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중저가형 아이폰인 '아이폰 5c(iPhone 5c)'를 공개했습니다. 저가형이 나온다는 소리만 수년간 들어왔는데, 드디어 구세대 아이폰의 연장이 아닌 아예 다른 컨셉의 아이폰이 실제로 등장한 것입니다.
아이폰 5c는 많이 팔릴 것, 그러나 허점있는 전략
물론 저가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필자가 누누이 얘기했듯이 어중간하게 $199나 $299 수준이었다면 망할 제품이었고, 차라리 $99 수준으로 치킨 게임을 하거나 $399 이상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가격은 16GB 기준으로 $549입니다. 예상보다 비싼 가격인데, 아이폰 5c의 쟁점은 가격이 아닙니다.
많이 팔릴 것
5가지 색상, A6 프로세서, 4인치 1136 x 640 레티나 디스플레이, 8MP 후면 카메라, 120MP 전면 카메라, 802.11a/b/g/n, 블루투스 4.0, 그리고 20g 늘어난 무게... 플라스틱 재질, 색상, 무게(금속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는데 무게가 늘어나는 신기한 재주를...)만 제외하면 아이폰 5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이 3가지가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죠. 거기에 $549의 가격. 2년 약정으로는 $99로 기존 구세대 제품 가격 정책과 똑같습니다.
그러자 '비싸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아이폰 5의 높은 단가를 수익으로 쥐어 짜기 위해서 아이폰 5를 단종하고, 플라스틱의 아이폰 5c를 출시했다고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격 탓에 팔리지 않을 제품도 아닙니다.
먼저 제품이 허접스럽게 나왔느냐고 한다면 그렇진 않습니다. 분명 기존 알루미늄이었던 아이폰 5보다 싸게 보이는 인상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폰 5에 비해 확연히 후진 제품은 또 아닙니다. 무엇보다 애플이 내세웠던 중저가 라인 소비자들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층이었습니다. 그것은 올해 2분기 아이폰 판매량의 절반을 구형 제품이 차지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는데, 이는 이전보다 상당히 늘어난 수치이며, 구형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소비자들은 구형 제품을 구매했고, 전체 판매량에 끼치는 영향은 두 배나 상승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보통 물건을 살 때 구매 가격을 정해두고 브랜드와 제품을 고르는 일반적인 소비 형태가 아니라 먼저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두고 그 안에서 자신이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의 제품을 선택한 다음 소비하는 형태를 이뤘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형 제품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100 낮은 가격에 판매하더라도 최신 모델과 고르게 판매되는 현상을 보인 것입니다.
애플은 이를 지난 2년 동안 계속 경험해왔습니다. 3Gs 때는 5%, 4 때는 9%, 아이폰 5가 출시되자 18%로 계속 상승했습니다.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강화하면서 소비자가 그 속에서 소비하길 원할 때 결과적으로 아이폰 5c가 어떤 형태이든 기존 구세대 제품 판매 전략과 다를 바 없이 판매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물론 아이폰 5c가 대단히 잘못 만든 제품이 아니라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말이죠.
거기다 기존 구세대 제품을 저렴하게 판다는 것이 아닌 중저가라는 점을 표방하고 나온 탓에 일반적인 구매 방식의 소비자를 끌어들일 가능성이 높고, 색상의 다양화로 선택권을 쥐여줌으로서 기존 구세대 제품이 프리미엄 이미지에 갇혀 뻗어 나가지 못한 방향을 아이폰 5c가 제시했습니다. 포지셔닝 관점으로는 확장한 듯하지만 절제된 라인 확장으로 판매고를 유지하면서 마진을 높일 수 있는 상당히 재미있는 전략을 취한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윈도우 랩탑이 출시되든 가격 비교를 맥 안에서만 하는 것처럼 아이폰의 포지셔닝을 잡아 놓고 아이폰 5c를 내세웠다고 할 수 있겠죠. 기존의 논란이었던 점유율 대신 단가를 통한 마진을 높이는 가격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이것이 판매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중저가 모델을 제대로 내놓은 것이죠. 더군다나 얼마 전 모토로라가 출시한 모토X보다 사양도 높은데 가격은 $50 저렴해서 중저가 라인의 강력한 경쟁자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 팔릴 것이라는 예상에도 허점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폰 4s입니다.
허점
애플은 아이폰 5c를
공개하면서 아이폰 5를 단종해버리고, 아이폰 4s를 2년 약정에 $0로 내놓았습니다. 이게 허점이라는 겁니다.
아이폰 4s가 허점이고 실수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애플은 고민했을 겁니다. '아이폰 4s를 $0로 하고, 아이폰 5c로 아이폰 5를 대체할 것'인지 '아이폰 4s를 단종하고, 아이폰 5c를 $0로 만들 것'인지 말입니다. 결과는 전자가 되었는데, 애플의 생각은 이랬을 겁니다. 아이폰 4s의 재고 문제도 있겠지만. 아이폰 5c 아래 제품이 있어야 $100 단위로 끊어지는 고가, 중저가, 저가 라인이 애플 내에 형성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폰 5c를 $0로 했을 때 출고가를 $594보다 낮춰야 하고, 그렇게 되면 아이폰 5c가 중저가 라인 전체를 책임지지 못 했을 때 전체 판매량과 이익이 줄어드는 위험을 동시에 감수해야 합니다. 애플에게는 아이폰 4s를 살려놓아야 할 충분한 명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이폰 4s는 허점입니다. 애플이 그렇게 고민했다는 것이 역력히 드러나는 데다 이 애매한 제품은 저가 라인을 책임짐과 동시에 아이폰 5c를 잠식합니다. 아이폰 5c가 아이폰 5s를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폰 4s가 아이폰 5c를 잠식한다는 겁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구세대 제품이 아이폰 전체 판매량의 절반을 책임지는 상황에서 애플 내에서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 형태가 발생할 때 가격 요건에 따라 아이폰 4s를 선택할 소비자가 있을 것이며, 2세대 전 제품의 판매량이 계속해서 늘어났다는 점을 볼 때 아이폰 4s의 판매량이 전체 판매량의 20%만 유지되더라도 아이폰 5c를 꽤 잠식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이폰 5c가 30%를 차지하여 마진을 높이더라도 아이폰 4s가 잠식해버리면 전체 점유율을 높이더라도 아이폰 5c에는 그다지 좋은 영향을 끼칠 제품이 아닙니다. 아이폰 5c 전략이 아이폰 4s에 의해 잠식된다면 판매 동향에 따라 마진을 높이는 전략으로 아이폰 5 대신 아이폰 5c를 출시한 것도 비판받을 것입니다.
이런 허점이 있음에도 애플이 아이폰 4s를 살려둔 것은 3가지 라인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이를 유지해야 다음번 라인업에서 아이폰 5c를 $0로 그다음 중저가 라인을 $99로 최상위 모델을 $199로 내놓는 것이 가능합니다. 애플은 가격이라는 위험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아이폰 4s라는 위험을 끌어안고 아이폰 5c의 전략이 성공적이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차라리 아이폰 4s가 없었다면 현재 비싼 가격, 단지 비용절감을 위해 출시했다는 손가락질을 판매량으로 짓누를 수도 있었겠지만, 아이폰 4s가 남아 있는 이상 아이폰 4s가 아이폰 5c를 잠식하는 걸 최대한 방어하면서 아이폰 5c의 판매량을 늘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애플이 아이폰 5c를 성공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아이폰 5c
아이폰 5c에서 가격이 중요한 이유는 가격 탓에 애플이 아이폰 5c를 어떤 전략으로 내세울 것인지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는 많은 분석가가 $199나 비싸도 $299짜리 아이폰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폰 5c라는 모델의 판매량만 충족된다면 굳이 $199짜리 아이폰을 내놓으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애플 나름의 중저가 전략을 새로 짜 맞출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 시기인 앞으로의 1년이 중요하며, 마지못해 남겨둔 아이폰 4s를 얼마나 억누를 수 있을지가 관점입니다.
많은 사람이 아이폰 5c가 중국을 겨냥하여 점유율을 높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는데, 굳이 중국이 아니더라도 지난해 좋은 성적을 거둔 인도나 전 세계 중저가 사용자들을 겨냥함과 동시에 중국도 포함되었다고 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체 성적이 아이폰 5c를 평가하게 하겠죠.
애플은 먼저 새로운 아이폰 5c의 전략을 애플 라인업에 제대로 포함하는 것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만큼 급한 일도 없고, 소비자들이 애플의 새로운 전략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제품을 사려는 소비자를 이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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