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PPLE/APPLE Geek Bible

빨라도 애플, 늦어도 애플

 애플은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기술에 앞서 있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주목받지 못한 기술이 애플을 거치면 다시 주목받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그 주목이 다른 업체들을 자극하고, 다시 끄집어내도록 합니다. 그래서 항상 애플이 앞서 있는 듯하죠.




빨라도 애플, 늦어도 애플


 그래서 매번 말이 많습니다. '애플보다 먼저 한 기업이 있음에도 왜 애플이 먼저라고 얘기하느냐'와 같은 얘기부터 그냥 포장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기도 하죠. '애플천지창조설'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듯 애플이 새로운 기능을 선보일 때마다 항상 이런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대상은 항상 애플이죠. 빨라도 애플 것이고, 늦어도 애플 것이 됩니다. 어째서일까요?




새로운 기능



 밑도 끝도 없이 '애플이 선보인 기능은 무조건 애플 꺼'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굉장히 멍청한 생각이고, 상당한 왜곡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니까요. 다만, 애플은 항상 자신들을 앞서 보이게 하고 또 앞서 갑니다. 그런 재주가 있습니다.

 애플은 아이폰 5s에 '터치ID'라는 이름의 지문 인식 기능을 탑재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있던 기술'이라고 못 박았지만, 어쨌든 지문 인식 기능이 스마트폰에서 주목받게 한 장본인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노트북에 탑재된 지문 인식 기능을 생각해봅시다. 분명 잘 사용한 사용자도 있을 겁니다. 필자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주목받진 못했습니다. 한때 지문 인식 기능이 탑재된 노트북이 지금 터치스크린을 탑재한 노트북만큼 쏟아져 나왔지만, 사용자들은 그것이 왜 필요한지 몰랐습니다. 애초 노트북에 잠금을 걸어두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다 간혹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는 탓에 기능을 꺼버리고 비밀번호 입력으로 돌아섰으니 실제 지문 인식을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확연히 줄어들었죠. 그렇다고 제조사들이 지문 인식 기능을 크게 포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그런 최신 기술이 들어있으니 좋은 제품이다' 정도로 기능 목록에 내세우는 정도로 끝을 냈죠. 아무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스마트폰으로 넘어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달랐습니다. 지문 인식 기능에 '터치ID'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아이폰 5s의 핵심으로 내세웠습니다. 애플은 아이폰 5s를 발표할 당시 아이폰 사용자의 절반만 잠금 기능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고, 그것을 쟁점으로 내세웠습니다. 지문 인식 기능이 비밀번호를 대체할 것이라는 얘기는 센서 가격이 낮아지기 시작한 90년대부터 있었지만, 비밀번호의 사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문 인식이 비밀번호를 대체할 것이 분명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정작 비밀번호는 없어지지 않고, 그 비밀번호 사용이 절반에 그친다는 것은 비밀번호 입력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것이며, 지문 인식이 앞서야 한다는 근본적인 방향을 던져놓습니다.

 그래서 애플은 터치ID를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터치ID가 기존의 지문 인식 기능보다 앞서 보이도록 했습니다. 그건 매우 간단한 것으로 비밀번호 사용과 큰 격차가 벌어지지도 않고, 오히려 더 불편한 때도 있었고, 빠른 지문 인식보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시간이 더 편했던, 지문 인식이나 비밀번호나 동등했던 것을 뒤집어 비밀번호 입력보다 앞선 지문 인식 기능을 내세운 겁니다. 이게 정답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문 인식 기능의 우위가 아니라 90년대부터 있었던 비밀번호를 대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질문에 도달하는 것이 본질이었고, 비밀번호를 대체하지 못했던 것을 대체하도록 만들면서 한층 앞선 지문 인식 기능이 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아이폰 전면, 사용자들이 아이폰을 켜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홈버튼에 센서를 탑재하면서 홈버튼을 누르면 그대로 지문 인식으로 잠금이 해제되고, 지문 인식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틈을 주지 않으면서 원래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않던 사람도 사용하도록 유도한 것은 기존의 지문 인식 기능과 확연히 다릅니다.

 덕분에 애플은 터치ID를 전면에 내세우고, 포장도 할 수 있었죠. 애플이 인수한 지문 인식 업체인 어센텍의 CEO였던 래리 서쳐는 '지문 인식이 핵심 기능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제조사들은 그렇지 못했다'면서 애플의 터치ID를 보고는 '어센텍의 기술이 드디어 임자를 만나 정말 기쁘다고 전직 팀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애플이 기존 탑재된 지문 인식 기능보다 앞섰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앞선 경험은 분명 애플의 것입니다.




포장


 애플은 새로운 기술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기존 기술에서 파생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 사용자 경험을 최대한 포장하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그냥 이런 기술이 탑재되었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기술 설명은 모두 하는 얘깁니다. 하지만 사용자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선 기술을 어떤 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지 알려야 하고, 극대화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느끼기 위해 그동안 관심 없었던 기술에 다시 눈길을 돌릴 테니까요.

 애플은 핵심을 내세워야 할 때면 이벤트를 통해 제품을 발표합니다. 꼭 새로운 제품이 이벤트를 통해 발표되는 것은 아니고, 얼마 전 하스웰 아이맥만 보더라도 큰 변화가 없거나 이미 설명한 것이라면 넘겨버리고 기습적으로 출시합니다. 그러나 항상 새로운 핵심적인 기능이나 변화가 있다면 꼭 이벤트를 통해 전달하는데, 이는 애플 외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은 뮤지컬을 했고, 구글은 스카이다이빙도 했죠. 하지만 여러 이벤트와 애플의 이벤트는 무언가 다릅니다. 포장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규모를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애플이 매년 WWDC를 큰 규모로 진행하지만, 애플 사옥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일이 많고, 이번 아이폰 5s도 그랬습니다. 삼성이나 소니의 거대한 규모를 생각하면 초라한 것 같지만, 내용 자체는 뒤처지지 않습니다.

 대개의 기업은 제품의 기능을 하나씩 빠르게 전부 전달하려 합니다. 한 번의 발표로 모든 걸 인식해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세세한 기능들을 모두 나열하고,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죠. 마케팅 행사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요. 제품 발표를 위해 이벤트를 가지는 것은 제품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케팅하기 위함입니다. 핵심적인 기능을 극대화하고, 그 기능이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이유가 가장 강력합니다. 그리고 그걸 보는 소비자도 마찬가지고, 느끼죠. 결과적으로 그냥 나열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애플은 몇 가지 기능에 초점을 두고 부가적인 것들은 아예 빼버리거나 알아서 파악하길 바랍니다. 대신 왜 다른 제품보다 앞서 있는지 핵심 기능만 가지고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얘기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어 터치ID가 아이폰의 보안을 책임져준다는 것보다 '암호 입력보다 간편하다는 것', '가로세로 360도 어느 방향에서도 인식할 수 있다는 것', '지문 정보가 어떻게 보호된다는 것' 등을 더 많이 얘기합니다. 지문 인식이 보안을 위한 것이라는 것쯤은 첩보 영화만 봤더라면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영화에서조차 지문 인식이 보안을 위한 것이라고 따로 설명하지 않죠. 그만큼 널리 알려진 기술인데, 굳이 그걸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애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런 고민은 당연하죠'

 앞서 말했듯이 지문 인식이 새로운 보안 기능으로 제시된 것은 오래전 일이고, 비밀번호를 대체할 것이라고 술렁이게 했던 것이 20년 전입니다. 그러니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지문 인식이라는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매번 좋지 못했습니다. 지문 인식을 탑재하고 말고의 고민은 당연하고, 그걸 넘어 어떻게 탑재할 것인지 고민했다고 애플은 얘기합니다. 뭔가 더해진 것 같고, 앞서 있는 것 같죠. 그렇게 설명해놓고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이것은 터치ID입니다'

 포장이 끝이 나고, 사람들은 지문 인식 기술의 새로운 방향, 새로운 사용자 경험, 그리고 거기에 포함된 기술을 합쳐서 터치ID라고 인식하며, '애플꺼!'라고 얘기합니다. 당연하게도 이전부터 지문 인식 기술이 있었다는 주장과 맞부딪히면 기술만 가지고 얘기하거나 포장한 걸 빼버리고 얘기하면서 논란이 생기죠. 치고받고 싸우는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 '사용자 경험이 기술에 끼치는 영향이 예전보다 증가했고, 빼놓을 수 없어 기술 자체에 포함되는 시점이 되었다는 것'과 두 번째로 '애플은 그것을 포장하기 위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고, 제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기술을 탑재하고 시장에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사용자 경험이 기술 사용에 전혀 중요하지 않거나 포장만 하는 기술이었다면 어느 것 하나 주목받지 못했겠죠.

 애플이라서 주목받는 게 아닙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탓에 주목하는 것이죠.




애플



 애플의 대부분 기술이 그렇습니다. 사용자 경험을 설명하고, 명칭을 정하면서 마무리하죠. 터치ID가 그렇고, 시리가 그러하며, 아이사이트 카메라, 페이스타임, 아이메세지,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그렇습니다. 기술만이 명칭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사용자 경험이 포함되었을 때 애플만의 명칭으로 탈바꿈하고, 그것으로 신 나게 마케팅하죠. 명칭만으로 소비자들은 이해해버리니 말입니다.

 다만, 애플은 그 사용자 경험을 기술에 포함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MP3 기술이 한국에서 먼저 만들어졌지만, 인기를 끌게 한 건 아이팟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한가지 기술을 두고 애플이 아이팟을 태어나게 한 것과 성공하게 한 것은 별개의 문제죠. 애플은 MP3 기술만으로 아이팟을 성공하게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조작해야 할지, 어떻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야 할지 고민했고, 전직 뉴튼 개발인 폴 마서(Paul Mercer)가 설립한 PIXO를 애플로 흡수하면서 아이팟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합니다. 뉴튼 같은 제품을 만들고자 설립된 PIXO의 기술이 결과적으로 아이팟의 사용자 경험을 구현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고 PIXO의 기술이 아이팟을 만든 것도 아닙니다. 당시 하드웨어 총책임자였던 존 루빈스타인이 협력사인 도시바에 들렀을 때 1.8인치 하드디스크를 발견한 것이 아이팟을 만들기로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탄생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한국의 MP3 기술, 협력사의 기술, 인수한 PIXO의 기술을 모아 아이팟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요? 애플입니다. 재미있게도 짧은 배터리 시간, 호환성, 음질, 무게, 가격 등 온갖 기술적인 논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게 한 이유는 세련된 디자인과 손쉬운 조작,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였습니다. 그걸 만들어 낸 건 애플이죠. 원석 같은 기술에 사용자 경험으로 가공하고, 아이팟이라는 명칭을 부여해 시장에 내놓은 것은 애플이고, 그 과정이 있었기에 아이팟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보다 사용자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부분에 사용자 경험이 포함되어 있다는 겁니다. 가공되지 않은 돌덩어리를 목에 걸거나 손가락에 끼는 사람은 없고, 제대로 가공되었을 때 보석이라는 것으로 값어치가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있었던 기술이네, 어쨌네 하더라도 이것이 바로 애플이 가장 잘하는 것이고, 기술의 등장과 도입이 빨라도 애플 것으로, 늦어도 애플 것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게 애플의 기술이자 본질이죠. 애플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석부사장 크레이그 페더리기는 USA Today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저희가 만든 제품에 분명히 새겨진 가치를 봅니다. 결정을 내릴 때 저희를 주요 가치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쪽과 싸우려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그 가치를 높이고 싶으며, 목표는 모든 것을 단순하고 집중토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토의에서 외우는 주문입니다. 이걸 스티브가 남긴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현재의 애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