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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T일반

월트 디즈니, VR에 투자하다


 이제 VR 기술을 만나는 게 어렵진 않습니다. 불과 2,000원에 조립할 수 있는 카드 보드부터 내년 1분기 출시할 계획인 오큘러스 VR의 일반 소비자용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 마찬가지로 내년 상반기에 출시 예정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PlayStation VR)도 있죠.
 


월트 디즈니, VR에 투자하다
 
 덕분에 VR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시도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가상 현실이 콘텐츠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형 미디어 업체들이 VR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USA투데이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Walt Disney Company)가 VR 스타트업인 전트(Jaunt)에 6,500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투자에는 차이나 미디어 캐피털(China Media Capital) 등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전트는 VR 콘텐츠 제작 기술을 보유한 신생 업체입니다. 고품질의 360도 영상을 촬영하고, 보정과 집을 거쳐 구글 카드 보드와 오큘러스 리프트용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가상 현실 스튜디오라고 할 수 있겠죠. 몇 가지 콘텐츠를 공식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제공하며, 전용 플레이어만 설치하면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앞서 구글도 전트에 대규모 투자한 바 있는데, 투자뿐만 아니라 이때 협력사로써 카드 보드용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제휴가 함께 이뤄진 것입니다. 사실 구글은 직접 VR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카드 보드 보급과 유튜브의 VR 콘텐츠 지원으로 일반인들의 VR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목적입니다.
 
 하지만 전트가 지향하는 건 영화나 드라마, 또는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 영상 등 전문가 영역의 콘텐츠입니다. 구글이 목적을 가지고 있긴 하나 실상 유튜브나 카드 보드의 VR 생태계를 풍족하게 하려면 고품질의 콘텐츠가 필요하므로 협력사로 전트를 선택한 거죠.
 
 고로 디즈니가 어떤 의도로 전트에 투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영화입니다. 물론 영화를 제작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진 않았으나 이미 레전더리 픽처스(Legendary Pictures) 등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VR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고, 지난 7월에는 제작 중인 영화 워크래프트의 데모를 VR 영상으로 공개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당장 영화 전체를 제작하지 않더라도 관객에 보는 것만 아니라 영화를 체험할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 올해 3월, 디즈니는 자사가 운영하는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에 VR을 접목한다는 계획을 전한 바 있습니다. 이전부터 VR 부서가 있긴 했으나 상당히 작은 규모였던 것과 다르게 디즈니랜드의 핵심적인 콘텐츠로 키운다는 거였으니 콘텐츠를 늘리는데 전트와의 협력을 선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큰 방향을 본다면 전체 영화를 VR 콘텐츠로 제작하는 것까지 염두에 둘 수 있겠죠.
 
 그리고 한 가지 더 떠올려야 하는 것이 뉴스 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입니다. 지난해 오큘러스 리프트를 착용한 루퍼트 머독의 모습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머독은 VR 기술에 매우 놀라워했고, 매셔블은 머독의 반응을 두고, '가상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신문이 등장할 수 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뉴스 코퍼레이션 산하의 21세기 폭스도 빼놓을 수 없죠.
 
 현재 21세기 폭스의 자회사인 20세기 폭스는 VR 콘텐츠에서 드림웍스, 마블과 함께 삼성과 협력하고 있으며, 또 다른 자회사인 폭스 스포츠는 올해 초부터 넥스트VR(NextVR)과 손을 잡고, 스포츠 경기를 VR로 중계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UEFA 챔피언스리그를 중계하여 주목받기도 했는데, ESPN의 모회사인 디즈니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얼마 전에는 디즈니의 산하의 ABC(American Broadcasting Company)가 전트의 기술을 이용한 VR 뉴스를 내보낸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건 머독이 오큘러스 리프트로 체험한 콘텐츠가 경쟁사인 타임 워너 산하 HBO의 인기 드라마인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빙벽을 오르는 것이었다는 겁니다. 타임 워너도 이전부터 자사 콘텐츠를 VR로 옮기는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즈니의 이번 투자는 영화만 노린 것으로 보기보단 VR 시장에서 거대 미디어 그룹의 충돌이 시작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VR 하드웨어나 콘텐츠 제작 기술을 보유한 곳에서 콘텐츠 IP를 원하는 쪽이었다면 단순 제휴가 아닌 미디어 그룹이 VR 기술을 원하고, 자본이 VR 업체로 들어가게 된 거죠. 구글의 투자와는 명확히 다른 부분입니다.
 


 전트는 이번 투자로 설립 2년 만에 1억 달러 수준의 투자금을 확보했습니다. 매우 놀라운 규모이며, 인수 직전 오큘러스 VR이 7,500만 달러까지 유치했었기에 짧은 기간 VR 시장이 얼마나 커졌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실마리입니다.
 
 VR의 대명사가 된 오큘러스 리프트는 본래 게임을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훨씬 많은 종류의 콘텐츠를 바라보게 되었고, 오히려 콘텐츠의 보급보다는 단말기 보급이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필자는 여기서 3D TV가 떠올랐는데, 3D TV보다 미디어 그룹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것이 단말기 보급에도 긍정적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결과물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