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시장 초기에는 어떤 업체가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어도 당연한 듯 생각했습니다. 물꼬를 튼 새로운 시장에 늦장 대응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으니까요. 그러나 현재 스마트폰이 많이 보급되자 스마트폰 시장에 누군가 뛰어드는 것이 자살 행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애플과 삼성이 시장을 주도하고, 그밖에 다른 업체들이 파이를 채우면서 균형이 유지된 시장에 쉽게 발을 들이기란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HP, 스마트폰 출시보다 먼저해야 할 것
그 때문에 노키아는 윈도폰에 올인해버리거나 화웨이나 ZTE 같은 중국업체들은 물량 싸움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스마트폰 시장이 비집어 들어가기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장에 문을 두드리는 업체는 많고, 자신들이 시장에 판도를 뒤집어 보겠다는 다짐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 중 하나가 HP입니다.
HP 스마트폰
폰아레나는 HP가 내놓을 예정인 '브레이브(Brave)'라는 명칭의 안투투 벤치마크를 공개했습니다. 벤치마크대로라면 2.0GHz 퀄컴 스냅드래곤 800, 퀄컴 아드레노 330 GPU, 안드로이드 4.2, 4.5인치 900x1600 해상도 디스플레이, 전면 5MP/후면 14.5MP 카메라, 2GB 메모리가 탑재될 것이며, 해상도를 어떻게 구겨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한 성능의 제품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HP는 이미 팜을 인수해 웹OS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고, 하드웨어 사업부도 폐쇄해버리면서 괴멸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9월에 CEO인 멕 휘트먼이 'HP는 궁극적으로 스마트폰을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에서 스마트폰은 최고의 컴퓨팅 기기다. 많은 사용자가 아직 태블릿이나 PC가 없지만,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HP는 컴퓨팅 회사고, 스마트폰 폼팩터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HP가 궁극적으로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 것을 내비칩니다.
브레이브는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지난 2월에는 '슬레이트7'이라는 이름의 첫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선보였던 HP이고, 그 기반을 두고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됨으로써 포스트 PC 시장 전반에 걸친 재진입이라고 봐도 좋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새롭게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 다행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HP는 이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HP가 빼앗긴 타이틀이 있습니다. 'PC 시장 1위'말이죠. 레노버와 각축하던 HP는 최근 레노버와 격차가 벌어지면서 확고히 1위 자리를 넘겨줬습니다. 5분기 연속 추락하는 PC 시장에 전년 동기보다 판매량은 10.9%나 줄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레노버는 감소폭을 줄이면서 PC 경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가트너의 2분기 PC 시장 조사를 보면, 레노버는 시장점유율 16.7%를 기록했고, HP는 16.3%를 기록했습니다.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레노버의 판매량 감소폭은 0.6%, HP는 4.8%로 엄청나게 벌어집니다. 3위인 델조차 3.9%의 감소폭을 보였으니, 레노버가 PC 판매량을 방어하는데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드러납니다.
HP는 결정해야 합니다. HP가 태블릿과 스마트폰 사업에 다시 발을 붙인 것은 떨어지는 PC 판매량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장으로 한 단계 넘어갈 수 있어야 장기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인데, 가장 큰 기반 문제에 부딪힙니다.
레노버는 PC 시장에 주력하고 있지만, 중국 스마트폰 시장 1위도 달성했습니다. PC라는 기반을 두고 스마트폰 시장을 함께 선점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3위인 델은 아예 PC 시장이 아닌 소프트웨어 회사로 거듭났습니다. 여전히 제품이 팔리고는 있지만, 솔루션 제품 개발과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그 성과가 차츰 드러나면서 PC 업체보다는 솔루션 업체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HP는 애매합니다. 분명 지난 분기까지 PC 시장 1위를 달성하던 업체인 건 알겠는데, 태블릿과 스마트폰에 기웃거리면서 PC 점유율 감소폭이 크게 늘었고, PC 시장을 기반으로 사업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태블릿과 스마트폰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것인지 경계가 불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슬레이트7이 많이 팔린 것도 아니고, 스마트폰이 잘 팔릴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PC는 PC대로 추락한 채 놔두고, 또 다른 사업은 다른 사업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HP는 이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기존 PC 사업을 기반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을 함께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기존 PC 사업이 아닌 스마트폰과 태블릿 주축의 신 PC 사업을 기반으로 새로 성장해나갈 것인지 말이죠. 그래야 HP라는 브랜드가 확고해지고, 이것저것 손을 대는 HP의 제품에 대한 신뢰감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HP의 PC 점유율 감소폭이 늘어난 것은 HP가 갈팡질팡했기 때문입니다. 뭔가 새로운 걸 한다는 것 때문에 PC 제품군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그것이 곧 소비자에게 HP제품을 구매하는데 불안요소로 작용했습니다. PC 제품을 사용하는데 혜택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죠. 반대로 레노버는 떨어지는 PC 점유율에도 지속 된 PC 사업 투자와 확장 등으로 PC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에 좋은 인상을 남겼고, 그것이 감소폭을 줄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HP가 스마트폰을 출시한다?',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불안요소가 기업을 잠시하고 있는 시점에서 레노버나 델처럼 과감한 결정을 하지 않는 이상 어떤 화려한 스펙의 스마트폰이 출시된다 할지라도 힘듭니다. 스마트폰에 주력하고 싶다면, 스마트폰에만 주력한다는 모습을 소비자들에게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HP
HP가 신 PC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겁을 먹고 있습니다. 만약 이 진출이 발목을 잡아 기존 PC 사업에 찬물을 끼얹으면 안 된다고 말이죠. 그러나 그런 중심 없는 태도가 오히려 HP를 갉아먹고 있으며, HP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을 끊어지게 하였습니다.
HP는 충분히 일어설 수 있는 기술력과 기업 철학을 지니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럼에도 최근의 모습은 초심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필자는 그런 부분이 매우 아쉽고, PC 발전에 기여했던 기업 중 하나인 HP의 망가지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아직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키를 다시 잡고, 중심을 잃지 않는다면 충분합니다. HP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식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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