현금 보유인데, 인텔을 인수해 이 현금을 투자자본으로 밀어 넣으면 그건 애플의 것이 아니라 순전히 투자자들의 것이 되며, 월가가 이를 붙들고 투자 압박을 더 심각하게 하면 주주들이 회사 운영에 끼어들 여지를 크게 벌려놓습니다. 차라리 자사주매입이 나은 선택이죠. 단순히 회사 하나를 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애플에는 기존 운영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이는 오히려 애플에게 탈출구가 되기보다는 족쇄가 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현재 주주들은 애플이 보유한 현금을 돌려달라고 압박하는 수준이지만, 현금이 투자자본으로 사용되면 투자 자본을 압박할 것입니다. 애플의 주식이 6개월 만에 반 토막 된 것을 봅시다. 만약 애플에 저가형 아이폰을 만들라고 월가가 압박하면 애플은 만들어 낼 수밖에 없습니다. 신제품을 공개하라고 압박하면 일부라도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투자자본이 공중분해 해버릴 테니까요. 그것을 인텔이 메워준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애플은 애플이 아니게 되는 것이란 말이죠.




애플



 애플이 인텔을 인수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살 수 있다 없다기보다는 애플이 이를 통해 무엇을 취득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콰트론이 그런 구상을 하며 인텔을 인수하라고 한 것은 아닐 겁니다. 그는 월가 최고의 IT 전문가이자 IPO/M&A 슈퍼 투자자니까요. 현 상황에서 애플이 M&A로 살아나는데 인텔만 한 회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한 발언이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애플이 실제 인텔 인수를 감행하기가 쉬운 것도 아닌 것이 인텔이라는 거대 기업을 인수하는데 미연방정부와의 법적 문제나 파트너사들과의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단순히 돈이 오가면서 합쳐져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어차피 인수하지도 못할 인텔 얘기를 여태까지 왜 하고 있었던 것인가'

 현재 월가가 애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분위기가 어떤지 확실해졌기 때문입니다. 월가는 애플이 신제품을 내고 이를 통해 성장세를 발판 삼아 다시 도약할 것에 매우 회의적인 분위기입니다. 그러니 현재 가진 자본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고, 콰트론은 그 방법 중 가장 나은 것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죠. 월가 전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분간 애플은 어떤 말을 하건 어떤 실적을 내건 주가를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현재 애플의 주가를 이해할 수 있으며, 월가의 현재까지의 애플 압박 이유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애플의 진정한 탈출구는 이런 투자자본의 압박을 뿌리칠만한 제품입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진짜 인텔을 인수할 수를 두거나 주주들에 끌려다닐 뿐 무엇하나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애플이 이런 회의를 열었다는 것은 또 애플 내부적으로 얼마나 어수선한지 방증하는 것입니다. 가을과 내년에 출시를 준비 중이라는 제품들이 과연 회의적인 월가의 분위기와 어수선한 애플의 분위기를 짓누를 수 있을지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