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차세대 애플 TV를 기대하고 있으며, 몇 번에 걸쳐 출시 가능성을 언급했었습니다. 가능성이 실현되진 않았지만, 이제 3세대 애플 TV를 출시한 지 3년째이고, 애플 TV가 전환점을 맞이하려면 올해 출시는 정말 중요한 지점입니다.
애플 TV, 애플 생태계를 품거나 영원한 취미이거나
애플이 애플 TV를 어떤 제품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아직 명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셋톱박스인 건 분명한데, 2세대부터 운영체제를 iOS로 교체하고, 아이폰과 같은 프로세서를 탑재하여 기능을 확대할 여지를 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세대 출시 후 3년 동안 일반적인 셋톱박스에서 벗어나질 않았으니 이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치를 마련할 것인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오는 9월, 애플이 차세대 애플 TV를 출시한다는 뜬소문이 나왔습니다. 앞서 지난달에는 지문 인식 센서를 탑재한 리모컨으로 TV, 조명, 에어컨 등에 사용할 수 있는 특허를 출원하면서 4세대 애플 TV를 기대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더 버지는 애플이 새로운 애플 TV에 앱스토어와 SDK를 배포하고, 터치패드를 탑재한 리모컨과 시리와 연동한 음성 인식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또한, 가장 유력한 기능 중 하나로 홈키트(HomeKit)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현재 홈키트 기기를 제어하려면 아이폰이 필요하지만, 애플 TV가 허브 역할을 한다면 집 안에서 아이폰을 꺼내 들지 않더라도 홈키트 기기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이미 네스트나 아마존은 온도 조절 장치와 에코를 허브로 커넥티드 홈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홈키트를 좀 더 활성화하려면 경쟁 업체에 대응해야 하고, 가장 적절한 기기는 애플 TV겠죠,
게임도 주목할 요소입니다. 3세대 애플 TV도 블루투스를 지원합니다. 그러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처럼 MFi 컨트롤러는 지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같은 iOS이기에 충분히 지원할 수 있고, 더 버지의 예상대로 앱스토어를 추가한다면 애플 TV를 콘솔 게임기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같은 콘솔 게임기와 비교하긴 어려우며, 코어 게이머를 끌어들이긴 힘들겠지만, 아이클라우드 연동을 통한 데이터 공유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하던 게임을 MFi 컨트롤러로 TV에서 즐길 수 있는 건 매력적인 기능이 될 것입니다.
지난해 초, 9To5Mac는 애플 TV와 애플의 무선 공유기인 에어포트 익스프레스의 결합을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에어포트 익스프레스는 납작한 디자인으로 바뀌었고, HDMI 포트를 빼면 애플 TV와 구성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애플의 공유기 중 스피커와 연결한 에어플레이가 가능한 모델이 익스프레스 뿐인데, 애플 TV도 무선 환경이 필요하니 아예 공유기와 합친 모델이 되리라는 겁니다. 이는 홈키트와 연결할 기기도 무선 통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흥미롭게 볼 추측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뜬소문일 뿐입니다. 애플이 꼭 애플 TV를 주요 제품으로 포장하리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2012년에 NBC TV와 인터뷰를 한 애플 CEO 팀 쿡은 '애플의 다음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나는 거실로 가서 TV를 켜면 시간이 20~30년 후로 가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가장 강렬한 관심 분야이다. 여기까지만 말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2013년 2월에 제프리스앤컴퍼니(Jefferies&Company)의 분석가 피터 미섹(Peter Misek)은 '애플의 3월 행사는 TV와 관련된 행사이다.'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후 쿡의 발언을 빌어 애플 TV와 관련한 뜬소문은 계속 나왔으나 더 늦게 언급된 애플 워치가 더 먼저 출시되었고,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애플 TV 계획은 백지화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쿡의 발언과 다르게 애플 TV가 아닌 애플 워치가 애플의 다음이 된 겁니다.
덕분에 애플 TV에 대한 기대만큼 의심도 늘었습니다. 애플이 지난해에 온라인 스토어에 애플 TV 카테고리를 신설하면서 애플 TV가 보조 제품에서 주력 제품으로 부상한 것으로 보였지만, 제품은 업데이트되지 않으니 카테고리 구분 외 애플이 애플 TV에 힘을 준다는 걸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이 '2012년과 다르게 현재 애플이 애플 TV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인데, 상기한 기능들은 모두 애플 TV의 경쟁력이면서 애플의 새로운 주력 사업이 될 수 있는 요소입니다. 적용할 기능만 분명해진다면 애플 TV에 대한 수요층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이 점점 더 성장하고 있고, 유선 방송을 해지하는 '코드 커팅(Cord Cutting)'이 증가하면서 구글의 크롬캐스트 같은 동글이나 아마존의 파이어 TV처럼 비슷한 셋톱박스 제품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시장이 성장하니 애플 TV도 좋은 것 아닌가?' 싶지만, 현재 애플 TV의 가장 큰 문제점은 OS X에서 iOS로 이어지는 애플의 생태계에서 동떨어진 제품으로서 특별한 경쟁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최근 HBO와 제휴하여 HBO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HBO 나우(HBO Now)'로 콘텐츠를 보강했으나 로쿠는 CBS와 제휴하여 CBS의 모든 방송을 월 5.99달러에 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HBO 나우는 월 14.99달러를 내야 하죠.
그렇다고 애플이 콘텐츠 가격 경쟁을 하자니 콘텐츠 제공 업체와의 문제도 있고, 애플 뮤직처럼 별도의 요금 정책을 마련할 수 없는 건 미국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나 훌루가 가진 지위가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그럼 애플 TV의 주요 수요가 HBO 시청자라고 말하는 것도 억지는 아닌 셈이 됩니다.
적어도 경쟁사들이 한쪽은 스트리밍에서, 한쪽은 커넥티드 홈에서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애플 워치와는 달리 애플 TV의 포지셔닝에 대해서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다른 애플의 사업에 대해서도 쉽게 얘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은 그렇게 말하기에 애플 TV가 너무 비밀스러운 존재이고, 애플의 스트리밍 사업과 커넥티드 홈, 그리고 나아가 TV 콘텐츠 시장의 허브가 될 가능성이 큰 유일한 제품이 애플 TV이므로 9월 차세대 애플 TV의 출시 여부는 애플의 여러 사업의 방향을 갈라놓을 지점이 될 것입니다.
애플 TV는 출시 3개월 만에 100만 대를 판매하면서 나름의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용자들의 사용 실태는 제대로 집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여지껏 아무도 애플 TV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이런 부분에 대해서 투자자들조차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콘텐츠만으로 애플 TV가 경쟁하기가 쉽지 않고, TV와 연결하는 것과 사물인터넷 시장이 성장하면서 애플 TV의 변신을 요구하는 의견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애플 TV가 아닌 완전히 다른 제품을 선보일 수도 있겠지만, 핵심은 애플이 애플 TV를 애플 생태계에 포함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취미 수준의 제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애플이 TV를 기초로한 스트리밍과 사물인터넷 시장에 손을 댈 생각이 없다는 걸로 해석해야 하고, 2012년 쿡의 발언도 재평가해야 하겠죠.
스트리밍 사업이나 홈키트를 내세우기 시작한 지점에서 애플 TV를 언급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애플 TV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할 것이며, 애플이 애플 TV를 어떤 제품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뜬소문의 다음 달에 단초라도 찾을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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