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관련 이슈는 연일 한창입니다. 국가별 비트코인 대응이나 업체별 비트코인 도입도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갈림길에서 옥신각신하는 주요 동향이죠. 그리고 한 가지 더 비트코인으로 시끄러운 곳이 '플랫폼'입니다. 어떤 플랫폼이 비트코인 흡수하느냐, 뱉어내느냐에 따라서 비트코인도 출렁이고 있습니다.
애플 비트코인 차단, '거부'라고 볼 수 없는 이유
비트코인의 특성상 모바일 결제를 떼어놓을 수 없는 탓에 모바일 플랫폼이 비트코인을 어떤 위치라고 생각하는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온라인 상거래라면 상관없지만, 화폐로써 직접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자지갑이 될 모바일 플랫폼은 무조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강력한 모바일 플랫폼 업체 중 하나인 애플이 비트코인 관련 앱을 퇴출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5일, 애플은 비트코인 전자지갑 앱인 블록체인(Blockchain)을 앱스토어에서 제거했습니다. 블록체인은 앱스토어에 남아있던 마지막 비트코인 관련 앱이었습니다. 이미 코인베이스(Coinbase)나 그리프(Gliph)도 차단되었고, 더는 아이폰으로 비트코인 결제를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 탓으로 비트코인 사용자들은 애플에 항의하거나 아예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애플이 비트코인 관련 앱을 차단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사유를 말하지 않은 채 차단되었다는 것이며, 블록체인의 CEO인 니콜라스 캐리(Nicholas Carey)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메일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블록체인은 공식성명을 통해 '애플의 이번 차단 조치가 경쟁을 피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고, 독점만 생각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애플은 자신들의 결제시스템에 비트코인이 해가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는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서비스 제공자로서 애플의 조치가 못마땅한 것은 당연합니다. 블록체인은 2년을 앱스토어에 머물렀고, 그동안 아무런 말이 없다가 이번에 전면적으로 비트코인을 차단하고 나섰으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제대로 된 사유조차 언급을 피하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고, 비트코인 사용자라면 애플에 거부감을 느낄 것입니다.
또한, 블록체인은 '애플의 혁신적인 면이 사라졌다.'고 말했는데, 그와 달리 비트코인 결제를 도입하기 위한 계획을 짜고 있는 구글과 대비되는 모습이어서 차단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은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애플에 비트코인 허용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도 일어나고 있고, 독점금지법을 들어 미국 법무부에 의견을 제출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애플의 결정을 지지하는 의견도 나타났습니다. '자금 세탁이나 지하경제를 위한 화폐로 이용되는 등의 악용이 이어지는 주체 불명의 비트코인을 퇴출한 것은 잘한 것'이라는 말인데, 굳이 기존의 화폐 균형을 악의적인 목적을 둘 수 있는 것으로 대체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의견대로 애플이 비트코인을 차단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런 사유였다면 확실한 '거부'가 되었겠지만, 총체적인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라 단지 차단만 한 것이므로 비트코인을 거부하는 이들의 의견처럼 애플이 차단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반대로 비트코인 사용자와 서비스 제공자는 화가 났지만, 이것이 애플이 영영 비트코인을 거부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해석하거나 혁신을 막아섰다고 말하는 것도 심한 어폐가 있습니다.
애플이 당장 비트코인을 내쫓은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블록체인의 주장처럼 '자사의 결제 시스템과 경쟁할 것을 피했다.'는 건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는 무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비트코인을 화폐로 보지 않는 쪽에서는 상식 밖의 얘기입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죠. 오히려 애플이 비트코인을 차단했다는 것은 애플이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욱 타당합니다.
애플은 마일리지 거래나 현물 거래를 막아서진 않습니다. 마일리지를 디지털 화폐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면 애플은 비트코인을 차단하지 않았겠죠. 마일리지와 비트코인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한, 화폐를 통한 현물 거래를 막지 않는데, 현재 앱스토어에는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앱이 없습니다.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한 것 막아서는 안 되지만 애플은 막았습니다. 이것을 '비트코인에 대한 거부로 볼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화폐로는 인정했지만, 막았다는 것에서 다른 이유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을 허용한 국가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그렇고, 러시아도 지난 6일 비트코인 사용 제재에 나섰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비트코인은 국가 단위를 넘어선 화폐입니다. 국가 간의 사용 허가가 떨어져 환전하는 등의 기존 화폐 개념이 아니라는 겁니다. 거래소만 이용하면 어느 지역이든 누구나 비트코인을 구매할 수 있고, 지갑만 있으면 누구나 결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막아선 지역이 생겨났습니다. 앱스토어에 지역 제한을 걸어둘 수 있지만, 애플 차원에서 지역 제한만으로 비트코인 거래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만약 비트코인 사용을 규제하고 있는 국가에서 아이폰을 통한 비트코인 사용이 적발되면 엮이게 됩니다. 엮인다는 건 사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으로 이어지므로 당장 불안정한 비트코인 허용으로 사업에 악영향을 주고 싶진 않을 겁니다.
또한, 미국은 아직 비트코인 사용에 대한 확고한 의견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서 미국에서도 비트코인 거래가 위법으로 규정된다면 비트코인 앱에 대한 관리가 매우 복잡해집니다. 비트코인을 적극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쪽은 달러 중심의 화폐 체제를 무너뜨리고 싶은 유럽이 대부분이니 급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정말 비트코인이 달러 중심의 화폐 체계를 무너뜨린다면 다른 이유 없이 애플도 비트코인을 허용해야 할 테니까요.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지만, 급하게 허용하진 않을 것.'
적어도 비트코인에 무작정 낙관하는 것보다 나은 점진적 방법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필자는 비트코인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비트코인이 빠르게 현재 화폐 체제를 뒤집어 놓을 것으로 보진 않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점진적이어야 하며,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비트코인이라는 화폐 체제가 경제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족히 수년이 걸립니다. 비트코인은 기술의 혁신보다는 시스템의 혁신으로 보는 것이 옳고, 시스템을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건 한 명이 기술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플랫폼이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현재 애플의 조치로 비트코인 사용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비트코인의 미래'보다는 당장 떨어진 '비트코인의 환율'입니다. 불만도 거기서 나온 것이 더욱 클 것이고, 서비스 제공자도 애플이라는 명확한 대상에 이익을 침해당했으니 애플을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애플의 이번 조치를 비트코인에 대한 거부로 단정하고 극단적으로 생각할 것까진 없다는 겁니다. 비트코인 사용자가 비트코인 비관론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애플의 조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되레 비트코인이 사회에 적용되는 시간만 늘려놓는 결과를 초래하겠죠.
애플의 차단 조치를 비트코인 거부로 단정할 수 없기에 이 사안만 두고, 비트코인을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어느 쪽이든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확률을 높이는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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