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T/MS

HP의 '윈도 7 회귀=윈도 8 실패'


 윈도 8이 출시된 지 1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습니다. 3개월은 윈도 8.1이 가진 시간이지만, 한줄기라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출시하고 3주 만에 전체 운영체제 점유율 1%를 달성하면서 파란을 일으키는 듯했으나 지난달에야 10%를 넘김으로써 좋지 못한 성적을 냈습니다.
 



HP의 '윈도 7 회귀=윈도 8 실패'
 
 그 10% 점유율마저도 브랜드 PC의 억지 판매 덕분이며, 터치스크린을 탑재한 단말기 점유율은 5% 수준으로 매우 저조합니다. 오히려 윈도 7의 점유율이 상승 중입니다. 한때 PC 1위 제조사로 군림했던 HP는 이 상황을 두고 보지 않습니다.
 
 
 


 지난 20일, HP는 윈도 7 PC를 다시 팔기 시작했습니다. 데스크톱과 랩톱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윈도 7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제공하는데, 윈도 7 재판매 이유를 HP는 '고객들의 요구'라고 말했습니다. 달리 말해 '윈도 8이 제대로 판매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죠.
 
 윈도 7 PC를 재판매하는 기념으로 i5와 i7 코어를 탑재한 제품 150달러를 할인해주는 행사를 진행합니다. 구형 운영체제를 탑재한 제품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윈도 비스타 출현에도 제조사들이 윈도 XP 제품을 내놓던 것과 같은 모습인데, HP 외 PC 제조사의 향방도 주목됩니다.
 
 HP가 윈도 7으로 회귀한 것이 고객들의 요구든 HP의 변덕이든 의미는 명확합니다. 윈도 8의 실패입니다. 그런데 이 실패는 '판매의 실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좀 더 여러 갈래의 실패를 의미하며, MS를 암울하게 만들지 모르겠지만, MS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더욱 잘 드러나게 했습니다.
 
 윈도 8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반응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새로운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터치스크린 환경, 다양한 폼팩터 등 기대만큼은 여느 제품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모습을 전부 내보이자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의심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의심은 이제 확신이 됩니다.
 
 
 


 먼저 MS는 윈도 8 출시 이후 제조사에 적극 윈도 8을 밀어 넣습니다. 윈도 8 판매 촉진을 위한 방책으로 주력했던 MS인데, HP가 단독으로 윈도 7 판매를 진행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 말인즉슨, MS와의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고, 이는 MS 스스로 윈도 7의 회귀를 인정한 것입니다. 윈도 8보다 윈도 7을 판매하는 것이 낫다고 볼 수도 았는 꼴이니 MS도 윈도 8을 좋다고 얘기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터치 부분에서의 실패도 보입니다. 점유율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점유율이야 내린 것은 아니므로 낙담할 필요까진 없겠죠. 그러나 PC의 폼팩터 문제가 걸림돌이 되었음이 증명된 셈입니다. 윈도 8은 터치스크린에 최적화되어있습니다. 데스크톱 모드를 제공하지만, 모든 PC가 터치스크린을 품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이는 데스크톱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사용자가 데스크톱을 이용하는데 터치스크린을 필요로 하진 않습니다. 터치스크린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운영체제는 데스크톱에 적합해야 합니다. 윈도 8은 그런 점에서 윈도 7보다 매우 부족했습니다.
 
 이는 MS가 여태 내세운 PC+가 전략적으로 실패했음을 의미합니다. 혹은 윈도 8이 PC+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다고 해야겠죠. 밀어붙여도 안 된다는 건 흥미롭기도 하지만, PC+의 한계를 들춘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예정에 있는 윈도 9은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한데, 계속해서 PC+를 추구할 것인지 애플처럼 포스트PC를 수용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윈도 8의 실패를 답습해선 안 되고, 윈도 8이 보여준 한계를 윈도 9까지 이끌고 간다면, 윈도 7으로의 회귀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그건 MS에게 있어서 굴욕적인 일이죠. PC+의 실패는 MS를 시대착오적인 기업으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실패는 PC 제조사들과의 협력입니다. MS가 HP에게 윈도 7 PC를 팔아달라고 요청하진 않았을 겁니다. HP가 윈도 8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며, 장기적인 전략에서 MS를 신용하는 것에 제동을 걸게 됩니다. 비스타 때와 비슷하지만,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비스타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XP였지만, 윈도 8은 윈도 7만이 경쟁자가 아니라 애플과 구글까지 경쟁자로 몰려있습니다. 윈도 8은 이들과 경쟁하기 위한 것인데, 윈도 7은 기존 PC 수요자를 겨냥한 터라 새로운 태블릿이나 하이브리드 시장과는 떨어져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PC 시장에서 MS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PC 제조사들도 MS에 의존하는 것을 줄여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MS에겐 매우 큰 악재죠. 윈도 9이 이를 살려놓는다는 가정을 둘째치고, 그 사이 제조사와의 관계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더욱 어렵게 될 것입니다. 이미 윈도폰이 그런 실패를 보여준 바 있죠.
 
 


 HP는 윈도 8 대신 윈도 7 PC 판매를 시작했고, 안드로이드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HP의 전체 로드맵에서 윈도 8은 아주 작은 부분, 주력에 끼어들지 못하는 위치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MS는 실패들의 뒤처리가 시급합니다.
 
 뒤처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적어도 현재의 윈도 8과 같은 방식은 아닙니다. 윈도 8 사용자들의 큰 불만 중 하나였던 시작 버튼을 돌려놓는 것도 아닙니다. MS의 고집만이 들어있는 제품이 아니라 고집과 함께 소비자들이 사고 싶을 만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윈도 8에 MS가 원하는 비전이 들어있다면 그 비전부터 소비자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MS는 자체 PC 제품인 서피스도 내놓았지만, 서피스가 MS의 비전을 제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MS 고집만 들여다본 셈이죠.
 
 필자는 윈도 8을 실패로 빠뜨린 건 윈도 8 스스로 빠진 것이 아니라 MS의 탓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MS가 만들었으니 당연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초기 윈도 8에 품었던 기대는 새로운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에 생겼던 것입니다. 그런 기대를 짓밟은 건 다름 아닌 MS입니다. 그렇다면 기대를 살리는 것도 MS의 몫입니다.
 
 MS가 회귀해버린 윈도 사업을 어떻게 돌려놓은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