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TV는 애플의 주력 상품은 아니었으나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제품 중 하나입니다. 맥이나 아이폰에서 얻은 애플 제품의 경험을 집안으로 옮겨 놓기에 애플 TV는 제일 적합한 형태이기 때문이죠. 오랜 기다림 끝에 애플은 새로운 애플 TV를 공개했습니다.
애플 TV, 1세대로 돌아갔다
애플은 9월 10일 새벽에 있었던 자사 행사에서 4세대 애플 TV를 선보였습니다. 새로운 인터페이스 디자인, 앱스토어, 시리, 터치 패드형 리모컨 등 추가하거나 개선한 부분이 상당히 굵직하며, 새로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의 TV 카테고리도 꽤 신경 쓴 모습으로 보조적인 제품에서 맥, 아이패드, 아이폰 등의 제품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 하더라도 흥미롭죠.
새로운 애플 TV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시리'입니다. 가상 비서인 시리를 탑재하면서 음성으로 콘텐츠를 검색하거나 콘텐츠의 정보를 알아보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소음 등으로 밖에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시리를 이용하기 어려운 것과 다르게 활용도가 높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콘텐츠의 검색이 아주 편해졌는데, 제목뿐만 아니라 배우나 제작자, 장르 별 검색에 유용하고, 곧장 보고 싶은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시리는 복합적인 활용에 이용할 수 있게 했으나 콘텐츠 소비가 목적인 TV에 콘텐츠 소비만을 위해 디자인될 때 시리가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령 아이폰으로 영화를 보면서 시리를 실행한다면 시리 화면만 나타나고, iOS 9에서 여러 앱과 시리가 긴밀해지긴 했으나 검색하는 것 외 특별히 작동하는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애플 TV의 시리는 콘텐츠를 재생하는 중간에 작동하여 재생 시간을 뒤로 돌리거나 진행 중인 야구 경기의 점수를 확인하거나 자막을 띄울 수 있죠. 그 부분이 기존 시리와 애플 TV의 시리를 다른 존재처럼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 탓으로 애플 TV를 이용하는 데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 봅니다. 물론 음성 인식 기능을 갖춘 TV나 셋톱박스가 여태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단순 검색이 아닌 애플 TV의 조작을 시리에 기반을 두도록 했기에 앞으로 어떤 기능을 추가하더라도 시리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새로운 애플 TV가 마치 1세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술이나 기능은 당연히 좋아졌지만, 애플 TV를 이용하는 목적에 변화를 주진 못했으니까요.
애플 TV는 아이폰을 발표한 맥월드 2007에서 함께 첫 등장 했습니다. 아이폰에 묻히기도 했고, 그저 큰 화면에 아이튠즈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불과했죠. 콘텐츠를 TV로 옮기는 건 이제 대세가 되었습니다.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라는 방법이 컴퓨터에서 TV로 옮겨가면서 유선 방송을 해지하는 '코드 커팅(Cord Cutting)'이 늘어났고, 1세대 애플 TV는 그런 점을 잘 간파했습니다.
본래 애플 TV는 40GB와 160GB의 저장 공간이 제공되었습니다. 아이튠즈에 보관한 콘텐츠를 아이팟처럼 애플 TV에 동기화할 수 있게 했고, 최대 5대의 PC를 연결함으로써 가족 구성원들의 콘텐츠를 거실에 모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지금처럼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성화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콘텐츠 보급을 그렇게 하도록 했던 거죠.
인텔 프로세서에 OS X까지 탑재했는데, 2006년에 맥미니에 추가한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 '프론트 로우(Front Row)'가 애플 TV의 기본 인터페이스가 되면서 사실상 콘텐츠 소비에 초점을 맞춘 TV와 연결할 맥미니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까지 비슷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4세대 애플 TV를 보고 느낀 건 '콘텐츠 소비에 초점을 맞춘 아이폰'입니다. 2세대와 3세대 애플 TV에는 이용자가 사용할 수 있는 저장 공간이 빠졌습니다. 8GB의 용량은 오로지 시스템만을 위한 것이었는데, 4세대 애플 TV는 앱을 설치할 수 있는 32GB와 64GB의 저장공간을 다시 제공합니다. 영상 콘텐츠 소비가 스트리밍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게임 등을 설치할 최소 공간인 겁니다.
그렇다고 게임이 여타 콘솔 게임기처럼 코어 유저들을 겨냥했는가 하면, 모바일에서 즐기던 게임을 TV로 옮겨놓은 수준입니다. 1세대 애플 TV가 아이튠즈, 고로 맥에 존재하는 콘텐츠를 TV로 옮기게 했다면, 4세대 애플 TV는 아이폰에서 즐겼던 게임을 TV로 옮길 수 있도록 저장공간을 제공하기로 했다는 겁니다. 단지 그것을 어떤 교차점으로서 연관성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게 새로운 애플 TV의 전부라는 거죠.
소비자들이 애플 TV에 기대했던 건 이미 즐기고 있는 콘텐츠가 거실로 옮겨가는 게 아니라 애플 제품 간 연결성이 애플 TV에서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구체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애플은 맥과 아이폰, 아이패드의 연결성을 강조하고,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비슷하게 하면서 아이폰의 전화를 맥으로 받을 수 있게 하거나 맥에서 작성하던 이메일을 아이폰에서 이어서 작성할 수 있게 하는 등 통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플 TV는 소비하던 콘텐츠만 옮겨놨습니다.
TV의 목적이 콘텐츠 소비에 있으니 당연할 수 있고, TV로 아이폰에서 작성하던 이메일을 작성하거나 전화를 받는 건 매우 불편할 겁니다. 다만 연결성을 부여할 수 있는 부분도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TV 쇼를 저녁에 봐야 한다고 아이폰의 미리 알림을 이용하거나 시리와 연동했을 때 해당 시간에 TV가 작동 중이라면 알려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큰 기능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처럼 애플 TV를 독립적인 제품으로 보게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이폰을 중심으로 한 커넥티드 홈에서도 애플 TV가 빠져있습니다. 커넥티드 홈은 애플 TV가 아이폰과 가장 뚜렷하게 연결성을 만들 수 있는 분야입니다. 구글과 아마존 등 경쟁사는 이미 거실에서 허브 역할을 할 제품들을 내놓고 있지만, 애플은 커넥티드 홈에서도 애플 TV에 접점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필자가 의문인 건 독립적인 제품인 애플 TV를 기존 애플 TV와 비교하여 지갑을 열 소비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4세대 애플 TV의 가격은 149달러로 이전 세대보다 50달러가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3세대 애플 TV는 이제 69달러에 판매됩니다. 새로운 애플 TV의 특징이라고는 리모컨과 시리,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정도이고, 영상 콘텐츠를 즐긴다는 건 똑같습니다. 검색에서는 좀 더 유용하지만, 달리 말하면 검색과 콘텐츠 접근성만으로 80달러가 더 비싼 제품을 사야 한다는 겁니다.
게임도 있으나 '컴퓨터의 콘텐츠를 굳이 TV로 보고자 299달러를 써야 하는가'에 의문을 던진 1세대 애플 TV에 대한 시선과 다르지 않습니다.
핵심은 애플 TV의 경쟁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제공하는 콘텐츠의 종류와 양이고, 4세대 애플 TV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콘텐츠를 거실 TV에 추가하는 것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나 시리는 부가적인 요소죠.
시리와 앱스토어의 존재로 향후 사물인터넷 기기를 애플 TV와 연결하고, 리모컨과 시리로 조작하면서 아이폰으로 외부에서 통제할 수 있도록 할 여지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실마리조차 두지 않았고, 여전히 애플 플랫폼과 섞이지 않으면서 콘텐츠만으로 연결점을 만들려는 건 아쉽습니다.
필자는 애플 TV가 애플의 주력 제품이자 거실을 장악할 존재가 되려면 콘텐츠 외 애플의 다른 제품과 연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기한 예나 아니면 다른 것이든 그게 애플 TV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때와 앞으로 나아갈 애플 TV의 방향을 다르게 할 지점이 될 것입니다.
'APPLE > APPLE Geek Bib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플, 애플 뮤직에 버버리 채널 개설 (0) | 2015.09.16 |
---|---|
애플에 3D 터치는 어떤 존재인가 (28) | 2015.09.15 |
아이패드 프로, 왜 커졌나? (13) | 2015.09.11 |
애플 9월 9일, '아이패드 프로, 아이폰 6s, 애플 TV' (0) | 2015.09.10 |
애플 TV, 게임 기능 탑재와 과제 (2) | 2015.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