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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T일반

종이책에 얽매였을 때 전자책이 더뎌질까?

 최초의 전자책 단말기는 1998년, 누보미디어가 선보인 '로켓 e북(Rocket eBook)'이었습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전 교과서에서 'e북의 발전'과 같은 카테고리를 통해 접할 수 있었고, 머지않아 e북이 모든 책을 섭렵할 것이라는 일종의 가르침을 받았었습니다. 킨들과 같은 전자책 단말기가 등장하고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이 전자책 구실을 하면서 그것은 실제로 일어나게 되었으니 틀린 가르침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종이책을 엮은 것이 문제였죠.




종이책에 얽매였을 때 전자책이 더뎌질까?


 지난 토요일,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라는 글을 작성했습니다. '종이책이 전자책을 대체하고 있는 시점에서 과연 완벽하게 대체하는 것이 가능할까?', '대체하는 날이 오긴 하는 걸까?', '그런 기술 발전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는 것일까?', 그 사이에 대한 고민에 관한 내용이었고 생각보다 많은 의견을 덧글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


 그 중 눈에 들어온 덧글이 하나 있는데, 'widow7'님이 남겨주신 것이었습니다.


엠피삼 플레이어는 우리가 먼저 개발했지만 엠피삼 시장은 애플이 선도했죠. 한국의 엠피삼 플레이어 제작자가 애플의 시도를 해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물론 음반사가 절대 응해주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듭니다. 하드웨어에 관해서라면 한국이 뒤질 일이 없는데 소프트웨어가 안따라주니까 하드웨어는 망하고, 외국에서 어떤 흐름이 대세가 되어야만 마지못해 카피캣 수준이 되어버립니다. LP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종이책도 사라질 일은 없습니다만, 종이책에 집착하니 종이책 전자책이 같이 공멸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마존이 킨들 갖고 한국에 쳐들어와서, 막대한 자본으로 작가들 싹다 스카웃해버리면 한국 출판사는 골로 가버립니다. 한국인이 한글로 한국책 펴내는데 돈은 아마존이 싹 다 벌어가는 일 생길 겁니다. 


  요약하자면, '종이책이 사라질 일은 없지만, 종이책에 집착하니 전자책이 함께 공멸되며, 아마존과 같은 기업이 치고 들어올 것이다'입니다.

 이는 어느 정도 수긍할만한 것인데, 아마존의 전자책 판매는 이미 종이책을 앞질렀으며, 베스트셀러는 2배 이상 많이 팔리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에 반스앤노블의 CEO 윌리엄 린치는 자사의 누크 판매량이 킨들보다 못하자 종이책을 읽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신들이 종이책을 팔고 있으면서도 전자책이 산업 측면에서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종이책을 읽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 냈다는 겁니다. 즉, 종이책에 얽매였던 반스앤노블은 이미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늦장 대응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죠.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widow7님의 내용은 수긍할만합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공탁론입니다. 필자는 종이 매체의 일부가 전자 매체로 대체되겠지만, 이게 완전히 대체되지 않는다는 것에서 그런 고민을 했던 겁니다. 먼저 뉴스 매체를 봅시다. 뉴스는 완전히 디지털이 되었습니다. 종이 신문의 수요는 바닥을 치고 있으며, 태블릿 신문의 수익이 종이 신문을 앞질렀습니다. 그리고 언론사들도 하나둘씩 종이 신문 발행을 중단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종이와 전자 문제로만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뉴스가 전자 매체로 대체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인스턴트 적이기 때문입니다. 뉴스는 즉석에서 빠르게, 그리고 일회성이 짙습니다. 빠르게 접하고 소화해야 하는 특성을 전자매체가 적합하게 받아들이면서 완벽히 대체되고 있는 것이죠.

 책은 다릅니다.







 단지 '책'으로만 묶어서 구분 짓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책은 수많은 장르와 분야가 뒤섞인 한마디로 정보의 원천입니다. 거기에는 일회성의 인스턴트 속성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속성이 함께 존재합니다. 더군다나 독자의 정보 취득 방식에 따라 이를 선택하는 방법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필자가 종이책과 전자책을 함께 구매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퓨리서치센터는 지난해 전자책을 읽은 성인의 비율이 16%에서 23%로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읽는 사람이 아니라 '읽어 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나 책을 정기적으로 읽는 독자, 그러니까 '읽어 본'정도가 아니라 책을 꾸준하게 읽는 사람은 89%가 1년 동안 최소 1권 이상의 종이책을 읽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전자책으로만 책을 접한 독자는 30%에 불과했습니다. '성장 중일 뿐인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하겠지만, 지난해 전자책 매출 성장률은 34%로 4년간 세 자릿수를 기록했던 성장률을 생각해본다면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기술은 더 발전했으며 전자책은 더 보기 좋아지고 편해졌지만, 이상하게 성장률이 거꾸로 돌아선 것입니다. 여기에 또 재미있는 사실이 포함됩니다. 전자책 전체 매출의 2/3가 스릴러, 로맨스, 판타지와 같은 장르 소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신문에서 나타나는 전자 매체의 특성과 흡사한 것인데, 전자 매체가 인스턴트 적인 일회성의 회전력이 빠른 장르에서는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외에는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성장률이 급하락 한 것도 이제 소비자들이 전자책의 특성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몇몇 전자책에 맞는 장르 외에는 종이책으로 돌아간 것이 이유로 작용한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왜 사람들이 전자책 시장 초기에 만화에 열광했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만화방에서는 왜 만화책을 대여해주고 도서관에서는 그렇지 않은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빠릅니다. 결정적으로 책이 지닌 정보의 가치에 따라서 종이책과 전자책의 장단점이 달리 구분되는 것입니다. 게임을 예로 들자면, 게임은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가장 회전력이 빠른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오랫동안 하나의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존재하긴 하지만, 대부분이 새로운 장르, 새로운 게임으로 이행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거기서 다른 소프트웨어 카테고리와는 더 확연히 수익 차이를 벌려놓습니다. 현재 시장의 종이책과 전자책 매출 구조가 이와 비슷한 것입니다. 굳이 짚고 넘어가자면 이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전자책이 발전하게 되더라도 결과적으로 장르를 구분 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고, 전체적으로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할 수 있다고 입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은 단지 기술적 측면이 아니라 돈에 얽힌 산업적 측면에서만 생각하니 나올 수 있는 이야기죠. 전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게임이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카테고리라고 해서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얘기와 다를게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에는 둘 다 함께 기술적 발전을 가져가는 것이 옳습니다.




기술 발전


 만약 미국의 아마존이나 반스앤노블이나 애플 등이 글로벌 전자책 시장에서 활개를 치고 다닌다고 합시다. 하지만 여전히 독자들은 책의 정보 취득 속성에 따라 종이책과 전자책을 구분할 것입니다. 일회성이나 보관성, 혹은 질감이나 보존성과 같은 것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끼니까 말이죠. 단발에 증발해버리는 디지털 데이터와 물과 불의 접촉이 발생하지 않으면 좀 더 용이한 종이책을 비교하며 늘어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속성은 사라지지도 않을 테고요. 그럼 종이책에 얽매여 있는 한국이라면 좀 더 용이한 종이의 보존성, 그러니까 방수나 방화와 같은 종이 기술 개발에 매진하여 종이책 분야, 소프트웨어로 치자면 운영체제 분야에 더 힘을 쏟는 것이 더 나은 산업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적어도 하드커버가 겉멋이 아니라 종이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술적 장치라는 것만 기억하더라도 발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종이책에 얽매여 있고 전자책에 뒤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종이책 출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무슨 전자책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일까요? 대형 서점들의 횡포 덕에 대부분의 종이책 납품이 도서관에 집중되어 있어 출판 업계 자체가 불황이고, 전자책에 적합하다는 회전이 빠른 장르는 작가에 대한 보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종이책에 얽매이지 않고 전자책에 달려든다고 해서 무엇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어느 한 쪽도 기술적인 발전이 이뤄질 수 없는 분위기인데,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걸까요?


 이것은 통상수교거부정책이나 어떤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넘어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어찌 보면 widow7님이 말씀하신 MP3 부분도 그와 같은 것이었죠. 다만, 음악이 책과 같이 장르별 속성에 따른 매체의 영향은 라이브 공연이나 클래식 공연, 뮤지컬, 오페라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MP3가 발전하면서 프랑스의 클래식 공연이 완전히 망했다'거나 '아바타 홀로그램 때문에 오페라 공연이 망할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신 클래식 LP가 망했을 뿐이죠. 회전성이 빠른 장르의 효율적일 수 있는 매체가 등장하고 변화했을 뿐이란 겁니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엮어서 생각하면 절대 답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답이 아무리 나왔다고 하더라도 애초 출판 시장이 얼어있는 상황에서는 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기술 발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종이책 기술과 전자책 기술은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종이책에 얽매인다고 해서 전자책에 더뎌져 기술적 피해를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안일한 것입니다.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전자책 산업을 살리려 하다 종이책마저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요.

 필자가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에서 이야기했던 '기술과 상상력이 해결할 수 없는 이 고민'은 산업적으로 보았을 때 더욱 간과할 수 없으며, 단순히 전자책의 흐름, 기술 발전의 흐름 따위만 생각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