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어떤 회사인가?'하는 질문에 단골로 등장하는 답이 바로 '디자인 회사'입니다. 그만큼 애플 제품의 디자인이 인상적이라는 말이며, 애플을 움직이는 큰 부분이라는 것이죠. IT 업체가 디자인 회사라고 불리긴 쉽지 않습니다. '예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드는 회사'정도라면 모르겠지만, 디자인 자체가 회사의 주체로 불리는 업체의 표본이 애플이죠.
애플 디자인에서 '소비자가 볼 수 없는 것'
그리고 애플 디자인의 심장이라고 하면 '조너선 아이브'를 꼽습니다. 물론 애플을 빼고 당대 최고의 산업 디자이너 한 명을 얘기해보라고 하더라도 아이브가 거론되곤 하니 그의 영향력에 대해선 깊이 말하지 않아도 인식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철학이 확고한 디자이너이고, 그에 걸맞은 작품을 쏟아냈습니다.
아이브
조너선 아이브는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인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난 9월, USA투데이,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애플에서 차지하는 아이브의 비중은 상당히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빈자리를 그가 채우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애플의 앞으로 디자인에 있어 그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는 제품을 디자인했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던 것이 잡스였기에 애플 디지안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비쳤다면, 현재는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애플 디자인에서 그를 훨씬 더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처음 하드웨어 디자인과 함께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 디자인까지 총괄하면서 아이폰과 아이패드, 그리고 iOS7의 디자인까지 애플의 디자인은 모두 그를 거치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이 좋든, 좋지 않든 그의 디자인 철학이 애플 제품 전체에 포함된다는 점이 그가 언론에 노출될 수밖에 없도록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의 디자인 철학이란 무엇일까요? '극도로 간결한 단순함'으로 일축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제품이든 들고 '극도로 간결하게 만들었다'라고 설명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의미를 좀 더 늘어놓을 필요가 있죠. 아이브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격이나 화면 크기 등 수치로 제품을 말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가치를 숫자로 따질 수 없는 제품은 어렵습니다.', 이어 '그러나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방향은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애플이 하려는 것의 핵심입니다.'
앞서 애플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석부사장인 크레이그 페더리기의 '카메라 부문에서 타 회사는 더 높은 화소에 집착하지만, 대체로 사진이 잘 나오진 않습니다. 제 가족도 좋은 사진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화소에 집착하진 않아요. 아이폰을 만드는 선택에 이런 생각을 적용합니다. 이 디자인이 어떤 경험을 제공해줄 것인가에 집중하지, 어떤 수치를 사양 목록에 집어넣을 것인지 생각하지 않죠.'라는 말에 동의하면서 한 말입니다.
아이브는 이것에 대해 '저희는 소비자가 볼 수 없는 부분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고민하며, 그게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고 정의했습니다. '극도의 간결한 단순함', 그 정의를 소비자가 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볼 수 없는 것
디자인이란 그렇습니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죠. 예를 들어 책의 내용이 어떻든 보기 예쁜 커버의 책에 손이 먼저 갑니다. 똑같은 기능을 하는 제품이라도 디자인에 따라 가격 차이가 심하게 나지만, 더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구매하려 합니다. 소비자가 제품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디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자인만으로 이미 제품을 결정해버리기도 하죠. 그런데 '소비자가 볼 수 없는 부분을 고민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소비자의 결정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볼 수 있어야 하지만, 볼 수 없는 것을 디자인 핵심으로 내세우는 것은 어찌 보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해석은 크레이그 페더리기의 얘기입니다. 실상 카메라의 화소가 어떠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냐, 난 카메라를 고를 때 화소를 보는 걸?'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이야말로 화소를 디자인에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배제하고,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소비자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를 값으로 보여주는 것이 화소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소가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것을 디자인해야 합니다.
그럼 '애플이 수치를 제공하지 않느냐?'고 하면, 아주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이폰 5s 소개 페이지를 보면, 8백만 화소, 15% 커진 이미지 센서, ƒ/2.2로 커진 조리개, 33% 증가한 빛에 대한 감도 등 온갖 수치를 얘기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품 개발 과정에서의 디자인에 대한 결정입니다. 애플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홍보 효과를 위해 그냥 단순히 화소 수만 늘릴 것인가, 아니면 화소 수는 유지하면서 더욱 커진 최첨단 센서를 추가할 것인가.'
카메라의 화소를 늘리고, '이만큼 늘어난 화소로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기는 쉽습니다. 실제 좋은 사진이든, 그렇지 않든 설명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수월하다는 겁니다.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설명을 제공할 필요도 없고, 어차피 실제 사진 촬영으로 사진을 비교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일단 제품을 파는 것에는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애플은 화소를 800만으로 유지한 채 센서와 조리개를 키웠습니다. 그것이 디자인에 대한 결정이고, 이 디자인에 대한 결정은 화소를 늘리지 않고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하는 여지를 만듭니다.
왜 화소를 늘리는 것보다 센서를 크게 하는 것이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인지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당장 소비자가 아이폰과 타사 제품을 두고, 카메라의 화소로 승자를 결정해버릴 테니까요. 하지만 이 디자인 결정이 소비자에게 주는 경험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아이폰 카메라가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누군가 1,200만 화소의 다른 스마트폰을 들고, '아이폰은 몇만 화소냐?'는 질문에 '8백만 화소'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1,200만 화소의 카메라보다 아이폰 카메라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답이 될 순 없고, 그렇다고 '8백만 화소지만, 아이폰 5보다 센서가 15%가 커졌고, 조리개도 ƒ/2.2로 커졌지.'라고 대답할 필요도 되지 않습니다. 그냥 디자인이 주는 경험 자체가 '아이폰 카메라는 우수해'라고 말해버리기 때문이죠. 수치의 설명을 넘어선 디자인이 주는 경험이 'iSight'라는 애플 카메라 브랜드로 설명됩니다. '4slr'이니 '5slr'이니 하는 언어유희도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애플은 이런 설명을 '제품 제원'이 아닌 '디자인' 부분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자인 부분의 또 한 면을 차지하는 것이 '터치 ID(Touch ID)'입니다. 정말 간단합니다. 지문 인식하는 방법이 간단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소비자가 볼 수 없는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 간단하다는 겁니다. 아이폰 5s의 잠금을 지문인식으로 해제할 때 주변에서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옆으로 밀거나 또는 패턴을 입력하는 것은 주변에서 인식하기 아주 좋습니다. 요란하죠. 지문 인식 기술을 탑재한 다른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입니다. 뒷면을 긁어내리는 것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터치 ID는 전혀 인지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대단히 앞선 기술로 쓰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입니다. 전혀 그 존재가 느껴지지 않죠. 그저 iPhone의 잠금을 해제하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무척 간편해졌다는 생각만 들 뿐입니다.'
애플의 디자인 철학은 이 기술을 탑재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안 보이도록 할 것인지 고민합니다. 그래서 옆에서 보면 그냥 홈버튼을 누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안 기능이 작동하고 있고, 이 작동을 인식할 수 없게 되죠. 사용자가 터치 ID를 설명하거나 혹은 저장되지 않은 지문으로 홈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상 지문 인식 센서가 있다는 사실도, 그것이 홈버튼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용자는 요란하지도 않지만, 안전한 보안 기능을 매우 간편하게 사용할 뿐입니다. 이것은 확고한 디자인 영역이며, 애플도 이것을 '디자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도 그렇죠. ppi의 수치로 설명하면 애플 제품보다 높은 ppi의 제품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ppi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주는 경험이 중요하죠. 이것을 소비자가 수치를 빼버리고 알아차리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주는 경험은 수치를 설명하지 않아도 간단명료합니다.
조너선 아이브가 선보인 iOS7의 디자인을 봅시다. iOS7의 디자인을 보고 '우와!'라고 반응한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매우 단조롭고, 디자인이란 것을 하긴 했는지 파악할 수가 없어요. 심지어 사파리 아이콘이나 설정 아이콘은 혐오스럽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차라리 경악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다만, 그 외형을 접어두고, 사용자 경험 면에서 보면 매우 확장되어있습니다.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iOS7의 스타일을 두고 아이브는 '사용자들이 이미 유리를 만지는 것에 익숙해졌으며, 이 방식의 장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인터페이스에 그대로 옮겨놓을 이유가 사라졌고, 대신 더 확장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외형에서 사용자들의 반응이 미지근하지만,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제한적이었던 스타일을 벗어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아직 iOS7에 대한 디자인 불만이 끊임없지만, 언제든 어떤 스타일로 변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준 것은 디자인에 새로운 여유를 줬습니다. 세계가 넓어졌으니까요. 단지 직접 보이는 것은 경악할 아이콘이죠.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애플의 디자인
잡스는 1996년 이렇게 말합니다.
'디자인은 어떻게 보이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는지의 문제다.'
애플 디자인의 핵심이자 아이브의 철학을 그대로 표현하기도 하는 문장입니다. iOS7의 디자인이 공개되었을 때 형광색의 단순한 이미지를 조롱하는 패러디 디자인들이 쏟아졌습니다. 아이폰을 형광색으로 만들거나 라운드 사각형의 애플 로고 등이었죠. 아이브 디자인의 지폐나 성조기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조롱 디자인은 외형적인 측면에서 디자인을 바라봤을 뿐 사용하는 용도의 디자인에 대한 고민은 없습니다. 지폐를 형광색으로 '$'표시와 숫자만 표기한다? 국가를 상징하는 측면에서 지폐의 가치가 사라지죠. 비꼬는 것 외 용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디자인입니다. 그러나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본다면 iOS7의 디자인은 이전의 iOS보다 매우 진보했습니다. 물론 이전의 외형 디자인을 더 좋아하는 사용자는 얼마든지 있지만요.
결국,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 하는 디자인의 시각이 애플의 핵심이고, 애플이 디자인 회사로 불리는 이유이며,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인 셈입니다. 이것이 하나라는 사실이 애플을 디자인으로서 신뢰하게 하는 것이며, 아이브가 '소비자가 볼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한 정의의 이해입니다.
디자인이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것임에도 그것을 극도로 간결하게 절제하면서 사용자 경험을 확대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IT 제품이라면 더더욱 기술적 관점도 수긍해야 할 것이고, 수긍이 디자인을 망치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즈 매거진은 프레드 포겔슈타인(Fred Vogelstein)의 아이폰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로 냈습니다.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2006년 초에 아이폰의 두 번째 프로토타입이 나왔지만, 전체가 알루미늄으로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제품 전체가 알루미늄이면 전파가 통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결국에는 통신 부문 엔지니어들이 잡스와 아이브에게 금속은 전파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1세대 아이폰은 검은색 플라스틱을 하단에 감싸는 것으로 합의를 봤습니다. 기술적인 요소를 먼저 배치하고, 이를 토대로 디자인 요소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은 디자인대로, 기술은 기술대로, 그리고 이 요소의 정점을 합치려는 노력이 애플 디자인이며, 애플 제품에 나타납니다. 대개 소비자는 검은색 하단이 전파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테니까요.
IT 업체로서 애플의 디자인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며, 아이브가 얘기한 이 철학이 앞으로 애플 제품에 어떻게 녹아들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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