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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T일반

블랙베리는 왜 어려워졌을까?

 지난해 12월, 블랙베리10(BB10)의 출시를 앞두고 많은 기대가 오갔습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죠 윈도폰8의 성장이 더디면서 스마트폰 3위 플랫폼이 경쟁의 가장 우위에 있었던 것이 바로 BB10이었습니다. 그리고 BYOD에 따라 엔터프라이즈 시장에 주력하면서 iOS와 안드로이드로 양분된 시장에 틈새를 공략하는 방법으로 나름 분명한 포지셔닝도 있었습니다.




블랙베리는 왜 어려워졌을까?


 자신감도 있었고, 투자 유치도 이끌어 냈으며, 제품의 평가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제품 출시 6개월 만에 거의 모든 뉴스가 쏙들어 갑니다. 윈도폰보다 비중도 없고, 영국과 캐나다에서 초기 판매량을 빼면 미국 시장에서는 파리만 날렸다고 해도 좋습니다. BB10은 완벽히 실패했습니다.




블랙베리



 블랙베리는 지난 분기, BB10 기기를 270만 대 밖에 판매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분석가들의 예상보다 100만 대를 밑도는 수준이며, 8천 400만 달러의 순손실과 31억 달러의 매출만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실적이 드러난 직후 블랙베리의 주가는 26%가 급락하면서 사실상 BB10이 시장성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블랙베리의 CEO 토스텐 하인즈(Thorsten Heins)는 '아직 출시 초기'라면서 이후 3분기 동안 추가 투자할 것을 약속합니다.

 가장 주력할 시장이었던 미국에서 판매 시작부터 고전했고, 제품을 출시한지 6개월이 되었는데 아직 초기라면서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하인즈의 반응은 오히려 투자자들의 반감을 사기에 좋았습니다.

 타 스마트폰에 비해 떨어지는 사양과 열악한 생태계를 만회할 BB10의 기본적인 엔터프라이즈 기능과 키보드, BBM 등이 있지만, 소비자들과 다시 마주하기 위해서는 신제품이 필요하고 영국의 초기 매진 사태처럼 초반 성적과 함께 제품이 돋보이도록 기능이나 마케팅에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이여 보입니다. 영국 매진 사태가 결과적으로 대량 반품으로 이어졌던 것은 사양과 열악한 생태계 때문이라고 볼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다시 BB10을 뒤짚을 순 없기 때문에 BB10으로 승부해야 하고, 블랙베리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어려움



 
 그래서 블랙베리는 진짜 신제품을 출시합니다. '블랙베리 Q5'로 명명된 이 제품들은 '보급형 제품'입니다. 보급형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는 많으니 그리 이상해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블랙베리가 어려워진 이유를 Q5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Q5가 유출되었을 때 많은 분석가들이 저가형 모델이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었니다. 실제 BB10 이전 블랙베리의 주요 시장은 미국을 아이폰에 빼앗긴 후 브라질, 인도 등이었기 때문에 Z10와 Q10으로는 이들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블랙베리가 저가 시장을 상대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먼저 BB10을 출시하기 아태지역에서 철수합니다. 철저히 북미와 유럽의 엔터프라이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뜬금없이 저가형 제품으로 판매 부수를 올리려는 전략을 세웁니다.

 생각해봅시다. 이미 기본적인 기능을 갖춘 저가의 스마트폰은 많이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도 있고, 아이폰도 저가에 판매 중이고, 윈도폰도 있죠. 하지만 이들은 최소한의 생태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저렴하게 구매하더라도 메리트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BB10은 전혀 가격 경쟁으로 메리트를 얻을 수 없습니다. 애초 플랫폼이 완전히 다른데다 이제 막 등장했기 때문에 Q5는 그냥 휴대폰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일반 소비자라면 그냥 저렴한 안드로이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죠. 엔터프라이즈 시장도 그렇습니다. BYOD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많은 직장인들은 자신의 업무에 활용할 수 있을만한 제품을 고르는 성향이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가격보다 최상위 기종을 구매하는 비중이 높은데, 누가 보급형 기기에 눈을 돌린다는 것일까요. 그냥 긱들의 보조적인 쿼티 제품으로 딱인 정도입니다.


 블랙베리는 현재 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제품이 문제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제품을 빨리 보급시켜야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수월 할 것이다.' 하지만 보급형이 제대로 팔리지 않을 상황에서 무작정 보급에 신경쓴다는 것은 제품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것이고, 그만큼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기대보다는 지켜봐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합니다. 블랙베리는 매우 성급했고, 빠른 시간 안에 엔터프라이즈 시장, 일반 소비자 시장,보급 시장, 모두를 잡아내려 했습니다. 그 결과가 순손실의 원인이며, 블랙베리를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한 것입니다.

 구매력 강하고, 스마트폰 활용 능력이 높은 프리미엄 시장과 엔터프라이즈 시장을 상대로 킬러앱을 확보하여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차츰 보급을 강화하는 편이 가장 좋은 수였습니다. 싸게 뿌린다고 해서 킬러앱의 구매가 높아지고,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이 팔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블랙베리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블랙베리



 블랙베리가 Q5를 출시한 이유는 Z10과 Q10의 대량 반품 사태가 블랙베리 마니아들을 이탈하게 한 부분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가 제품으로 이탈한만큼의 보급률을 올리겠다는 생각이 강한 제품인데, 대량 반품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보다는 가격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자체가 블랙베리가 얼마나 경영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지 잘보여줍니다.

 3분기 동안 추가 투자를 통해 BB10을 살려놓겠다고 했지만, 현재 상태라면 계속 이상한 제품만 쏟아낼 것이 뻔해보입니다. RIM에서 블랙베리로 사명까지 바꿨음에도 블랙베리가 아이폰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온갖 제품을 찍어내던 경영 방식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블랙베리가 이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필자는 BB10이 공개되기 전까지의 기대만큼 살려놓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제품보다 경영상에 구멍이 크다면, 그 어떤 제품을 출시하더라도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만큼 블랙베리의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